요즘 읽어도 재미있는 글이라 올려봅니다. 불타는성전 당시 10인 레이드 던전이었던 카라잔을 배경으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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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 길드원들은 지금 한참 불뱀을 공략 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레이드가 시간이 지날 수 록
각종 도핑값으로 인해 가계 경제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알차게 모아놨던 공대창고는 바닥이 보이기만 시작했죠.
두려웠습니다... 처음에는 천골 단위이던 나의 골드는 시간이 지날 수 록
눈 녹듯 사라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5천골 새(주: 당시에는 280%가 가장 빠른새, 5천골) 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다가... 이러다가... 아니야... 그럴리 없어...
우리는 정신도, 물질도 피폐해지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죠.
평생에 소원이 빠른새를 타보는 게 소원이었던 그는 길마에게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길마님. 이대로는 제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빠른새 못타보겠습니다.'
'블앨 잡아.'
'아니요... 아니요... 이미 상황은 블앨 잡는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퀘해'
'아직도 현실을 외면하고 계신 겁니까? 전 알고 있어요... 길마님이
옆 공대장에게 골드 좀 빌려달라고 애걸하면서 옆 공대장 부캐 버스를
돌아줬다는 걸요. 수도원 3번방 3연속 재미있었습니까.'
우리 모두는 인던이니 전장이니 바쁜 척 했지만 초록색으로 뜨는 길창이
연두색이 될 때까지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습니다. 모두 힘겨운 상황이었구요.
모두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는 그 상황에서 빠른새를 타고 싶다던
법사는 입을 열고 말았습니다.
'골드팟...은 어떠십니까...'
골드팟?! 우리는 모두 놀라 먹고 있던 라면을, 씹고 있던 오징어를, 마시고 있던
콜라를 키보드에 엎지르고 말았습니다. 골드팟이라면... 중국 작업장들에게
와우로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를 열어줬다던 그 골드팟? 골드보기를 돌같이 하여
차비하세요~ 가져가세요~ 라는 말도 '정의의 길에 차비는 필요 없습니다'라고 했던
우리의 신념이 골드팟으로 무너진단 말인가?! 우리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주시했습니다.
그리고 길마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라잔이란 어떤 인던입니까?
막공으로도 3시간이면 올킬한다는 그 카라잔. 불뱀을 가는 우리에게 카라잔은
그야말로 가시우리와 다름 없는 난이도 였습니다. 쉽고 간단하고 빠르고 재미있는
골드 앵벌.... 아아... 저는 무심결에 갑시다!라고 외칠 뻔 했습니다. 초라하게
등을 돌리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길마의 모습을 보고서도 말입니다....
하하... 그 큰 등에서 보여지는 여린 마음이란 후후...
그때 길마와 함께 창설 맴버이며, 언제나 길마가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도와주던
마음씨 착한 법사님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길마... 요새 우리 다 힘들다. 이번 주말에 눈 딱 감고 공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골드팟 한번 돌리자. 할 수 없잖아... 이제 우리 그만 편해지자, 응?'
아아 남자의 눈물이란... 잠시만요. 이건 제가 울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건 그저 너무 더워서 마음이 땀을 흘리고 있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더워지면 눈에서 땀이 나는 거라구요.
'그래. 이번 한번 만이다.'
우리 모두는 그 날 밤 편안하게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인벤에 가득 찰
골드를 생각하며 말이죠.
