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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사고칠뻔했던 경험 2-1 마지막.
게시물ID : humorstory_558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DC
추천 : 15
조회수 : 28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04/03/11 19:27:01
쓰다보니 길어져 이렇게 나누어서 쓰네요.
오늘 쓸 글은 유머라기 보단 그냥 아찔한 기억을 끄집어내는거라...베스트에 못갈지도..

사격이 시작된 전편에 이어서..

우리는 시범중에 4문의 포가 한꺼번에 쏘는 "효력사"를 다섯번 쏘게 되어있었다.
박격포는 초탄명중이 어렵기때문에 하나의 포로 쏴보며 탄착점을 계속 수정한다.
그리고 탄착점이 맞았다고 판단되면 그 포와 나머지포들과의 거리를 감안하여 한꺼번에 쏘게 된다. 이것이 효력사인데 이 효력사란 한마디로 이제 너희들 죽어봐라 하는 의미이다.
9일동안의 연습으로 우리는 충분히 제원을 구해놓았기 때문에 곧바로 효력사를 시범보이는 것이었다.

.

전차가 올라가자 우린 사격을 시작했다.
우리 표적은 내 눈에도 보이기 때문에 맞았는지 안맞았는지는 나도 볼수 있다.
처음 효력사를 발사하고 나는 혹시몰라 작게 잘라둔 장약쪼가리들을 손에 쥐고 뛸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초탄이 떨어진순간…..
약간 실망스러웠다. 9일동안 누적한 데이터를 토대로 충분한 제원을 산출하였으나 약간 짧게 맞은 것이다.
다음탄을 쏠때까지 남은 시간은 30여초…그 시간동안 나는 각 포를 미친듯이 뛰며 주머니에 있던 장약쪼가리들을 포구에 하나씩 넣어주었다. 원랜 그렇게 쏘는게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꼭 맞추고 싶었다.

그런데 두번째 효력사와 세번째 효력사사이의 시간차이는 약 5초밖에 없었다.
두번째 효력사를 날리고 세번째 효력사는 수정할시간도 없이 곧바로 쏴야 했었다.
 결국 8발이 공중에 떠있는 셈이었는데......, 
두번째와 세번째 효력사를 발사하고 네번째 효력사를 준비하기 위해 표적을 살피던 나는 순간  요상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20여초가 지나 두번째 효력사가 폭발하는걸 보았는데……두발밖에 안터지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5초뒤에 터져야할 세번째 효력사는 아예 한발도 터지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할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런 황당한경우가 있나...?
가끔 불발탄이 나긴 하지만 8발중 6발이 불발된다는건 도무지 믿기 힘든일이다.
20초면 떨어져야 할 탄이 30여초가 돼도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와 소대장님은 눈만 껌벅거리며 관측병의 무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순간.....
저 멀리서 미친듯이 우리를 향해 뛰어오는 중사한명을 발견할수 있었다.
그는 평소 우리소대원들과 친하게 지내던.....아까 올라갔던 전차의 전차장이었다.
그는 미친듯이 손을 내저으며 발악발악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얼굴이 벌개져 소리치는 그에게 소대장님이 뛰어가더니 다음순간 소대장님도 얼굴이 벌개져서 뛰어돌아왔다.
그러더니 나를 향한 첫마디...

" 좆됐다."

소대장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소대장님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쏜 포탄이 제대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앞서 올라갔던 전차들위로 떨어졌단다.
그것도 6발이....

"헉....."

손아귀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시범현장은 이곳저곳에서 포탄을 퍼부어 완전 아비규환속이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연막탄이 터져 과연 그 탄이 터졌는지 안터졌는지조차 판별할수가 없었다.
무전기에서는 작전장교가 계속 발사를 요구했지만 소대장님은 일단 명령을 무시하고 발사를 중지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렇게 나의 일생일대의 위기가 다가온 것이었다......


철렁이는 가슴속에 떠오르는건.....
할머니...어머니...아버지.....학교... 내 꿈....내 미래….

