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정문 앞에서 김현익(졸업생)이 고대 의대생 성추행자들을 출교조치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8월16일, 고대성폭행 사건의 2차 공판이 열렸다. 박○○과 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배○○는 태연한 표정으로 입장했다. 판사는 지난 공판의 줄거리를 요약했다. 두 사람은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배○○는 혼자 차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고, 상의를 내려주었을 뿐 추행한 적이 없고, 3시 반 이후로는 잠을 자느라 몰랐다는 주장을 재확인하였다. 배○○의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 김○○와 이○○는 출석하지 않았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같은 과의 동기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못하도록 학교에 압력을 넣고 있다”고 말하며, 송○○와 이○○의 증인신청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판사는 입증취지가 배○○의 잠 습관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라면 증인채택이 적절하지 못하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변호인은 증인심문 사항을 제출할 테니 검토해보시고 꼭 채택해달라고 간청했다.
#4시간가량 비공개 심문, 피해자는 울먹이고 가해자 어머니 고성이…
피해자의 증인 심문은 비디오장치를 매개로 다른 방에서 중계하며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피해자의 법률상담을 맡았던 변호인이 피해자와 동석하길 원하였으나, 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사는 형사소송규칙상 법리상의 문제가 있다며,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상담심리사가 아닌 변호사의 동석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형사소송법 163조 2항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29조에는 피해자의 신문시 재판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등의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의 동석을 허용한다고 되어 있는데, 변호사를 ‘신뢰관계에 있는 자’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대법원 규칙에는 동석인의 범위로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 가족, 동거인, 고용주로 명시되어 있다.)
방청객을 물리고, 4시간가량의 비공개 심문이 이어졌다. 피해자가 울먹이며 소리치는 음성과 비공개 증인(배○○의 어머니로 추정)의 고성이 재판정 밖으로 간간히 들렸다. CBS라디오에서 한 피해자 언니의 전화 인터뷰에 의하면 피해자가 피고측 변호인 4명을 혼자 상대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으며, 특히 배○○의 변호인이 3시간 동안 너무도 사소한 질문으로 피해자를 집요하게 심문하여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피해자의 언니는 그 전에도 배○○의 부모가 피해자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겠다고 계속 집으로 찾아오고, ‘이런 게 알려지면 너도 끝’이라며 협박하였으며, 지난 공판 후에는 기자들에게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으며 우리 아들은 잘못이 없다는 말을 계속 하고 다녔다고 한다. 배○○측의 피해자 괴롭히기는 도를 넘은 듯하다. 8월29일 최영희 의원실의 발표에 의하면, 6월 초 가해자들이 구속되기 전 학교징계위원회에 제출되기 위한 용도로 같은 과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가 행해졌는데, 문항내용이 피해자는 평소 이기적인지 아닌지, 평소 사생활이 문란한지 아닌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었으며, 피해자는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변호인 “펜션 방이 얼마나 좁은지, 현장검증을 하자” 이것이 말로만 듣던 과학수사?
4시간 만에 비공개가 풀리고 다시 방청이 허락되었다. 이동통신사의 카카오톡 문자내역, 고대 양성평등센터의 피해자 진술이 담긴 상담일지, 박○○과 한○○의 이메일, 박○○의 MP3 녹음파일과 녹취록 등이 증거로 채택하였다. 배○○의 변호인은 김○○, 이○○의 증인신청은 철회하겠지만, 송○○과 이○○의 증인채택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고집하였다. 피고인의 행동과 습관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평 펜션을 현장검증해야 한다는 신선한 발언을 하였다.
