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노인은 연락이 없었다.
마지막 기회마저 주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아 며칠 동안 전전긍긍했지만, 그 문제는 최악의 형식으로 해결되었다. 반지를 살 돈을 벌어서 뭐 하겠는가. 그걸 받을 사람이 없는데. 그렇게 남자는 노인의 의뢰를 포기했다.
아니, 그랬을 터였다.
‘그런데, 왜, 나는 이걸 조각하고 있지? 아니, 내가 뭘 조각하고 있는 거지?’
자신의 손으로 조각하면서도 남자는 완성된 형태를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남자의 역할은 그저 조각칼을 잡고 손이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작품이 완성될 때 까지 남자는 숨도 쉬지 않고 조각칼을 놀렸다.
그렇게 완성된 조각상은 남자가 생각한 어떤 아름다운 것도 빛이 바래보일 정도였다.
그 무슨 단어나 미사여구로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순 없었다.
아니, 그녀의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불경한 짓이라 생각되었다. 남자는 그저 경외를 담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아, 네가 살아있는 진짜 여자였다면 좋았을 텐데..”
“과연 그럴까?”
남자 뒤에 나타난 노인은 남자의 감동을 깨부수는 것이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듯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뭐라고?”
“생각해 보게. 이것이 인간이 되면, 자네 따위를 사랑할 것 같나? 자네가 얼굴이 잘생겼나, 돈이 있나, 아니면 좋은 직업이 있나?”
“아.. 아니야. 나는 그녀의 창조주니까 그녀의 곁에 있을 자격이 있어!”
“흥, 보험금 타려고 자기 부모도 살해하는 시대에, 태어나게 해줬다고 모든 걸 바치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지. 아마 그녀는 거부할 걸세. 그리고 자네가 구속하면 구속할수록 더 자네를 혐오하겠지.”
“그럼.. 어쩌죠? 그녀의 옆에 있지 못한다면.. 난..”
“그녀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나? 그렇다면 방법이 하나 있는데...”
“알려 주십시오.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이 먼 남자는 선뜻 대답했다. 마치 그를 비웃는듯한 노인의 미소는 보지 못한 채로.
9시 뉴스입니다. 문경 십자가 자살사건 이래로 가장 엽기적인 자살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는 조각사 이모 씨(32세)로 조각상을 만드는 틀 안에 들어간 뒤 그곳에 청동을 붓는 방식으로.... 경찰은 자살을 도운 이가 하나 더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증거가 없어 난관에 빠졌습니다. 현장에 나가계신 이혜연 기자..
“원,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더니.. 쯧쯧.. 죄송합니다, 손님. 그래, 무슨 조각상을 원하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해 주게.”
-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