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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고문관 이야기(1)
게시물ID : military_237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55FDC
추천 : 10
조회수 : 142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6/10 17:49:42

날씨가 더워 정신이 없으므로 음씀체.


본인은 닉넴대로 K55 자주포를 모는 포병부대에 사격지휘병(FDC)으로 근무함.

포병부대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K-55 자주포는 아래 사진처럼 생긴 자주포임.


(사진출처 : http://www.donga.com/e-county/sssboard/board.php?tcode=03015&s_work=view&no=82&p_page=7&p_choice=&p_item=&p_category= )

사격지휘병(FDC)은 관측반이 적 위치를 알려주면 어떤 각도로 포를 쏴야 할지 계산해서 포대에 알려주고,

"준비! 쏴!" 명령을 직접 하달하는 병사임.


본인은 6월 군번인데, 본부포대 작전과에 배치 받고 갔더니 1월 군번, 5월 군번 이등병이 빠글빠글한 안습한 상황.

(부대에 이등병이 많다는 건, 후임병 받기까지 엄청 오래 걸린다는 말임)

게다가 그 1월, 5월 군번들이 죄다 나랑 같은 지휘통제실 근무자임. 사격지휘병이라거나, 통신병이라거나, 행정병이라거나...

(임xx, 김xx, 김xx, 이xx... 너희들 잘 살고 있냐? 사회에선 보지 말자... ㅅㅂ)


암튼 그렇게 길고 긴 쫄따구 생활을 보내고 일병생활도 마무리될 쯤에, 드디어 부사수가 신병 받아라 하고 들어옴.


지금은 아마 금지됐겠지만, 예전엔 부사수를 "아들"이라 부르곤 했음.

부사수한테는 사수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갈구던 시절임.


이제야 아들놈 생겼다고 좋아라 하던 내게, 이 녀석 첫인상이 나쁘지는 않았음.

비록 소싯적에 무쇠 솥뚜껑을 한 10년동안 쓰고 놀았는지 키는 작달막했지만, 군대에서 그게 무슨 대수임?

군복 사이즈만 대충 맞으면 드워프라도 김리 뺨치는 전투병으로 만들 수 있는 게 군대이거늘...

다만, 그때 그 녀석 겁먹은 눈동자가 어릴 적 낚시해서 한나절 동안 아이스박스에 담아뒀던 우럭마냥 흐리멍덩하단 걸 미처 못알아차린 게 내 일생 일대의 한임...  


암튼 이녀석, 자대배치 받고 한 달도 안됐는데 사격지휘병 후반기교육 받으러 "이등병의 천국"인 상무대로 휙 떠나버림.

간부들 생각엔 대학 다니는 사병이 드물던 시절, 그래도 전문대지만 공과계열 졸업도 한 아들놈이 FDC로는 적격이었던 것임.


그렇게 내 쫄따구 생활은 거의 2달이나 늘어났음.

(내 밑에 후임병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육군 전체를 뒤집어봐도 꿀리지 않을 고문관이었기에 패스... (눈물 좀 닦고)...이눔 얘기는 다음 기회에...)


이제 상병도 달고 한참 바쁠 시절에 아들놈이 룰루랄라 복귀함.


때맞춰서 군단포술경연대회가 몇달 안남았기에, 아들놈을 포함해서 FDC들은 끝이 안보이는 집체교육(이라고 쓰고 갈굼과 얼차려의 향연이라 읽음)에 들어감.

아들놈 후반기교육도 짱짱하게 받아왔겠다, 바로 집체교육에 투입됨.


설명을 좀 더하자면, 집체교육이란 게 문제집 푸는 것이라 생각하면 됨.

문제집에는 적 좌표, 포대 좌표 등이 나와 있고 FDC는 정해진 시간 내에 편각, 사각, 장약, 신관 등을 계산해야 하는 것임.

근데 포탄은 당연하게도 정확하게 떨어져야 하므로, 포병이 사용하는 각도는 일반적인 360도의 1도를 20으로 나눠서 6400밀로 계산함.

1~2밀 정도 계산이 틀리는 건 가능하겠지만, 10밀 정도 틀리면 탄착지에서는 1km 이상 빗나간다고 보면 됨.

100밀 틀렸다? 적군에 떨어져야 할 포탄이 아군 머리 위나 민가에 떨어지는 모양새임.

(실제로 xxx사격장에서 모 해병 포병대대에서 쏜 포탄이 우리 부대 관측반 코앞에 떨어짐. 구멍이 숭숭 뚫린 닷지차를 바람같이 몰고 내려온 관측장교(중위)가 해병대대장(중령) 멱살 잡고 항의하는 거 봤음. "관측반 다 죽일 셈입니까~~~!")

실제로도 이렇게 포 쏘면 바로 FDC 전체가 영창 직행임.


어라라... 아들놈 영창가게 생겼음.

흔히 틀리는 자릿수 올림 실수 정도가 아님. 몇십밀이 문제가 아니라 몇백밀, 심지어는 천밀 단위까지 왔다갔다 중구난방임.

정신 안차리고 계산한다고 디지게 혼나고 얼차려 받으며 반나절동안 풀어도 나아질 기미가 안보임.

 

이등병이라 얼어서 그런가 싶어 시간을 충분히 줘보기로 함.

3분 안에 풀어야 할 문제(저사계)를 30분이 걸려도 괜찮으니 풀어보라고 함.

심지어는 선임병들도 다 나가게 하고 혼자 풀게 함.

25분쯤 혼자 낑낑거리더니 다 풀었다고 사격제원지 내밈.



이런 ㅅㅂㄹㅁ...

한 600밀 차이 남. 망했음. 

600밀이면 시밤... 각도로 쳐도 30도임.

평양쪽으로 쏠 대포를 개성공단에 쏠 놈임.

이정도로 실사격 했으면 14박 15일 영창을 3회 연속 가도 모자람.


애비인 날 비롯해서 선임병들 머리 빠개지기 시작함.



선임들이 모여서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원인 분석이 안됨.


대표로 내가 풀이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기로 함.


한참을 지켜보는데...


어라라....???


3 x 6 = 15?

4 x 8 = 26?


.... 그랬다, 무려 전문대 공과 졸업생인 내 아들놈은

구구단을 못했던 것이었다....


난 아직도 아들놈의 그 환한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분대장의 읍소로 전출간 옆 포반에서 40kg짜리 고폭탄을 양 어깨에 맨 채로 뛰어가다가 날 보고는

그래도 한때 애비였다고 싱긋 웃어주던 그 환한 미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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