약속했던 주말이 왔습니다. 일단 저희쪽 맴버는 골드가 당장 급한 사람과
빠른새를 타고 싶다던 그 분. 길마와, 저, 창설 멤버 옆 길드 누나 몇 분해서 9명...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면 돈이 안벌린다고 차마 말할 수 는 없었습니다. 그저 들뜬
얼굴로 '나도 녹템 입고 갈까?'라며 농담을 하는 흑마님과 '어디어디 공대는
골팟으로 일인당 1000골을 땡겨왔다던데...'하며 바람을 넣는 원로 맴버 법사형과
'카라잔은 오래간만이에요~ 신나게 해봐요~'라는 바퀴 누나.... 어떻게
맴버를 줄일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한명만 모집하면 되는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저희는 일단 맨몸으로 와도
좋으니 돈만 많으면 된다는 원칙을 충실히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길마는
싫은 척 들뜬 목소리로 파티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카라잔 골드팟 딱 1자리 비었습니다. 흥 뭐 좋아서 모집하는 건 아니니까
골드 많으신 분만 모셔갑니다'
그러자 귓말이 쇄도했습니다. 길마님은 오래간만에 이렇게 많은 귓말은 처음이라며
길챗에 즐거운 듯 말을 했습니다. ^^ 같은 이모티콘도 쓰시구요. 그런데...
길마님의 표정이 달라지셨습니다.
'30만골?!'
저희 길챗은 서버가 정지된 것마냥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길마님의 다급한
비명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야.. 바퀴 하나가 자기 30만골 가지고 있다고 자기 데려가라고 하는 데?'
저희는 놀라서 전투정보실에서 그 바퀴의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이럴수가...
아니나 다를까 징박. 게다가 모든 것이 녹템이었습니다. 저희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이런 애를 데려가도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이 우리의 목을 잡았습니다.
길마님은 일단 그 바퀴를 초대해서 물었습니다.
'30만골 있으시다구요?'
그 바퀴는 그저 'ㅇㅇ'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길마님은 못미더웠는 지
거래를 걸고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바퀴는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거래로 골드를
보여주고 거래요청을 눌렀습니다. 길마님의 인벤이 찢어질만큼의 골드가 들어왔습니다.
길마님은 골드를 다시 돌려주며 우리쪽을 바라봤습니다. 샤트는 각종 거래와
파티 찾기로 시끄러웠지만 우리들만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원로 법사님은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하며 말했습니다.
'잘오셨어요! 우리 같이 잘해봐요~'
길마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법사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법사님은
침착하게 길챗으로 말씀하셨지요.
'바퀴야... 바퀴라구... 즉, 나오는 템은 지팡이와 도검 빼고 모든 걸 다 먹을거야.
저 녹템을 봐! 바꿀 것 투성이잖아? 게다가 신박, 징박, 보박용 템이 모두 다르잖아...
어쩌면... 오늘 우리...'
길마님은 법사님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는 지 잘 어울리지도 않는 미소로
초대를 승낙했습니다.
'아이구 반갑습니다 ^^ 오늘 그럼....'
후후... 그래 오늘... 오늘이 그날이구나. 30만골의 그 남자... 게다가 클래스는 바퀴.
골드팟이니 눈치볼 것도 없고 우리도 먹을 템도 없고... 저는 법사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느린 와이번... 왜 모니터가 이렇게 흐릿해보이는 걸까.
결국 우리는 출발했습니다. 바람잡이 역할로는 같은 바퀴인 누나에게 맡겼습니다.
비록 같은 길드는 아니지만 언제나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분이었죠.
레이드도 같이 하고 말이죠. 누나는 매우 두려워하긴 했지만 잘될 거야♡라는
특유의 미소로 우리의 카라잔 골드팟을 축복하는 것 같았습니다.
출발하고 어튜맨을 잡으러 가는 도중에 그 바퀴가 말을 했습니다.
'저기 골드 분배는 제가 할께요.'
길마님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모두 자신의 몫이고
남자다운 자기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퀴는
심드렁한 얼굴과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님들은 모두 같은 길드잖아요? 저도 당당히 골드 내고 하는 건데
길드 분들끼리 작당하면 안되니까 골드 분배는 제가 할래요. 괜찮죠?'
우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통 내기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쁜 건 우리들이었던 것입니다. 길마님은 애써 정신을
차리고 바퀴 누나는 창백해진 얼굴을 감추느니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지금 저희를 못 믿으신다는...'
'싫으면 뭐 저 나가볼께요.'
치명적인 덫이었습니다. 애써 법사님은 괜찮다며 아무 일 없을 거라며
길마님을 달랬고 우리는 이것이 비극과 광기의 서곡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템 룰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에픽은 무조건 50골부터 시작.
