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에서 갑자기 엄마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뭐? 법원?” 방 안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저는 바퀴벌레라도 나왔나 하고 놀라서 거실로 뛰쳐나갔습니다. “왜? 왜? 무슨 일이야?” 물어보니 아빠가 법원에 가셔야 한다더군요. “아, 난 또 바퀴벌레라도 나온 줄 알았잖아” 하고 들어가서 다시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 아빠는 고등학교 선생님입니다. 누구보다도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졸업생들이 스승의 날마다 전화를 하고 찾아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시고, 교직 생활 20여년에 접어든 지금도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기도를 하고 들어가십니다. 이번 시간에도 학생들에게 참된 교육,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우리 아빠에게 그냥 다른 선생님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습니다. 뭐, 굳이 말하자면 우리 아빠는 사립학교 전교조 선생님이고, 민주노총에 근 5년간 후원을 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집으로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법원에서 온 편지였습니다. 편지 안에서 아빠는 ‘범죄자’였습니다. 아빠가 저지른 ‘범죄’가 기록된 ‘범죄일람표’에는 2006년부터 민주노총에 월 5000원씩 후원을 한 통장내역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아빠는 5년 동안 모두 27만원을 민주노총에 정기적으로 후원했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아빠가 여전히 자랑스럽습니다. 아빠가 우리 보기에 떳떳하지 않은 일을 한 적은 없으니까요. 저도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수업시간에만요. 수업시간에 어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아직 두뇌가 말랑말랑한 학생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3학년이고 당장 내년에 선거에 참여할 유권자이지만 아직도 선생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어떤 정치 이슈를 가지고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토론하는 것은 좋은 정치·사회 수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정치 이슈에 대한 교사의 일방적인 견해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때까지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께서는 모두 저런 원칙을 지켜주셨고,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이라고 다를 건 없습니다. 솔직히 대부분 학생들은 전교조니 뭐니 이런 것도 잘 모릅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일 뿐이지요. 전교조란 이유로 학생들을 ‘선동’하는 분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빠는 ‘교사’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아빠는 교사이기 전에 한 개인이고,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빠가 한 개인으로서 특정한 정당을 후원하고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 것이 범죄라면,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정치 교과서는 수정되어야 합니다. 국민은 정권을 잡고 있는 정당과 견해가 같을 때만 정치적 자유를 가진다고요.
토론의 기본 원칙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정당한 근거를 들어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토론에 정답은 없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도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뭐, 그래도 그 주관적인 기준을 잣대로 아빠를 범죄자로 만들어버리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럼 그냥 저는 범죄자 아빠의 딸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서 그들만의 ‘정답’에서 벗어나 범죄자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