이 모든것이 멀리 떠나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진정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여기까지 벼텨왔는데….
몇 달만 버티면 집에갈수 있는데…
평생을 철창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울컥 쏟아질듯한 설움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고....전차를 타고 올라갔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침에 같이 밥을먹던 내 동기녀석도 그 전차를 타고 아까 올라갔다…
제발.....무사하기만 해다오...
제발.....





아수라장이던 사격이 끝나고....주위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군데군데에서는 아직도 연막탄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무전연락만을 기다리는 우리 진지에서는
이 엄청난 사태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 위에서는 높으신 양반들의 평가가 있을 것이다. 그 평가가 끝날때까지는 이런 침묵이 계속될것이다..
관측점에 올라가있던 작전장교와 OP로부터….일단 가만히 있어보라는 무전이 날아왔다.
우리는 일단 어떻게 된일인가를 조사했다. 장약량이나 각도가 잘못됐을리는 없다.
몇번이나 수정했고 몇번이나 검토했는지 모른다.

마치 20여년을 1+1=2라고 살아왔는데 알고보니 3이었다는…
나의 근본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순간이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다.
장약을 그렇게 끼워넣었는데 어떻게 그것밖에 안날아가나….
경험많은 포반장님과 소대장님 그리고 나....셋이서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이건 일어날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훈련내내 나를 많이 도와주셨던 원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혹시  탄 제조연도 한번 봐봐라.."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포탄에도 유통기한 같은게 있다는걸....아니 정확히는 장약의 유통기한일것이다.
이런건 교범에도 안나와있는 얘기이고 내 사수로부터도 전혀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발사를 포기하고 모아둔 포탄을 꺼내서 제작년도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건 없었다.
한참을 찾던 내 눈에 띄인건 아주 작게 홈이 파여진 포탄의 제조년월...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주위에 모인 간부들 앞에서 " 탄약관 이 개새끼" 라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1953

1953년이면...6.25가 끝나던 해가 아닌가.
썪을대로 썪은 탄박스를 보고 대충 오래됐다는 짐작은 했지만 설마 6.25때 쓰던 잔탄을 가지고 올줄은 몰랐다. 
사실 1935년..일제시대때 만들어진 방독면정화통도 봤고 6.25때 쓰던 무기들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적은 있다.
하지만 이건 포탄이 아닌가?
직접적으로 인명을 살상할수 있는 포탄이라면 이런 탄은 진작에 쏴서 소비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쏴보기전엔 알수가 없으니 장약이 변질된건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앞에 제대로 날아간 탄들은 뭔가하는 의문을 갖는이가 있을것이다.
전편에서도 얘기했듯이 탄을 지 꼴리는대로 갖다 주기 때문에 그나마 멀쩡한 탄은
날아가 표적에 꽂히고 썪은 탄들은 죄없는 우리 전차병들에게 떨어진 것이었다.
아버지뻘의 탄약관의 얼굴이 떠오르며 당장에라도 달려가 포탄을 꽂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애걸복걸했는지 모른다.
좋은탄을 못주거든 제발 추려서라도 갖다 달라고…그래야 탄이 제대로 맞고 탄약관님도 좋은거 아니냐고…그렇게 건의했건만 이 훈련에 들어오는 탄은 우리부대 밖에서도 가져오는것이기 때문에 자기도 일일이 추릴수는 없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제대하고 집에오면 그만인 내가……사병인 내가 시범이 잘되든 말든 상관할바 아니다. 소대장님도 니 심정은 알지만 니가 그런얘기 할건 없다고 하셨었다.
혹여라도 소대포상휴가가 나와서 휴가를 가더라도 대부분 포수나 조종수들이 간다.
FDC의 애끓는 심정따위는 육체적인 고생을 덜한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무시를 당한다.
단지 잘 맞추고 싶어서…...적어도 내 주특기만은 최고가 되고 싶어서….그토록 건의했었는데…

결국 남은건 부대하나를 날려버릴 화력을 아군에게 퍼부은 개념없는 FDC의 모습뿐이었다..