2. 입찰 제한 없음. 1넴드 중복 입찰 가능.
3. 상한가 없음. 무제한 입찰 가능.
4. 토큰은 100골부터 시작.
어튜맨을 잡았습니다. 템이 나왔고 우리 모두는 긴장된 얼굴로 바퀴를 바라보았습니다.
바퀴는 주저 없이 입찰했습니다.
'발톱 목걸이 입이요.'
미리 사인을 받은 도적님이 재빠르게 상위 입찰을 했습니다.
'콜 60.'
바퀴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30만골의 위력은 그의 입찰에 파괴력을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60받고 60더.'
120?! 이런 초라한 템에 120?! 저희는 모두 얼어붙었습니다. 도적님은 잠깐 장고를
했습니다. 분명히 이런 기세라면 무조건 더 올릴 것이다. 절대로 그럴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도적님은 눈을 질끈 감고 입찰을 했습니다.
'180. 그만 하죠?'
아아... 도적님... 어추셋을 모으는 게 소원이라던... 아직도 동부 역병 지대만 가면
이상하게 모니터가 흐릿하게 보인다던 도적형... 오리때부터 온갖 설움을 겪고
확팩에선 술을 잔뜩 마신날, 게임을 접을려고 지금삭제 4글자를 못눌러서 아직까지
이렇게 살아만 있다던 마음씩 착하고 버스도 잘 돌려주던 도적님... 그 집념과
한. 절대로 불뱀을 클리어하겠다는 그 집념이 살아서 이 입찰이 생겨난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 깔끔한 입찰을. 상대를 살살 약올리면서 자기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저 스마트한 방법을....
다행히 바퀴는 별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360'
그러자 길마님이 윙크를 했습니다. '그만하면 잘한거야. 아직 시간도 템도 많아.
일단 간만 보자'. 도적님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태도 마저 보여줬습니다. 바퀴는 그 특유의 심드렁하고 여유있는 기름끼 표정으로
'ㅇㅇ'라고 말하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360골... 1인당 40골. 길마님은
연필에 침을 묻혀 수첩에 적었습니다. 법사형은 기분 좋은 얼굴로 농담을 했습니다.
'헤헤 앞으로 조금만 더 모으면 빠른새다. 나 색깔까지 봐뒀어~' 우리 모두는
슬픔과 희망의 영원한 평행선의 가운데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방랑자입니다.
그리고 모로스. 오늘은 일이 되려는 지 용기의 장화가 나왔습니다. 길마님은 어께로
바퀴누나의 팔을 툭 칩니다. 시원하게 부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퀴누나는 떨리는
듯 말을 했습니다.
'치...칠십골이요!'
바퀴는 피식 웃을 따름이었습니다.
'140'
바퀴누나는 자신의 바람이 제대로 먹혔다는 안도와 조금 더 노릴 수 있다는
기쁨에 활짝 웃었습니다. 법사님은 서둘러 제재를 했고 바퀴 누나는 진지한 태도로
계속 입찰을 했습니다.
'배... 백육십이요!!!!'
심드렁한 표정. 입찰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320.'
길마님은 그만하면 됐다는 표정으로 바퀴누나를 돌아봤습니다. 이번에도
성공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길챗으로 이 승리를 감격을! 환희를
맛보았습니다. 누나는 너무나 황홀한 표정으로 저 멀리 오그리마를 바라보았습니다.
분명히 경매장에서 점찍어놓은 예쁜 룩의 로브가 있었나보지요.
그렇게 우리는 신나게 진행을 했습니다. 바퀴의 입찰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른하고 한가한 표정으로 그렇게 졸졸 따라만 다녔습니다. 몹에 성전사의
문장을 박아도 우리는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에드를 내도, 제1착으로 죽어도
우리의 탐욕을 막을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폭주하는 기관차였고
탐할 시간도 필요 없었습니다. 어서 골드를... 그 골드를 분배했으면....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네임드를 잡게 되었습니다. 말체자르...(저희 길드는
말체를 가장 나중에 잡습니다) 비록 몇 번의 난관이 있었긴 했지만 저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출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돌아올 몫은
개인당 무려 1200골. 바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모조리 입찰을 했습니다.
