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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제령 사무소 8
게시물ID : panic_503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스키튼
추천 : 24
조회수 : 117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6/15 22:41:43
은수는 며칠 전부터 벼르던 가게 청소를 하자며 이른 아침부터 나를 깨웠다. 아직 일을 할 만한 컨디션도, 또 그럴 의욕도 없었기 때문에 계속 쉬면서 은수와 함께 지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게을러 보였는지 청소를 하지 않으면 쫓아내겠다는 으름장까지 놓았다. 결국 나는 억지로 등 떠밀려 청소를 시작했다. 서너 시간을 치웠는데도 불구하고 가게는 영 정리가 되는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 곳은 늘 물건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라 사실 청소를 열심히 해도 하루도 안지나 도로 먼지투성이가 되곤 하지만 이번에 은수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평소 같았으면 도저히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며 대충 하고 끝내자고 했을 텐데 오늘은 끝장을 보자며 쓰레기봉투를 더 사와야겠다고 나갔다.
 
“은수씨 계십니까?”
청소를 하느라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놓아서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은수씨 자리에 안 계십니까?”
남자는 놀란 내 얼굴을 보며 다시 한 번 또박또박 정중하게 물었다.
“아, 곧 오실 거예요. 잠깐 밖에 가셨어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나는 황급히 부엌에 들어가 음료수를 꺼내왔다.
“이거 드시면서 기다리세요. 은수씨는 늦어도 오 분 안에 올 거예요.”
남자는 대답대신 웃음으로 인사하고 음료를 들었다. 나 역시 웃음으로 화답하고 계속 청소를 하려고 걸레를 들었다.
.....근데, 저 남자 내가 어디서 봤는데, 흠.. 그게 어디였지...?
 
음료를 다 마신 남자는 가만히 손을 모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아 환갑은 되어 보이는 나이에 유행이 한참은 지난 것 같은 남색 스트라이프 무늬의 복숭아뼈가 훤히 보이는 양복이 묘한 느낌을 주었다. 창밖을 보던 남자가 갑자기 내 앞의 유리창을 보았다. 내가 청소하는 척 하면서 보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다.
“아가씨가 지안나죠?”
“네, 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그 남자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혹시나 기억해줄까 했는데.. 역시 무리였구먼. 하긴, 살아있을 땐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그 말을 듣자 머릿속에 번뜩이는 느낌이 들며 기억이 살아났다.
“아, 아저씨!”
그 남자는 은수의 아버지였다.

내가 은수와 본격적인 '교우'를 시작하게 된 건 몇 년 전 이 분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당시 나는 초보 중의 초보 퇴마사로 한창 멋모르고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다녔었다. 하지만 여러 도구의 부족함을 느껴 수소문한 끝에 은수의 가게를 찾았었는데 당시 은수는 최상위 레벨의 퇴마사에게만 물건을 파는 일종의 ‘고위층 전용 판매자’라고 해야하나, 뭐 그런 존재였었다. 그러니 나에겐 물건을 팔 리가 없었고, 나는 홧김에 사고로 돌아가신 이 분의 장례식장에 가서 행패를 부리며 나에게 물건을 팔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의 영은 절대 성불하지 못하도록 잡아서 가둘 거라고 은수를 협박 했었다. 뭐.. 한참 지난 이야기지만...
 
“사실은.. 은수보다도 안나씨에게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선한 인상의 아저씨는 입보다 눈가의 주름이 먼저 웃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선량해 보이던지 나는 내가 과거에 했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아저씨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얘기를 꺼냈다.
“우리 은수를.. 죽지 않도록 해주었으면 하는데..”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저씨가 털어놓은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요 근래 부근의 동네에서 젊은 여성 사망 사건이 여러건 있었는데 시체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죽어 있었다. 그뿐이었다. 심장 마비도 아니고, 폭행이나 독극물 또는 그 외에 보통의 사람이 생각하는 살인의 방법으로 죽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죽어 있었다. 마치 돌연사처럼.
“문제는.. 그렇게 죽는 것도 문제지만.. 나는.. 나는 영이니까 보았어요. 어떻게, 왜 죽었는지를..”
아저씨는 거기까지 말하고 마주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같이 가주겠어요?”
나는 알았노라고 대답하고 은수에게 간단한 쪽지를 써 붙여놓고 호우를 찾아봤지만 아마 은수를 따라나선 모양이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그냥 혼자 가기로 마음먹고 영총만 챙겨 등허리에 꽂았다.

