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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에 대한 한 일베글 반박
게시물ID : history_99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도본좌
추천 : 0
조회수 : 5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09 00:23:55

*이 글은 일베의 한 글을 반박한 것이며 일베인글은 빨간색으로 하고 저는 문제있는 부분에 대해 주석을 다는 역할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뒤말 다 자른건 아니냐에 대한 의혹을 없앨수 있도록 원문 링크도 대겠습니다. 하자가 발견될시 누구라도 덧글을 다시기 바랍니다.(일베인도 환영입니다.)

*그리고 광주항쟁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역사학의 영역이기 때문에 여기 글을 씁니다.

원문:http://www.ilbe.com/1375052645

600명 이론은 추측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한 탈북자의 ‘카더라’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다. 

알고있다. 그냥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추측에 일부 극우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카더라식 정보가 들어간 것이다.

이 특수집단 600명이 이룩한 전략과 특수전 수행능력(이동 중인 20사단 사령부 습격-사단장 등 지휘용 지프차 14대 탈취- 그 차량들을

몰고 아시아자동차로 직행-장갑차 4대 및 군용트럭 300여대 탈취-5,000여정의 총기와 폭약 탈취-폭약과 뢰관과 도화선 조립) 폭동의 최일선에 나섰던 양아치로 대변되는 최하층 계급 400여명의 능력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대체 이 글을 쓴 자는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가? 게다가 아무리 군인이 잘 훈련된다한들 400명의 공격에 그렇게 잘 대처할수 있었을까? 게다가 인명피해도 상당히 적다.

1985.5.28. ‘조선노동당출판사’가 발행한 “광주의 분노‘ 제35쪽에는 ”600여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이 무기고, 폭약, 뢰관들을 빼앗아내었고, 200여명으로 구성된 또 다른 한 폭동집단은 시내의 향토예비군 무기고들을 들이쳤으며, 21일 오전부터 오후 4시까지 카빈총 2,240정, M1보총 1,235정, 권총 28정, 장갑차 4대, 군용차량 400여대, 수백키로그람에 달하는 폭약과 수백개의 뢰관들을 획득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이것은 광주항쟁이 북한군과 관계없다는 걸 증명하는 또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저들은 분명 저기서 '폭동군중'이란 말을 썼지 인민군이나 그런 단어를 쓰지 않았다.

20만 명을 동원하는 도시게릴라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북괴는 얼마로 판단했을까? 

필자가 북괴의 입장에 서 있었다 해도 1,000명 정도는 돼야 한다는 염두판단을 했을 것이다.

필자는 소위로부터 대위에 이르기까지 44개월 동안 월남전에서 전투요원으로 

수많은 작전을 수행하면서 작전에 필요한 병력규모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직관을 길렀다. 

아마도 광주에서 5월 19-21일 사이에 벌어진 작전상황 일지를 읽어본 군 출신이라면 

그런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는데 적어도 숨은 전문꾼이 1,000명 정도는 동원되었을 것이라는 염두판단을 할 것이다.  

게릴라전의 단계 단계마다 선동이 먹혀드는 유언비어를 즉시 생산해 내고, 

시민들 의 앞장에 서서 전문적인 방법으로 선동하여 군중 심리를 자극하고, 양아치 세력을 모집하고, 

44개 무기고를 사전답사-운전-선임탑승-시민들 선동하여 차에 타도록 하고, 무기고를 털 때마다 앞장을 서고,

곳곳에서 투쟁분위기 만들어 시민들을 동참케 하고, 요소요소에 박혀 상황을 기록하고,

요소요소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북에 통신하는 등의 게릴라작전에 투입돼야 할 구체적인 병력소요가 얼마나 돼야 하는지를 판단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대남사업부 총사령관 김중린은 병력 소요를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졌다고 한다.

이게 어떻게 수십 명 단위의 특수요원으로 실행될 수 있었겠는가?  

결론을 먼저 내놓고 거기서 더 큰 결론을 끌어낸다. 근데 먼저 정한 결론이 충분히 신빙성있는 것일까? 혹시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삼천포로 빠지게 하는 주요 길잡이가 아닐까?

병력소요가 판단되면 그 다음은 기존의 고첩들 중에서 충당할 수 있는 인력이 얼마인지를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수시로 수명, 수십 명 단위의 소조를 편성하여 “남조선 혁명의 전야”로 판단한 

1979년 5월부터 꾸준히 내려 보내 윤한봉 등 광주의 지하조직을 양성하고, 혁명을 준비시키며 이른바

 양아치 계급들을 조직-교육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군대를 다녀온 모든 국민들이 공유하는 상식일 것이다.