그것이 천이건, 가죽이건, 사슬이건, 단검과 지팡이를 제외한 모든 것에
2~3배되는 가격에 입찰을 한 것입니다. 저는 그 골드를 무엇을 할까
생각했습니다. 레이드를 위한 도핑 물약? 부캐에게 줄 참수도끼 캉?
다른 색깔의 천골마? 빠른새? 저는 세상을 모두 다 가진 부르주아가
되어 배부른 표정으로 말체자르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꿈으로 한 걸음 더 입니다.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것입니다. 아주 조금만.
그때였습니다. 문득 바라본 바퀴의 표정이 좀 달라보입니다.
약간 불안해보이기도 하고 초조해보이기도 하는 그 표정 말입니다.
아이템도 먹을만큼 다 먹었겠다. 골드도 충분하겠다. 하는 그런
바퀴의 모습에 저는 의아했습니다. 처음으로 그 심드렁한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뭐랄까, 조급하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 알 수 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뭐가
그를 두렵게 하는 것일까? 그때 저는 저의 귀를 의심할만한
말을 들었습니다. 그 완고하고 높은 절벽 같던, 절대로 흔들리지
않던 그가 불안해하며 꺼낸 한마디입니다.
'피울... 먹어야 하는 데...'
그 순간 바퀴와 길마의 눈이 마주첬습니다. 블앨의 심드렁한 얼굴과
타우렌의 우직한 눈동자가 마주친 것입니다. 길마는 깨달았습니다.
이게 모두 피울을 위한 초석이었구나. 현현顯現. 어느 순간 갑자기,
홀연히 깨닫는 인생의 정수. 그 아름다운 깨달음. 윌리엄
포크너가 처음으로 이름 붙인 그 위대한 인생의 각성. 길마는 깨달았습니다.
길마는 공대생이지만 결코 수학을 잘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압니다. '기회'. 그렇습니다. 기회라는 거지요. 사실 길마는
피울을 먹은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창고에만 밖아뒀습니다. 맨탱의
의무가 그 아름다운 무기를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숭고한 희생입니다.
저희 길원 모두가 바짝 긴장했습니다. 이번 기회는 다시 안오리.
모든 공대원이 그 아이템이 나오기를 고대한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공대원이 그 아이템만을 바라봤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꿈으로
가는 길을 열어다오. 피울!
하지만... 우리는 그 꿈의 한걸음 앞에서 나락으로 추락했습니다.
불의 정령이 우리의 길을 막은 것입니다. 그러자 두번째 징조가 보였습니다.
바퀴가 처음으로 공챗에 입을 열어 입찰 외의 말을 한 것입니다.
'잘 나가는 공대라고 들어서 왔는 데, 이것도 못잡아요? 원킬도 못하면서
불뱀은 어떻게 가요?'
길마의 눈에는 불꽃이 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꽃. 분노와
증오의 불꽃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 불꽃은 이내 가슴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길마는, 아직은 송곳니를 드러낼 때가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아무리 지친개라도
송곳니는 남아있는 법. 길마는 그 놀라운 의지력으로 참아내며 바퀴를
바라보며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에이~ 괜찮아요 ^^ 잘할께요 ㅜㅜ'
'잘해보세요. 왜 그래요?'
그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아주 찰라의 풍뎅이가 날개를 펴는 정도의 찰나였지만 저는 놓칠 수 없었습니다.
'피울.. 꼭 먹어야 하는 데...'
법사님마저 화가 난 듯 보였습니다. 바퀴 누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제 눈에는 모든게 명료하게 보입니다. 바퀴의 눈에 어린 초조감 그리고 기대감.
그리고 모든 것을 불사르겠다는 그 굳센 의지. 지금까지 이것을 위해 깔아놓은
초석. 만골을 넘게 써온 그에게 피울이라는 마지막 욕망의 한 단계가 남아있습니다.
