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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0
게시물ID : today_557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림아헤
추천 : 10
조회수 : 16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6/12/10 18: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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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세계가 너무 늙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곳을 걸었습니다. 길모퉁이의 국수집이 터를 잃었습니다. 햇빛이 눈을 찔러 뒤를 돌아보면 희미한 낮달이 있는 오후 세시 사십 오분의 세계. 하늘은 높고 맑습니다. 소란한 술집을 지나가면 자그마한 골목길로. 골목들에게 안부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걸었습니다. 나는 많은 문장들을 떠올리고 이내 잊으면서 자꾸 걸었습니다. 산다는 건 가끔은 이런 일입니다. 모든 것을 붙잡으려 하다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나는 걸었습니다. 거닐었습니다. 골목의 색깔은 부드럽게 낡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발견하고 작게 기뻐하던 카페의 대문을 짙은 초록색으로 물들었더군요, 겨울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요? 아이들이 목도리 없이 뛰어다니는 것도 보입니다. 아스팔트 위로 떨어지는 햇살들은 스미지도 못하고 흩어지지도 못했습니다. 그 정도는 제가 대신 받아도 상관없겠지요, 하는 마음으로 그 곳에 조금 머물렀습니다. 제가 머무른 곳에서 그림자가 길어지기 전에 떠났습니다. 그림자를 보는 일은 슬프니까요.

 

내가 길눈이 어두운 사람인 것을 알고 계시지요, 또 이 익숙하고 지겨울 법한 풍경을 여행했습니다. 내가 나를 둘러싼 것을 아주 자주, 쉽게 낯설어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숱하게 발자국을 찍었을 그 곳에서 나는 헤맸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어디서든 길을 헤매는 기묘한 재주를 가진이제는 그냥 걷습니다. 쩔쩔매는 일에 쓸 에너지가 남아있질 않아요, 걷다보면 아는 길이 나오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걷다가 새로운 가게들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좋아할 것 같은 곳에 눈도장을 찍었습니다만 나중에도 찾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런 가게가 있다고만 알려드립니다.

 

조그마한 소망을 담은 가게들이 이 골목을 떠나고 있습니다. 커다랗고 번쩍이는 간판과 유리로 된 벽과 속이 모두 들여다보이는 편리한 가게들이 빼곡한 세계가 되어가고 있어요. 작고 독특한 존재감을 가진 것들은 또 이렇게 밀려나는 걸까요, 간신히 찾았다고 생각한 세계들은 내 주변에 머물러주질 않습니다. 다시 햇빛을 마주하고 걸어갑니다. 낮달은 점점 선명해져 푸른 하늘에서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햇빛을 보면서 달을 뒤로하고 걸어가는 길, 목적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살고 있는 곳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일하고 있는 곳에서도 곧 안녕을 고하고, 주변을 채우고 있는 것들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작은 세계는 작별에 민감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작별을 해온 사람이니까요. 내게 작별할 것이 남아 있나, 싶었는데 그사이 내가 뿌리 내린 곳에 정다운 이들이 생겨났더군요. 어떻게 해야 잘 안녕할 수 있는지를 이 나이 즈음에 되면 알게 될 줄 알았는데, 난 아직도 조금 이렇게 촌스러운 데가 있습니다. 안녕이라는 말이 중추의 어딘가를 건드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안녕 후에는 그가 몹시 크게 울게 될 텐데, 그때는 쩔쩔매겠지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당신이 완성을 궁금해 하던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근사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안타까워하던 그 앞의 작은 가게는 다행히도 꿋꿋하게 잘 버티고 있습니다. 당신이 모르는 곳에 새로운 가게가 생겼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가게가 없어졌습니다.




내 세계가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는 사이에, 당신이 옆에 있었습니다. 웅크리고 있는 내 세계를 아는 사람 역시 당신뿐이라 당신에게는 늘 말이 길어집니다.

 

 

나는 당신이 완성을 궁금해 하던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그것의 모양이 당신을 실망시키지는 않을까요. 당신이 안타까워하는 나의 많은 일들은 다 잘 지나가게 될까요. 당신이 모르는 나, 당신이 좋아하던 나, 이 둘은 함께 양립할 수 있는 말일까요.

 



익숙한 곳으로 가서 바닐라 라떼를 한 잔 시켰습니다. 찻잔이 둥글게 엎어진 곳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창밖이 어둠으로 물들 때 까지 이곳에 머물까 합니다, 그러면 그림자를 잠시 내려놓을 테니 슬프지 않을 겁니다. 나무로 된 앉은뱅이 책상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상 위의 전등갓이 검습니다. 당신은 어디쯤입니까? 우리의 지금은 어디쯤을 지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몇 번이나 묻고 이야기 했는데도 나는 당신의 어디조차 읽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헤맵니다. 여전히.

 


혹시 우리의 세계는 이미 낡았습니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이를 먹었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세계는 지금 사라져버린 것입니까. 나는 헤매는 사람이라 당신에게 묻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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