 왜 하필 광주인가? 광주가 특별한 뭐라도 되나?  혹시 이 글을 쓴 자는 전라도에 대한 지역감정을 그대로 사실이라 믿는것인가?

필자는 임천용에게 북한사회에서 5.18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수기를 수집해보라 여러 차례 부탁했다. 

그는 2009년에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440쪽)을 냈다.  

내용을 정독하면서 필자는 탈북자들이 정성스럽게 쓴 진솔한 이야기들에서 감동을 느꼈다. 

탈북자증언이 약간씩 틀려진단 사실을 이자는 알까?

조금의 부풀림이나 거짓을 감지할 수 없었다. 김일성이 5.18영화를 만들었는데 황석영이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북한자료센터를 뒤져 탈북자들의 증언이 사실임을 발견했다. 

북의 대남모략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가 1991년에 대대적으로 개봉됐고, 그

시나리오를 황석영이 썼다는 내용도 그 수기집에서 읽었다.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가서 그 영화를 직접 관람했다. 

관람하면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영화음악을 윤이상이 깔았다는 사실과, 그 영화음악의 주제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하나가 맞는다고 다른게 다 참이 되는건 아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가 실존한다고 성경의 기적이 전부 진실인가?

이런 사람들이 TV에 나가 자기가 모르는 사안에 대헤서까지도 다 아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권위 있는 자세로 진실을 부정한다.  

어 이런류의 전문가폄하는 어디서 많이 보던건데?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 수기를 쓴 탈북자들은 100%가 다 북한특수군이 광주사건을 기획하고 앞에서 이끌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이 증언들은 팩트가 없기대문에 무시돼야 하는 것들인가? 

중요한 내용이 없다. 북한이 광주항쟁 기념한다는 것도 맞지만 북한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다. 게다가 사족이지만 북한은 419에 6월항쟁까지 다 기념한다.

팩트에는 증거도 있고 증인도 있다. 

증거는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하는 유사과학적 방법이고 증인은 다른말을 하는 증인이 있으며 애초에 주장하는 증인들 사이에서도 약간씩 말이 다르다.

북한특수군이 왔느냐 아니냐는 사법상의 팩트가 아니라 군이 작전을 하기위해 필요한 정보판단에서 요하는 집단적 정황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집단적 정황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증인들과 팩트들이 있다. 안보영역에 속하는 정보판단과 법에서 피고인을 벌을 주는데 필요한 팩트는 엄연히 다르다.  

필요한 '사실'은 다를수 있으나 그 사실들이 서로를 모순되게 하진 않는다. 

1. 탈북자들의 증언들에 의하면 5.18은 북한특수군이 저질렀다는 것이 북한의 상식이라 증언한다. 이 하나로 판단의 증거는 될 수 없다 해도 무시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007200705&cp=nv 원래 증명되지 않는 개별사례는 깔끔히 무시하는게 과학이다.

2. 황장엽은 “5.18은 북한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북이 저질러놓고 남한에 뒤집어씌운 사건”이라 증언했고, 김덕홍은 남한에 온 이상 이 말은 꼭 해야 하겠다며 4명의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감사당하면서도 ‘5.18은 대남공작부서(3호청사) 사람들이 저질렀고 그 공으로 나의 많은 친구들이 훈장을 받았다’는 증언을 했다. 이는 위 1항에서 탈북자들이 광주에 직접 왔다 간 공화국 영웅들로부터 들었다는 내용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김덕홍의 주장은 무시해도 상관없으나 황장엽의 주장은 그가 전에 조선로동당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무시하긴 힘들다.  이 부분에 대해선 필자도 잘 모르니 말을 함부로 하진 않겠다. 다만 한가지 지적할 점은 항쟁후 당위원 상당수가 훈장을 받았다는데 만약 남파했다 쳐도 실패했는데 훈장을 주나? 게다가 황장엽은 데모나 시민운동이 다 북에서 꾸미는 일이란 말도안되는 주장을 한적도 있기에 무턱대고 받아들이는덴 문제가 있다.