그 욕망은 서슬퍼런 낫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조급해지기 시작한
파이터에게 승리의 여신은 싫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 타올라라 욕망이여!
우리의 탐욕에는 끝이 없나니.
결국 우리는 분노의 한방 한방을 담았습니다. 법사님의 얼화를 누르는 단축키
2번을 세게 눌러봅니다. 바퀴 누나의 묻지마 힐링도 세차게 들어갑니다.
크리! 크리! 크리! 이 강대한 욕망의 소용돌이 앞에 말체자르는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드디어... 루팅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염원은 하늘에 닿고
땅을 가르고야 말았습니다. 나왔습니다. 피의 울음소리. 헬스크림이 사용했다던
그 양손 도끼.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본다던 그 도끼. 우리는 모두 바퀴와
맨탱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바퀴의 눈에는 탐욕이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탐욕! 그 욕망! 우리는 한 남자의 집념이 어디에까지 닿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섣불리 입하기 힘든 가운데, 우리 길드 최고의 브레인이라는 냥꾼님이
입을 시작합니다. 냥꾼님은 희미한 미소를 띄웠습니다. 이것봐, 내가 분위기를 띄운다.
뒤를 부탁해. 길마님은 눈물이 그렁그렁항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그래, 네가 달려라. 내가 쫒아가주마.
냥꾼님이 입찰을 시작합니다.
'저 입합니다. 600골이요.'
우리 모두는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너무 쎈거 아니야? 하지만 냥꾼님에게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난 템 입찰을 봤을 때, 자기가 그렇게
먹고 싶고 바퀴로써 손들기 힘들었던 피울에 600골도 못부으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냥꾼님의 가슴에는 최소 1천골, 많게는 5천골까지 간다고
확신했습니다. 냥꾼님의 득의양양한 미소에 바퀴는 분노를 토해냅니다. 가혹한 상위 입찰.
'아나 냥꾼이 먹어서 뭐해요? 1200골갑니다.'
이미 바퀴의 얼굴에 심드렁한 표정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에게는 조급함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잠시나마 냥꾼님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설마 이렇게
최소 금액을 넘어버리다니?! 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길마는 초조하게 카운트를
합니다. 안돼! 시간을 끌면 안된다. 절대로 달려야만 한다. 5천골까지는 가야만 한다.
냥꾼님이 더 거세게 부릅니다.
'1600골이요'
바퀴는 짜증이 극에 달한 눈치입니다. 씰룩이는 입과 허리에 짚은 손이 그를
더욱 불안하게 보이게 만듭니다.
'진짜... 냥님 너무하시네... 이거 제한 없죠? 3200골이요.'
냥님도 이렇게 쎄게나올줄은 몰랐습니다. 5, 4, 3. 냥꾼은 눈을 감아봅니다.
지난 날들이 생각납니다. 너무나 힘들었던 지난날들.. 가덤의 학살, 스트라솔름,
스칼로맨스. 확팩의 첫 감동. 에픽급 녹템에 눈이 빠져나올 것 같던 확팩의 나날들.
2, 1.
'5000골 갑니다'
그렇습니다. 잘못하면 쪽박을 찰 수 도 있는 상황. 냥꾼님은 초조하게 자신의
인벤을 봅니다. 총 금액 5300골. 이 이상 부르면 만일의 상황에 대파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포기하면 안돼! 냥꾼님은 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바퀴의
선전을 응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도 정신을 잃지 않습니다. 그때 냥꾼님의
어께를 부드럽게, 하지만 굳게세 만지는 분이 있었습니다. 길마님.
오픈 초기 때부터, 타우렌 전사만 키워왔고 그 흔한 부캐도 손도 대지 않은...
심지어 창고캐릭마저 타우렌 전사였던 길마님. 험난한 성불도, 성채도.
그에겐 모두 과정이었습니다. bring it on! 한번도 힐러에게 몹을 붙이지
않았고, 입찰에는 소심했고 언제나 '먹어도 괜찮을까?'라고 물었던 그.
