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카투사를 나왔는데 저희 중대는 7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큰 방에 모여서 저녁마다 점호를 했습니다. 방에 선임들이 들어오시면 들어오시는 분마다 인사를 하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짬 순서대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거였죠
만약에 처음에 일병 2호봉이 들어왔는데 그 뒤를 따라서 일병 1호봉이 들어온다.. 그러면 그 일병 1호봉한테는 인사를 안 하는 겁니다. 즉, 방에 있는 사람 짬이 들어오는 사람보다 높으면 그분께는 인사 안 하는 겁니다.. 이 원리에 따라 최고참 병장이 방에 있으면 누가 들어오든 멀뚱멀뚱 쳐다보면 됩니다..
신병들 짬순서 외웠나 안 외웠나를 이걸로 판단했죠.. 제대로 짬순서랑 얼굴이랑 매치 못 시키면 인사 안 해야 할 사람에게 인사를 하게 되거든요.. 신병이 그거 잘못하면 점호 끝나고 모여서 또 위에서부터 갈구죠.. 눈치빠른 신병은 자기보다 조금 높은 이병 반응을 보고 따라하더군요.. 저 신병 때는 늘 일찍 오는 상병 말호봉님이 계셔서 편했죠.. 원래 그정도로 짬 높으면 점호시간에 일찍 안 오는 게 보통인데.. 희한하게 먼저 와 계시더군요.. 몇 안 되는 그 분의 윗사람만 인사를 하면 되니 편했습니다..
들어오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게 편한 게.. 내가 들어갔는데 내 밑의 애들이 나한테 인사를 안 한다.. 그러면 방에 나보다 높은 사람이 있단 뜻이니 들어서면서 그분을 향해 인사를 해야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