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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촛불시위의 주동세력이 되다
게시물ID : sisa_538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와싸비앙
추천 : 19
조회수 : 47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8/06/14 14:48:34
거의 눈팅만 하는데 참 오랜만에 글 올려 봅니다. -------------------------------------------------------------------------- 6월 1일 토요일 밤, 한달이 넘게 계속되는 촛불시위를 지켜보면서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다. 아무 힘 없는 시민들이 짓밟히는 것을 보며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저 다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난다. 파리에서도 촛불 집회가 열렸다던데.. 시애틀에서는 하지 않는지 열심히 인터넷 게시판을 기웃거려 보지만 아무일 없다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kseattle 자유게시판에 시애틀에서 촛불 집회가 없는지 글 남겨보고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리플들을 확인해보니 "초 값이 아깝다", " 먹고 살만 하니깐 별짓을 다 할려나" 등 별의별 악플이 달렸다. 미국에 한나라당 지지하는 수구꼴통들이 득실대고 있는 건 이미 5년간의 유학생활로 뼈저리게 체험한터라 그리 놀랍지도 않지만 힘이 쫙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라도 관심 가져주면 좋으련만, 대부분 외면하려 할 뿐이다. 월드컵 때는 좋다고 '대~한민국'을 외쳐대더니, 사람들이 참 염치가 없다. 부끄러운 20대들의 모습이 내 주위 사람들이라고 뭐 특별히 다를거라 기대한 내가 잘못이다. 어느새 kseattle 게시판의 뜨거운 감자가 되버린 내 글에 달린 리플들을 확인해보니 그래도 한국의 현 상황에 분노하고 안타까워 하시는 분들이 꽤 있다. University of Washington(유덥) 유학생 싸이 클럽에도 가보니, 회원이 아니라 글을 읽을 수는 없지만 "우리도 나서야 되는것 아닌가요?"라는 글 제목이 눈에 띈다. 적은 수일지라도 조금이라도 모여서 한국에 계신 분들에게 응원 메시지라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게시글에 내 이메일을 남기고 결국 http://seattlecandle.tistory.com에서 의견을 모으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몰상식에 분노하고 걱정하는 한인들의 의견 교류의 장입니다"라는 두리뭉실한 블로그 소개글만 남기고서. 다음날 아침 확인 해보니 꽤 뜨거운 반응이다. 힘이 난다. 그런데 사람들의 의견만 모아보려고 시작한게, 어느새 내가 이끄는 모양새가 되버렸다. '그래, 이번주까지만 어떻게 해보고 주말에 사람들이 모이면 더 능력있는 분이 리더쉽을 맡아주겠지'라는 심하게 낙천적인 생각으로 시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본다. 날짜는 우선 비 올 확률이 가장 낮은 일요일로, 장소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일장일단이 있어 시애틀의 상징인 Space Needle로 정한다. 미국의 집시법도 확실히 알아봐야 하고 시위의 내용도 확실히 정해야 하는데 댓글로만 토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해가 늦게지는 시애틀의 특성상 촛불은 들지 않기로 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 몇 명 모아서 피켓 몇 개 들고 그러면 될 줄 알았는데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리더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으며 내가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세가지 이유를 블로그에 남겨본다. 1. 국민의 목소리를 기만하는 이명박 정부를 지탄함 2.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 3. 비폭력 시위의 과잉진압 문제 대략적인 사항을 정리하고 보니 어느새 목요일 저녁. 이것 때문에 회사 일을 뒷전으로 미룰 수는 없어 요즘 항상 야근이다. 첫 직장 시작한지 두 달 밖에 안되서 눈도장 좀 잘 받아볼려 했건만 뜻대로만은 되지 않는게 인생이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번호를 확인해 보니 한국에 계신 아버지 번호다. "여보세요?" (아무일 없다는 듯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도 이해하시리라 생각하지만 괜한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준비는 잘 되가고 있냐?" (헐, 어떻게 아셨는지 너무도 깜짝 놀랐지만 시치미 뚝 떼고 물어본다.) "예? 뭐요?" (어떻게 아셨는지 나중에 여쭤보니, 동생이 오마이뉴스 시애틀 촛불기사에 뜬 '와싸비앙'이라는 아이디를 보고 나란 걸 알고 말씀드렸다 한다.) 뭐라고 나무라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시는 지, 현지법에 위배되지 않게 조심하라는 것과, 일이 커질 경우 나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정의를 위해 자신을 어느정도 희생하는 것도 옳은 일이지만 이미 한국에서는 촛불시위가 불타올랐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위험성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씀이시다. 위험성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 한걸음 물러나는 걸, 자존심 때문에 주저하고 부끄러워 해서도 안된다는 말씀 해주신다. 어머니는 내 소식을 듣고 밤새 못 주무셨다 한다... 제가 집회를 이끌려고 하는건 아니고 사람들 의견을 조율할 뿐이라고 말씀드리며 전화를 끊는다. 이렇게 또 불효를 저지르다니 가슴이 메여오고 너무나 죄송스럽다. 사실 나도 준비를 하면서 촛불시위가 이미 한국에서 대폭적인 지지를 받고있는 상황에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혹시나 나에게 안좋은 일이라도 생긴다면 정말 씻지못할 불효를 저지르는 것인데... 