화심을 기억해요, 길마형. 덩이당 수백골의 영약도 박카스 마시듯이 훌훌 털고
마시던 형의 얼굴을 기억해요. 아무것도 없이 창백한 얼굴에도 언제나
희망은 깃들었지요. 내일은 내가 너를 눕힌다는 그 오만한 자신감.
그러나 한없이 순박했던.... 끝내 족쇄를 먹지 못하고, 눈물 젖은 목소리로.
'화심 여기까지만 하자...'라고 말했던 그 분.
길마님은 말을 이었습니다.
'저도 입합니다. 술사님이 진행해주세요.'
별안간 저에게 입찰 진행이 맡겨졌습니다. 저는 온몸이 소름으로 돋았습니다.
키보드도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긴장했습니다.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카운트 셉니다'
냥꾼님... 이대로면 피박을 쓰고 말아요.. 제발 길마형 뭔가 대책을...
이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망해요. 바퀴 누나를 힐끔 봅니다. 누나는
이미 혼이 빠진 듯 멍하게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나의 여린 마음에
이미 5천골이니 3천골이니 하는 말은 이미 먼 나라의 얘기고, 외국어일 따름이죠.
길마님은 예전 화심에서 맨탱을 보고 불뱀에서 맨탱을 보던 내가 아는 그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만골. 만골까지 간다. 모두들 나를 잘 지켜봐줘. 이 남자가
싸우는 방법을 끝까지 기억해줘. 알고있니? 너희들이 있어 너무나 즐거운 하루였다.
비록 학점은 빵꾸가 나도 너희가 있어서 미련없이 학교 더 다닐 수 있어.
헤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 너무 무섭지만 잘해볼래...
그렇습니다.
길마형은... 언제나 강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너무나 여린 남자였습니다.
언제나 그 정도는 괜찮아! 문제 없어! 라는 말을 입으로 달고 살았습니다.
대형 몬스터에게 밟혀도 불로 구워지면서 가장 도망가고 싶었던 것은 형이었겠죠.
전 기억해요. 처음 화심 갔을 때, 화염 거인에게 한방에 압사 당했던 그 날을요.
그날도 도망가고 싶었겠지요? 고마워요. 우리 쪽으로 도망와줘서. 여기가 형과
우리들을 위한 안식처에요. 우리 도망치고 꼬리 내린 개의 자긍심을 가집시다.
뭐 어때요? 우리는 이렇게나 우리를 연민하는 데 말이죠. 어라? 왜 키보드가 이렇게
축축한가요? 하하... 요새 키보드는 자동 습기조절도 되는군요.
'바퀴님. 몇 골이나 부를 참인지 모르지만, 저는 끝까지 갑니다. 7천골!!'
바퀴의 얼굴은 이미 일그러질 때로 일그러졌습니다. 7천골? 블앨을 얼마나 잡아야하는 거지?
퀘도 다 깨버렸는 데? 이럴 순 없어... 맨탱이 어째서? 바퀴는 무척 혼란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태도가 돌변합니다. 아까의 그 여유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갑을 한번 열어보더니 매우 자신만만한 태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아까의 신경전, 바퀴의 호승심을 자극한 겁니다. 하지만 바퀴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하하 맨탱님이 양손? 님네 공대 잘돌아가네요. 제가 알바는 아니지만 그럼 한번 해봅시다.
만골갑니다. 아시겠어요? 만골이라구요. 골드나 있으시려나ㅋㅋㅋㅋㅋㅋㅋ'
냥꾼님은 두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성공한 겁니다. 피울 하나에만 개인당 1000골남짓. 이거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법사님도 모아두었던 돈을 더해 빠른새 살 수 있습니다. 아니요. 남을 겁니다.
저는 더 이상의 카운트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길마형을 행복한 미소로
바라봅니다. 그렇습니다. 제게는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저 듬직한 타우렌 전사.
그러나 길마형이 의미 심장한 표정입니다.
