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에 또 뭔가 시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내용을 파악해 보니, 김성주 신임 적십자사 총재가 다음과 같이 얘기한 모양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가 옛날에 일본의 식민지 노릇을 하게 된 것은 일본사람들이 나빠서 그런게 아니라 우만의 문제였다고 주장한 모양이다. 혹시 내용의 앞뒤가 다 잘리고 일부 자극적인 내용만 뽑아져서 만들어진 내용이 아닐까 하는점이 의심될 정도인데, 이건 그만큼 답답한 주장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반박하기가 귀찮을 정도로. 원래 바보같은 주장일수록 기초부터 가르쳐주며 반박하는게 영 의미가 없는 느낌이 들어 피곤한 법이다.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먼저 다음과 같은 논리를 들어보자.
집에 연탄가스가 자꾸 새나오는 문제가 있을 때 집주인은 이런 문제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연탄가스에 대한 방비를 제대로 안 해서 결국 연탄가스중독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이것을 연탄가스가 나쁘다고 말하기보다는 대비를 안한 사람이 문제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위 논리는 크게 틀리지 않은 내용이다. 연탄가스를 보면서 "네가 나쁜놈"이라고 백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썩 적절한 대처는 아니다. 그리고, 총수의 생각에는 김성주 신임총재는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위와 같은 논리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중일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어느 나라가, 옆에 먹기 쉬운 국력약한 나라가 있는데 자기 이익을 마다하고 그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서 가만 놔두겠는가. 일제시대는 비극이지만, 그 원인은 외국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만한 역량을 키우지 못한 우리의 문제에 있다." 모르면 몰라도, 아마 김성주 신임 총재가 요번의 이 시끄러운 일을 들었다면, 그는 아마 지금 자기 얘기가 위와 같은 내용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총수가 김성주 신임 총재를 답답한 사람으로 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생각해 보자. 일본의 침략행위를, 과연 위 연탄가스의 예와 같다고 볼수 있을까.
위 연탄가스의 예에서는 집주인의 "부주의"가 비난받을수 있다. 그 이유는, 집주인은 마음만 먹었으면 연탄가스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도 순전히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피할수도 있는 사고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올바른 건물관리만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인데, 집주인은 그것을 안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이런게 사회에서는 규정과 매뉴얼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의 형태로 나타난다)
조선은 어땠을까? 당시 조선이, 일본의 침략을 막을수 있는 형편이 넉넉했는데도 막기 싫어서 안 막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일본의 적극적인 침략행위때문에 막지 못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 상황을 연탄가스의 예와 같다고 보는것이 타당할까?
더구나, 설혹 조선이 막을수 있는 국권침탈을 제대로 못 막아서 국권을 내주었다 한들, 그것이 어떻게 "일본이 나쁜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김성주 총재가 가진 빈곤한 논리는 바로 여기서 드러나고 있다. 그 때문에 위에 설명한 "나름 틀리지 않은 논리"가 김성주 총재의 논리일 수는 없는 것이다. 김성주 총재는, 나름 생각해볼 만한 점을 지적한게 아니다. 총수가 보기에는, 김성주 총재는 그 나름 생각해봐야 할 (반성해야 할) 점을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는것 같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그가 가진 빈곤한 철학이 어디서 들어본 얘기와 섞였기 때문에 헛된 얘기를 한 것에 불과하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어떤 노상강도가 가만히 길을 가던 김성주 총재를 공격하여 마구 때리고는, 금품을 강탈해 도망쳤다고 치자. 김성주 총재가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고 무술을 연마했다면 강도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강도와 맞대응하여 강도를 제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성주 총재는 그런 방비를 하지 못해서 강도를 당했다. 이 경우, 이 강도사건의 책임을 김성주 총재에게 물을 수 있을까? 강도가 나쁜게 아니라 김성주 총재의 문제때문에 강도를 당했다고, 엄연한 피해자인 김성주 총재에게 책임을 씌울 수 있을까? 누군가가 병원에 누워있는 김성주 총재에게 와서, "세상 어느 사람이 이익을 볼수 있는 상황을 놔두고 힘약한 사람이 지나가는데 그걸 그냥 두겠느냐, 약한 사람이 옆에 지나가는데 금품을 얻을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가만 놔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따라서, 강도와 맞상대하여 그를 막지 못한 김성주 총재,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 강도가 나쁜게 아니라 당신이 나쁘다." 뭐 이런 얘기를 논리라고 편다면, 과연 김성주 총재 본인은 그 논리에 박수를 치면서 맞아요 내가 나빴어요, 내가 문제에요 하고 답할까? 정말?
조선의 당시 행동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해도 좋다. 조선은 선진문물을 속히 받아들이는데 게을렀고, 국가를 발전시키기보다는 기득권의 권익유지에 치중한 점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 잘못때문에 국민들을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이것은 분명 비난받아야 한다. "국가 유지의 책무"를 게을리 한 탓에 일제시대라는 비극을 맞이했다는 데에서, 그 부실함을 나무라는 의견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 의견은 우리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반성하고 돌이켜보는데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지, 일본의 책임과 악행을 합리화하는데 그 의견이 사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이것은 의견이 아닌 궤변이 된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 기본을 설명하는데 이렇게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니, 참 세상이 피곤하긴 피곤하다.
ps : 인터넷이 있기 전, KETEL이나 HiTEL 등 PC통신이 있었다. 그 시절에도 요번 김성주 총재와 같은 의견을 펴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왔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 의견이 왜 잘못인지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어왔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하루이틀도 아니고 거의 25년이 다 되어가는 옛날인데,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김성주 총재와 같은 의견들이 반박되고 논파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건만, 김성주 총재와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교육과 상식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결과는 이렇게 심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