복잡한 심정으로 잠이 든다. '그래, 내가 시작은 했으니까 이번 한번만 해보자'라는 생각과 함께. 토요일 오후 2시, 시위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만들기 위해 네 명이 모였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라 어색할 법도 한데 그럴새도 없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서 일을 시작한다. 나는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 파악을 맡았다.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아무래도 해석하기 나름이라 쏙 빼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사실'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청와대 홈페이지로 가서 협상 내용을 샅샅이 파악한다. 청와대의 주장이 100%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미국 FDA 사이트를 뒤져가며 협상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정리할수록 이런 날림 협상을 해온 협상단에 대한 분노는 더해져만 가고 잠은 싹 달아난다. 밤을 꼴딱새면서 준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침 11시다. '몇 분이나 오실까, 탈 없이 무사히 시위 마쳐야 할텐데' 별별 생각을 하다 잠이 든다. 단잠을 자고 나니 몸에 힘이 난다. 날씨도 예보와는 달리 화창하다. '하늘이 돕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스페이스니들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너무 고파 핫도그 3개를 사먹는다. 쇠고기 시위를 하면서 저질 핫도그로 배를 채우고 있는 내 꼴이 참 처량하다. 하나둘씩 모이던 사람들이 어느새 서른여명 정도로 불어나 있다. 스페이스니들 옆 놀이공원으로 모여 시위를 시작해보지만 난생 처음해보는 시위에 긴장도 되고 정신도 없다. 태극기를 두르고 다같이 이것저것 구호도 외쳐보고, 한국에 보내는 응원의 의미로 일렬로 쫙 서서 파도타기도 해본다. '아리랑'이나 개사한 '쾌지나칭칭'을 다같이 신나게 부르는 모습에서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풍물로 힘을 내고 여유 가득하던 조상님들의 모습이 언뜻 스치는 듯하다. 두 경찰이 와서 무엇에 관한 시위인지 확인을 하고 떠난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눈길 한번 슥 주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사람, 몇분이고 서서 우리가 준비한 내용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 받아든 플라이어를 읽고는 다시 돌아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알려달라며 돌려주는 사람, 우리랑 함께 사진찍고 가는 사람까지. 4시반쯤 되어, 시위를 슬슬 정리하며 그제서야 서로 소개도 하고 앞으로의 시위 방향에 관한 토의를 하는데 가족단위로 오신 한 아주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오늘 아이들을 시위에 데리고 나오시면서 이런 집회를 하게된 이유를 설명하셨는데, 이런 말을 하더랜다. "그런 사람을 왜 대통령으로 뽑았어?" 가슴이 울ㅤㅋㅓㅋ한다. 이명박을 뽑진 않았지만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함께,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이런 고생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앞으로의 시위 방향은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에 관한 심판은 한국에 맡기고, 한국의 협상단이 재협상을 위해 미국에 온 이상 제대로 재협상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미국에 있는 한인들은 '쇠고기 재협상 요구'만을 전면에 내세워야 겠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본다. 내가 이 일에 나서게 된건 결국 우리나라를 사랑해서 아닌가. 예전에 노통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지만 집회에 오신 분들은 이명박 정부의 비판도 계속 같이 갔으면 하는가보다. 다음 모임 때 제대로 한번 더 얘기해봐야 겠다. 지금 시각 6월 13일 금요일 밤 10시. 2차 집회가 벌써 내일 모레다. kseattle 자유게시판은 지금 시애틀 촛불집회 반대글로 난리다. 대부분 감정에 치우친 기본적인 토론의 예절조차 갖추지 않은 비논리적인 글이라 일일이 응해주기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이런 글이 올라올수록 난 고맙다. 반대하는 이들이 흥분해서 말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바닥이 보이고 있고, 혹시 맞는 소리를 한다면 귀기울여서 고쳐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촛불집회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그 길로 가련만, 밑도 끝도 없이 국가 망신이라고 창피하다는 사람, 학생이면 공부나 하라는 사람, 그놈의 지긋지긋한 좌빨 타령 하는 사람, 더 나은 대안은 없으면서 촛불시위는 반대한다는 한국의 내 친구들과 별 다를바 없어 보인다. 그래도 아직 인격적인 수양이 부족해서인지 타인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여여하게 산다는 게 참 어렵다. 소모적인 논쟁으로 몸과 마음도 지친다. 그냥 때려 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다. 요즘 김진표의 역전만루홈런이란 노래를 무한반복중이다. 지친 내 맘을 너무나도 잘 달래준다. 뜻을 같이 하는 친구라도 한 명 옆에 있다면 좋으련만. 그래도 힘 낼란다.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듯 나도 대한민국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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