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너를 만났어.
너는 조용하고 나긋한 성격에 가끔씩 웃고, 가운데 3~4번째 줄에 앉는 걸 좋아했지.
너는 평범한 키에 민꺼풀에 큰 눈을 가진, 아주 조금은 잘생긴 외모였지.
학교생활에 참 충실했던 것 같아.
쉬는 시간에는 책을 붙잡거나 자고, 수업시간에는 집중하고, 체육시간에는 열심히 뛰어다녔어.
많은 친구가 있던 건 아니지만 친한 친구들이 있어서 자주 어울렸어.
그런 너에게 왠지 이상하게 관심이 가서 항상 너를 주시했어.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흘러서 너와 조금씩 말을 하고 친해졌던 것 같아.
그리고 우리가 같은 고등학교에 지원해서 합격한 날에 왠지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어.
고등학생 때는 그냥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던 것 같아.
나도 그닥 대인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라서 학교에서 너를 보면 왠지 기뻐서 항상 인사를 했고, 너는 웃으며 받아줬지.
너는 자연계열, 나는 인문계열.
항상 반이 달랐고 우린 서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은 달랐지만 서울로 대학을 진학했지.
대학생이 돼서 만나는 너의 느낌은 또 새로웠어.
조금 서툴지만 과하게 멋내지 않은 너의 모습은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어.
대학생이 된 우리는 자주 만나게 되고 나는 확실히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감지했어.
그 날은 토요일이었을까? 2003년 11월 29일 저녁에 기억조차 희미한 영화 한 편을 보고 같이 술을 마신 날.
너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떨구고 나한테 말했어.
좋아한다고.
조금 상상하지 못한 바보같은 고백에 왜 나는 그토록 설렜을까?
우리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너는 참 바보였어.
정말로 바보였어.
같이 버스만 타면 5분도 안 돼서 입을 떡 벌리고 잠이 들어버리고,
꽤 어리숙해서 길을 헤매기도 했지.
평소에 과묵하지만 자주 웃는 너.
표정이 딱 두 가지밖에 없는 너.
무표정이거나, 웃거나.
내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면 아무 말도 없이 내 손을 잡고 침묵의 데이트를 했지.
그리고 나를 데려다주고 뒷모습을 보이려하는 내게 "이제 화 풀렸어?" 라고 묻고, 포옹을 하곤 했어.
화난 내 마음은 눈 녹듯 녹아내렸어.
아, 너는 참 세심하고 배려를 잘했어.
조금이라도 바뀐 내 모습을 알아채고, 청소, 정리를 참 잘했지.
아마 전생에 여자가 아니었을까?
입대 전에 내게 열심히 자기계발 하라며 어색한 짧은 머리를 만지며 웃고 냉정하게 입대한 너.
2년은 참 빠르게 흐르더라.
제대를 하고 조금은 더 멋있어진 너와 함께였어.
변함없는 마음에, 조금은 감동했어.
우리는 다시 행복해지기 위한 날갯질을 시작했지.
아, 너는 노래방을 가는 걸 참 좋아하고 노래를 잘했어.
노래방에 가면 항상 처음으로 이적의 Rain을 불렀지.
넌 특히 김동률과 이적을 굉장히 좋아했지.
그래서 콘서트도 자주 갔어.
김동률이나 이적 콘서트에 가면 남자들이 거의 없었어.
그나마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온 불쌍한 남자들이었지.
근데 나는 너의 손에 이끌려 온 여자였어.
콘서트에서 너는 아이처럼 손을 모으고 노래를 부르는 김동률과 이적을 뚫어지게 쳐다봤어.
정말로 동성애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봐서 조금 질투가 났지.
빨리 김동률과 이적의 앨범이 나오기를 고대하는 너는 굉장히 순수했어.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어.
우리는 서로에게 노력했고, 자신에게도 소홀히 하지않았어.
너와 처음의 순간을 많이 공유했어.
하늘만큼 땅만큼 너무나도 많아.
시간은 흐르고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어.
석사 과정이 끝나갈 쯤 너는 내게 말했지.
"나, 대전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어."
아마 그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엇갈렸을까.
모든 게 어색했어.
너와 20대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낸 나에게 너는 그만큼 큰 존재였을까.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작다고 말하는데 왜 서울과 대전의 거리는 먼 거리일까.
네가 입대한 2년이란 시간동안 느끼지 못한 외로움은 왜 하필 그때 파도처럼 요동쳤을까.
너는 분명히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존재하는데 왜 나는 외로울까.
그나마 가끔씩이라도 만난 무표정한 네 모습이 너무나도 냉정하게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걸까.
나는 네게 헤어지자고 말했어.
네가 있어도 외롭고 행복하지않다고.
지치고, 힘들다고.
너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어.
너의 눈동자는 내 눈동자를 회피해서 한 곳을 계속 응시했어.
나는 처음으로 너의 눈물을 봤어.
아, 그래.
너는 한 번도 내 앞에서 운 적이 없었어.
힘들고 지치고 아플 때 너는 무표정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힘든 내색은 전혀 안 하니까.
그런 네가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서 울음보를 터뜨렸어.
그리고 헤어지기 싫다고 말했지.
흔들렸어.
첫 번째로 처음으로 너의 눈물을 봤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응시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
머리를 망치로 세게 맞은 기분이였어.
그래도 나는 네게 말했어.
헤어지자고.
나는 이미 정리했고 여기서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어.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너의 눈물과 함께 추억을 그렇게 끝맺었어.
우리의 추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조각이 되어버리겠지?
지나가는 네 생각에 한 조각, 두 조각을 꺼내서 너를 추억하겠지?
나는 요즘 꽤나 괴로워.
너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상생활이 너였던 내게 너의 부재는 눈물로 바뀌어버려.
지나가는 길에 김동률이나 이적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갑자기 울컥해서 그 날은 화장이 번져서 곤란해지곤 해.
하지만, 어쩔 수 없네.
우리는 이미 헤어진 사이니까.
돌이킬 수 없은 사이가 됐으니까.
친구로 4년, 연인으로 9년.
그 기간동안 널 진심으로 사랑했어.
안녕, 내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