'한번 더 간다.. '
우리는 모두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더? 이미 목표는 완전 달성인데?
바보같은 녀석들아. 우리의 꿈은 이런게 아니야.... 우리의 꿈은 더 높은 곳에 있잖아...
저는 흥분에 키보드를 내려칠 뻔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잊고 있었어요.
시험의 계곡에서 사과를 따던 저는 이런 시시한 존재로 멈추려고 몇 날을 싸워온 게
아닙니다. 더 높은 곳, 더 깊은 곳, 바람과 햇살이 닿는 모든 곳을 가려고 했던
겁니다. 제발... 아제로스와 아웃랜드에 있는 모든 영웅들이여. 저의 길마님에게
마지막 힘을. 그가 새로운 영웅으로 거듭나기 위한 힘을 주세요. 부탁입니다.
한번도 제 소원을 들어준 적이 없잖아요. 맨날 주사위 저주로 지기만 한 인생에
마지막 꽃을 피워주세요. 그 꽃의 이름은 분명히 길마형의 이름일 겁니다.
'그건 님이 참견할 바가 아니구요. 3만골갑니다.'
3만골?! 무려 3배?! 순간 바퀴의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분노와 치욕으로 떠는
그의 모습은 지옥에서 걸어나온 아귀 그 자체입니다. 저 우직한 목소리와 동작으로
부르는 3만골 입찰은 마치 노량 해전의 이순신 장군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바퀴는 순간 정신이 멍해진 겁니다. 여기까지 왔는 데...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립니다. 30만골이 있다고 해도 이미 쓴 돈도 있고
피울 하나에 3만골은 절대로 싼 가격이 아닙니다. 그는 종을 잡지 못합니다.
이때 길마가 승부수를 띄웁니다. 그는 마치 방사인 것처럼 나지막히 얘기합니다.
'후후 이래서 블앨 키우는 양산형 바퀴들이란, 오리 때부터 한 우물만 키운
사람만 못하지... 호드에 블앨이 뭐야? 오덕후 같으니라고. 녹템은 또 뭐고
쪽팔리게~'
야구에서 한 타자가 투수로부터 스트라이크 3개를 받으면 아웃입니다. 방금의
길마형의 공격은 투스트라이크짜리 공격이었습니다. 바퀴는 드디어 폭발하고
맙니다.
'지금 저 들으라고 하신 거에요? 아하~ 그래요 한번 죽을 때까지 해봐요.
6만골. 자신있으시면 부르시던가? 어디 오덕후 아닌 님은 얼마나 부르는지
한번 구경해봅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길마형에게 눈치를 줬습니다. 이제 충분하다. 피울하나로 이미
6천골남짓 들어왔다. 이제 그만 쉬자. 이정도면 충분하니까~ 하는 눈짓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길마형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백전백승의 명장. 기필코 인벤의
골드를 모두 말려버리겠다는 길마형의 의지가 마치 성기사의 오오라처럼
눈빛에 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내 삶은 모두 패배와 치욕으로 점철되어왔어. 언제나
레이드 인생 쪼들리기만 했지. 나라고 투기장, 전장 가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야.
넌 기억하니? 내가 투기장 처음 갔을 때를?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길마형...
알아요. 형도 모르게 방가를 넣고 아연실색하는 상대 마법사의 표정을 말이에요.
형의 컨트롤은 발컨이 아니에요... 몸에 새겨질 정도 형은 탱킹을 해왔어요.
이미 몸의 근육 한 줄, 뇌의 세포 한개 모두다 탱킹을 위한 동작이라는 걸요.
그래... 너도 기억하는 구나. 난 이미 전장에서 꼬리 내린 개란다. 컨은
이제 완전히 없어졌지. 하지만 오늘을 통해 난 다시 태어나겠어! 나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란 말이야!! 간다!! 더 이상 나는 도망치지 않겠어! 탱노예라는 말도
지겨워! 나는 다시 태어날 거야! 더 이상 비굴하게 숨어살지 않겠어!!