판사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대체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자, 변호인 “실제로 가보면 사진과 많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8시의 조명상태라든가 방의 크기라든가…”하였다. 판사가 “뭘 입증하기 위한 것이죠?”하고 묻자, 변호인은 “방이 좁아서 박○○이 배○○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면 배○○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였다. (그러니까 박○○는 배○○가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자고 있었다고 말했는데, ‘방의 크기가 매우 좁아서’ 배○○가 움직였다면 박○○가 못 느낄 수가 없기 때문에 배○○는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 맞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과학수사인가? 이를 입증하기 위해 가평으로 현장검증을 요청하는 박변호사의 열정이 참 감동스러웠다.) 판사는 현장상황을 촬영하고 측정하여 제출하라고 말하며 현장검증을 허락하지 않았다. 같은 날 고대 상벌위원회가 열렸다. 가해자들의 징계수위가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결정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출교가 아닌 퇴학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소식이 비공식적으로 들렸다. 학교 측은 ‘교육을 통한 교화가능성’과 출교를 시킬 경우 가해학생들에게 소송을 당할 우려를 언급하였다. 한편 피해자는 출교가 아닌 퇴학으로 결정되어 가해자들의 재입학이 가능해질 경우, 자신이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변호인, 피해자가 문란했는지 묻더니 “배○○는 둘만의 관계에서는 진짜 피해자입니다”
8월 30일, 3차 공판이 열렸다. 변호인 측 증인 이○○이 출석하였다. 배○○와 의대 동기이나 휴학으로 본과 3학년인 남학생으로 배○○가 안산병원에서 실습돌 때 증인의 복층 오피스텔에서 4주간 같이 거주했다. 변호인은 “배○○와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고, 배○○를 면회한 적이나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없지요?” 하며 확인시켰다. 그리고는 “학생들이 동료인 피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을 꺼리고 있고,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이자 분당 서울대병원의 의사이신 증인의 아버님이 증언을 하라고 말씀하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지요?”라고 다소 장황한 소개를 하였다. (서울의대교수 운운은 증언의 도덕성을 강조하기 위함이겠지만, 듣기에 따라 ‘아버지에게 등 떠밀려서 나왔다’고 받아들일 여지도 있지 않을까?)
질문은 결국 배○○의 잠버릇에 관한 것이었다. “4주간 함께 살며, 8~9회 술을 함께 마신 적이 있는데, 배○○는 맥주 한잔을 마시고 누우면 5~10분 만에 잠이 듭니다. 나보다 출근시간이 30분 정도 빨랐는데 알람이 울려도 깨지 못해서 내가 배○○가 자는 2층까지 올라가 알람을 대신 꺼주고, 깨워도 잘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라고 증언하였다. 검사는 “일어나지 못한 것은 실습이 힘들어서는 아닌지, 함께 여행한 적은 없는지” 물었다. (술 마시고 자면 못 깬다는 게 요지인 모양인데, 1달에 8~9회 지각을 하고 실습점수는 어찌 받았누?) 판사는 동료들이 증인 출석을 꺼린다는 것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물었다. 증인은 동기에게 “껄끄럽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답했다.
변호인은 “증인은 피해자를 잘 아는지?” 물었다. 증인은 잘 모른다고 답했지만, 변호인은 질문을 이어갔다. “여학생이 (변호인은 아까부터 피해자를 자꾸 여학생이라고 지칭하였다) 피고인에게 ‘내가 그런 이미지가 있어서 고민했는데…’ 라고 말했는데, 여학생에게 그런 이미지가 실제로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판사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피고인 박○○의 증언에서 피해자가 ‘내가 그런 이미지가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어서…” 하자, 판사는 ‘그런 이미지’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변호인을 약간 당혹스러워 하며, “많은 남자와 이성 관계를 맺고 남자 친구가 있으면서 다른 남자를 또 사귀고…” 라며 답했다. 그 유명한 ‘문란’ 논란 되시겠다. 검사가 그런 질문을 왜 하는지 이의를 제기했다. 변호인은 “피해자의 진술을 탄핵하기 위함입니다. 배○○는 이 사건에는 피고인이지만, 피해자와 둘만의 관계에서는 진짜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대박 소신 있는 발언을 하였다. 판사는 증인에게 답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둘만의 관계에서 피해자라…그러니까 변호인은 배○○는 함께 성추행을 하지 않았고, 다른 피고인들도 배○○는 움직이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피해자(아니 변호인의 말로는 ‘그런 이미지가 있는 여학생’)가 둘 사이의 뭔 앙심으로다가 배○○가 함께 성추행했다고 몰아간다는 뜻인가 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