아저씨를 따라 간 곳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시장으로 통하는 골목길이었다. 터지는 바람에 제대로 안 치워진 쓰레기봉투가 널려 있고 상인들이 쓰다 버린 듯 한 시들은 채소 조각들도 널브러져 있었다.
“이 곳이에요.”
아저씨가 가리킨 부분은 그냥 하얗게 사체의 윤곽선만 그려진 자리였다.
“그리고..”
아저씨는 나보고 보라는 듯, 손을 들어 그 선 바로 건너편에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골목에 들어섰는데,

세상에.

그 곳은 양쪽 집의 담이 마주보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오 미터도 채 안돼 보이는 골목 끝에는 청록색의 페인트가 약간 벗겨진 한 쪽짜리 철 대문이 있었고 그 대문에 기대어 있는.. 영의 사체가 있었다. 보기엔 열일곱에서 열여덟 정도의 여자 아이였다. 완전히 벗긴 알몸의 그 영은 아랫도리 부분이 갈가리 찢기우고 난도질되어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떤 놈이 있어요.. 그 놈은 기가 약한 사내놈들에게 들러붙어 자기 맘에 드는 여자애를 쫓게 해서 겁에 질리게 만들고는.. 그 틈을 이용해 혼을 뽑아 강간하죠..”
아저씨는 도무지 볼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이 혼이 너무 놀라.. 그대로 사그라들어.. 성불조차 못하는 거로군요..”
누가 만약 나에게 혼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성불을 못한 채 사체가 되어버리는 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앞으로 환생할 여지조차 주어지지 않고 그대로 완전히 죽어버리는 그 상황은..
“그래서 부탁하는 겁니다.. 이러다 제 딸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하면...”

나는 말없이 일어나 은수의 가게로 돌아왔다. 오는 내내 머릿속에는 그 여자 아이의 영상뿐이었다.
와보니 은수와 호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온 거야? 근데 우리 아빠가 오셨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나는 고갯짓으로 내 뒤를 가리켰다.
“거기에 아빠가 있어?”
무슨 말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아저씨는 없었다.
아마 자신의 마지막 힘을 다 끌어내 내 앞에 모습을 보이신 것 같았다. 이미 성불한 후엔 이곳에 오는 게 쉽지는 않을 테니.
 
나는 은수와 호우에게 아저씨의 부탁과 방금 전 상황을 설명했다.
“은수가 넌.. 나랑 호우와 같이 있으니 우선은 괜찮지만 아무래도 그 놈은 잡아야겠어. 너 때문에도 불안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야비한 수법으로 최악의 범죄를 저지르는 놈은 살려두고 싶지가 않아.”
은수는 벌써 꽤 겁을 먹어 불안한 표정이었다.
“이따 해지면 잡으러 가야겠어.”
알았다고 고개는 끄덕였지만 은수의 불안한 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얘기를 끝내고 아까 하던 청소를 마무리 하는데 불안이 가시질 않는지 자꾸 누가 등 뒤에 있는 것처럼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왔을 땐 놀라 비명을 지르며 창고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왜 그래! 문 열어!”
“싫어! 아까 말한 그 놈이면 어쩌려고!”
“괜찮아, 호우랑 내가 있잖아. 어서 나와”
“지, 지금은 괜찮다 쳐도.. 너희 가면 나 어떻게 해!!”
생각해보니 그 것도 걱정되었다. 가뜩이나 평소에 잡귀가 잘 붙는 애인데 안심을 할 순 없었다.
“그래, 그럼 내가 호우를 두고 갈게. 그러면 됐지?”
아무 말이 없던 은수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문을 열었다.
나는 그냥 웃어 보이며 은수를 가볍게 안아 토닥여줬다.
“호우랑 둘이 있어. 나 다녀올게.”
결국 혼자서 가게를 나섰다. 은수가 몇 번이나 혼자 가도 괜찮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 웃어 보였다.
 