이 남자의 마지막 일격을!!! 온 몸으로 받아봐라!!! 이 망할 바퀴 자식아!!!
이게 바로 응징이다!!! 지난 영던에서 뺏긴 내 방숙템, 무분템!!!
이 자리에서 모두 갚으며 참회하거라!!! 그래, 나는 언제나 도망치고 지는
인생을 살아왔어. 언제나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지. 하지만 괜찮잖아!
이번 한번만은 나도 이겨보고 싶어! 승리!! 그것도 압도적인 승리!!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그 승리를 말이야!! 마지막으로 이겨본 게 언제지?
언제나 지고만 살아온 내 인생에 승부수를 띄우겠어. 그래 나는 날아가는 거야!!!
이 아름다운 세상에 구더기처럼 기고 있지만은 않겠어!! 나의 집념으로
나의 욕망으로 날개를 만들어서 저 높은 하늘로 날아갈거야! 언제나
울면서 바라보기만 했던 저 높은 하늘을!! 자 모두 잘 봐라!!
이게 바로 내 진정한 힘이다!! 120%의 나란 말이다!!!
'간다!!! 상위 입찰 해볼테면 해봐라!!! 나는 지지 않아!!!! 60만골!!!!!'
'ㅇㅇ 님 드셈'
<그날 늦은 밤. 어둠달 골짜기>
"헤헤, 길마형. 나 드디어 빠른새 샀어~ 내가 좋아하던 미리 점찍어둔 새야."
"하하, 이 바보 녀석 같으니라고~ 야 빠른새 사니까 좋냐?"
"응~ 짱 좋아~ 와 내가 어떻게 느린새타고 다녔지?"
"이야 좋겠다~ 부럽네~ 나도 한번 태워주라 하하하하하"
".....길마형... 그런데 전혀 행복하지가 않아.... 왜 이러지? 나 막 눈물이 나오는걸?"
"무슨 소리야? 맨날 저녁 8시만 되면 접속해서 빠른새사야한다고 영던도 가지 않고
골드만 파밍한 주제에~ 새가 듣겠다~ 그런 말 하지마 하하하하하"
"길마형... 형... 형.... 나 이 빠른새 반납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없었던 걸로
하고 싶어. 왜 이리 나 약해지는 걸까?"
"이 바보야!!! 그런 말 하지마!!!"
"형 오늘 술이나 빨러 가자. 나 오늘 술 살께...."
길마는 차마 차비마저 모두 써버렸다는 말을 할 수 가 없었다. 그저 지난 몇 년간
자신과 함께해준 좋은 친구에게 /포옹 해주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에필로그>
그 날 이후로 우리 공대에는 길마의 땀, 길마의 눈물, 길마의 분노라는 템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길마형이 어떻게 60만골을 모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바퀴는
악착같이 돈을 받아냈고 우리 나머지 8명은 6만골 정도를 분배받았다. 어느 날 우체통에
'수고하셨음 ㅇㅇ'이라는 제목의, 발송인이 바퀴로 된 우편을 열고 편지지가 찢어질 정도의
골드를 받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은행원을 부여잡고 눈물만 흘렸다. 평생을 속고 왔다.
속인 적도 없다. 단 한번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넌 그 마음씨가 착하고 여리기만 한
바보를 생각하며 나는 웃어줘야했지만 울 수 밖에 없었다. 레이드는 진도가 척척 나간다.
왜냐하면 전멸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리라. 각종 도핑 물약이 쉴 새 없이
쏟아져나왔다. 비단 그것만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그 물약을 마실 때마다 한 남자의...
고뇌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 그는 우리에게 도망처온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돌진해온 것이다. 아주 옛날 처음으로
화심으로 갔을 때, 모두가 긴장하고 떨고 있을 때, 처음으로 본 라그의 압도적이고
거대한 모습에 돌격을 했을 때처럼 말이다.
p.s 그 바퀴가 사실은 다른 공대의 메인 힐러였으며 30만골도 빌려서 급조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진심으로 사람이 사람을 왜 죽이면 안되는가에 대해서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