한참을 자괴하며 서있는데 무전이 날아왔다..
전차병들이 무사하단다.
탄이 떨어졌을뿐 터지진 않고 길가에 박혀 있단다.

소대장님과 나는 얼마나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신이라고는 절대 믿지 않는 내가 앞으론 초코파이 때문에 교회에 가지는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으아~씨~발” 하면서 웃을수 있었다.

문득 소대장님을 바라보며……이 일이 커져 책임을 진다면……이사람 인생도 끝났겠구나…… 하는 낯선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생지옥에 몰아넣었던 토마스는 이런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을것이다.
다만 이상하게 잠잠하던 우리의 표적지를 보며 역시 안맞는군 했을것이다.





잠잠하던 주위가 다시 요란해졌다.
멀리서 토마스와 따까리들이 탄 헬기가 날아가는게 보이고 우리는 곧바로 복귀준비를 하였다.
복귀로는 우리가 사격을 하던 방향으로 나있었는데 앞서 시범을 보이던 전차들이 올라갔던 그 길이었다.
복귀로를 따라가며 나는 우리가 쏜 탄 하나가 길바닥에 꽂혀있는걸 볼수 있었다.
궤도차량의 캐터필러에 짖이겨진 흙더미가 쿠션역할을 해 포탄이 땅에 박혀있었고 누군가 그 주위에 표시를 해 놓은걸 볼 수 있었다.






부대에 복귀한후 사건처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야기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여기에 적지 않겠다.


다만 그당시 전차에 타고 있던 내 동기의 말을 빌어보면….

“내 니 때문에 죽는줄 알았다 아이가.”

“…………”

“와……내는 너그 쏜다길래 이새끼들 얼마나 잘 쏘나 볼라고 너그 보고 있었거등?
 근디 뭐시 두개  날라오더니 우리 옆에 툭 떨어지드라. 
 나는 혹시 탄피가 날라오는갑다 했다. 순간 박격포도 탄피가 있는갑다 했다.
 근데 보니까네 뭔놈의 폭탄이 날라와서 옆에 떨어진거 아이가.
 우와……죽었구나 해가지고 우리 xx중사님이 너그한테 뛰어가는데 썅……인자는 네개가 날라오드라.
 그거 하늘에서 날라오는거 보고 내 데지는줄 알았다 아이가…….”

“……”


동기녀석이 웃음이 많은지라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을 느꼈다. 나같이 성질급한놈이었으면 당장에 그놈 잡아죽이고 영창갔을거다.ㅡ.ㅡ
순간 시껍했을 내 동기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생각해보라 허벅지만한 폭탄이 옆에 떨어져 기겁하고 있는데 
네개가 날라오는 상황을……
또 전차에서 뛰어왔던 그 중사님은 그당시 날아오던 포탄이 너무 거대해보였다며 당직사관을 서는 날이면 우리내무실에 들어와 우리에게 연설을 늘어 놓곤 하셨었다. 



나중에 그 불발탄들을 우리 소대가 찾으러 나섰는데 정말 하나도 터지지 않았었다.
탄약계에 오래 있었던 다른 부대의 탄약관과 만난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경우를대비해 신관을 만들 때 최소사거리 이내로 떨어지는 포탄은  터지지 않게 만든다고 하는 얘기를 들을수 있었다. 
천만다행히도 신관을 새것을 썼었으니 망정이지 신관마저 오래된것이었다면 그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에라도 그중 하나가 터져 주위에 떨어진 포탄까지 연쇄폭발을 일으켰다면……

그 주위에 있던 최신식 전차가 6~8대,
구난전차 2대
보병장갑차 4~5대..

거기 타고 있던 승무원들 60~70여명…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아찔하다..




이상으로 군생활동안 겪었던 아픈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보았다.
사실 이런류의 이야기가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아직 군대안간 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그리고 군대가서 FDC라는 직책을 맡게 된다면 
사수에게 원칙만 배우지 말고 그의 노하우와 경험들을 배우기 바란다.


참고로 내 이야기는 포병사고사례로 기록이 돼 박격포분대장교육을 가는 분대장들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ㅡ.ㅡ

이상 군대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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