3. 5.18 당시 16세에 특수부대에 들어가 살인훈련과 만능의 운전기술을 터득해 19세에 이른 북한병사가 2000년에 북한 특수군 대장 문제심(2000년에 국방차관급으로 진급)을 호위하며 광주에 왔던 사람이 채널A에 출연했다. 그의 광주 참전 수기를 대신 써준 이주성이 함께 출연하여 증언했다. 이 사람은 현재 분당에 살고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탈북자들간의 주장은 약간씩 틀리며 그런 개별사레는 중요한 증거가 못된다.

4. 166명의 사망자들 중 총상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116명, 이중 69%에 해당하는 80명이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에 의해 사망했다. 당시 계엄군은 M16만 보유했다. 광주시민이 광주시민을 쏘았다? 광주는 80명을 광주시민이 쏘았는지 북한특수군이 쏘았는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981 근거 업데이트를 좀 하자.

5. 1,700명의 죄수와 170명의 좌익수가 수용돼 있는 광주교도소를 장갑차를 몰고 6차례 공격하면서 공수부대와 정규전을 수행했다. 광주시민이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면서 교도소를 공격하여 죄수들을 폭동에 가담시키려 했을까? 

그것에 대한 반박이 아래 링크에 있다.

6. 12명은 한국국민이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군이 아니겠는가?  

시신의 국적이 확인되지 않는것은 으레 있는 일이다. 그럼 얼굴이나 기타 부위에 총을맞아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걍 한국인으로 처리하나?

7.전교조 초대회장인 윤영규는 1980년 5월 23일, 실제로 M16과 수류탄으로 부장한 36인무장조를 도청지하실에서 보았고 그들과 긴 대화를 나눴다. 5월 23일 당시 시민들은 콩가루였지 36인으로 뭉칠 수가 없었으며 5월 23일 현재 시민에 피탈당한 M16은 겨우 7정에 불과했다. 36인무장조의 말은 양아치들의 언어가 아니라 고도로 자제되고 훈련된 말이었다. 

필자는 직접 조사하여 그것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데 성공했다. http://blog.naver.com/brugada?Redirect=Log&logNo=80182700737 그러나 그들의 말을 고도로 훈련된 말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리고 36인으로 뭉친단건 뭔소린가? 이들이 지도부였단 언급은 어디도 없었다. 이자는 무등갱생원에 대한 이 글에도 나온 논리를 쓰지않고 왜 굳이 이런 약한논리를 쓰는건지 궁금하다.(그 논리에 대한 반박은 현재 어려운데 광주희망원의 웹사이트가 막혀있어 자세한 정보를 얻을수가 없다)

8. 계엄군이 시외로 도망간 날은 5월 21일 저녁이었다. 계엄군이 빠져나가자 5월 22일 아침에는 광주의 유지들이 ‘시민수습대책위’를 구성하였고, 가장 먼저 추진한 사업이 무기반납사업이었다. 광주시민이 탈취했다면 절대로 이렇게 빨리 무기반납을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직관적인 정보보단 좀더 신빙성있는 정보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걸로 남을 직관적으로 설득시키기엔 많이 부족하다.

9. 파출소, 세무서, MBC, KBS, 불태우고 무기고 털어 정부군에 총질하고, 교도소 6회 공격하여 수용자들 해방시키려 한 행위들이 광주인이 주도한 행위들인가? 

그것은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 프랑스시민이 한 행위인가?"류의 질문과 다를바 없다. 게다가 애석하게도 교도소를 공격했단 일베의 '팩트'는 반박증거까지 나온 상황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64241
방송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연구도 없이, 이 분야에 대한 독서도 없이, “광주에 북한군은 절대 오지 않았다, 팩트가 없다”고 공격적으로 5.18과 북괴를 옹호하고 나선 전원책-조갑제 류의 경박한 사람들에게 이 이상의 정황증거들과 팩트들은 휴지만큼의 존재도 아니라는 말인지 묻고 싶다. 

필자야 말로 묻고싶다. 이미 역사학계에서 정립됬고 교과서까지 인정한 사실을 왜 거짓된 논리로 부정하는가? 그것은 성경에 안맞는다고 진화론을 공격하는 창조주의자처럼 자신들의 지역차별,좌빨설에 부합하지 않는단 이유로 부정하는것 아닌가?

특히 황장엽의 존재를 반 신격화시킨 조갑제는 어째서 ‘황장엽 어르신’의 말씀과 자기 휘하의 기자였던 김용삼의 용기 있는 증언을 어째서 짓밟고 있는 것인가?  

그럼 당신은 왜 글의 2/3를 탈북자증언에 바치는가? 그것도 그것에 명백히 반대하는 탈북자들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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