*
 
해가 거의 저물 시간이어서 날은 제법 선선했다. 바람은 불었지만 습기가 많아 온 몸이 끈적였다.
“여름은 다 좋은데.. 이렇게 땀 차는 게 질색이라니까..”
민소매의 시원한 옷을 입었지만 바람에 옷이 펄럭일 때마다 등을 타고 내려오는 축축한 땀이 느껴졌다. 만일 내가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한대 피워 물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왼쪽 어깨를 돌려보았는데 거의 나은 듯 싶었다. ‘우둑’ 하는 뼈가 틀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프진 않았다. 사실 신경 쓰이는 건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두세 겹으로 탄탄하게 감긴 붕대였다. 은수가 있는 부적 없는 부적 다 끌어 붙이고 붕대로 여러 번 감아놓아서 답답했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 없었다. 팔을 허공에 두어 번 휘둘러보았지만 역시 아프진 않았다. 다만 좀 많이 갑갑할 뿐이었다.
 
엊그제 내린 비로 거리는 마치 큰 빗자루로 훔쳐놓은 듯 말끔했다. 나는 내가 자주 다니는 길을 중심으로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은수의 가게 앞 골목을 지나면 큰 사거리가 바로 보이는데 그 건너편에는 시장이 있었다. 벌써 몇몇 분들은 노점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은 남은 것들을 다 팔고 집에 가려는 생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붉은 고무 대야에 담긴 다듬어진 채소들이 왠지 모르게 슬펐다. 노점상과 싸구려 옷을 파는 가게, 고기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정육점을 지나 시장 안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은 어둑어둑 해져 사물의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귀기를 곤두세우고 골목을 가는데 무언가 내 정강이에 채였다. 싸늘하고 뭔가 묵직한 느낌이었다. 뭔가 보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건너편 골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악! 여기, 여기 사람이 죽어 있어요!!”

아차, 싶은 마음에 황급히 건너편 골목으로 뛰어갔다.
이미 그곳에는 열 댓 명의 사람이 모여 시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잠시 만요, 좀 비켜주세요”

사람을 비집고 들어가니 한 여자의 시체가 가로등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겉보기엔 평온하게 자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하얗게 까뒤집은 눈동자가 죽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얼굴에 손을 대니 아직 온기가 있는 게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체였다. 지금 주변을 뒤지면 뭔가 나올 것 같았다. 미친듯이 뛰면서 주변을 헤집고 다녔다.
 
대중없이 가까운 골목이란 골목은 다 뛰어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 놈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젠장!”
계속 뛰어다녀 숨이 턱까지 차올라 얼굴이 벌게졌다. 거기다 목도 말라 근처의 작은 구멍가게에 음료를 사러 들어갔다.
“아저씨, 물 하나에 얼마에요?”
“천원이야”
나는 돈을 내고 냉장고의 맨 안쪽에 손을 넣어 제일 차갑게 느껴지는 물병을 꺼냈다. 시원하게 물을 들이켜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끄응..끄응..”
‘뭐지?’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나는 가게를 나와 가게의 뒤와 맞닿아 있는 담벼락을 올라탔다. 담 바로 뒤에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낡은 임대 아파트의 후문이었다. 오래된 자전거, 플레이트 판 조각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방금 전의 그 소리는 좀 더 안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따라 무조건 뛰었다. 그 소리는 내 기척을 느끼고 놀라 소리를 멈추고 도망가고 있었다. 나는 촉각을 곤두세워 앞서서 달려가고 있는 그 소리의 주인공의 느낌을 머리에 새겨두었다.

‘잡히기만 해봐라’

바로 앞에 그 놈이 골목을 돌아가는 희미한 모습이 보였다. 나 역시 따라 급하게 커브를 돌았는데 모르고 바닥에 있던 플라스틱 두유 박스를 밟아 굴러버렸다.
“아야야---“
구르면서 오른쪽 어깨가 바닥에 쓸려 따가웠다. 그냥 대충 흙만 털고 계속 쫓는데 골목을 들어서니 막다른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엔 아까의 시체와 꼭 같은 얼굴을 한 영이 쓰러져 있었다.
‘아..아..버..’
다행히 아직 죽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그 여자는 영이 뽑힌 후에도 크게 반항을 한 모양이었다. 여기저기 영체가 뜯긴 모습이 보였다.
“이봐요, 나 보이죠?”
내 말을 듣는 여자의 표정은 이미 공포도, 분노도 넘어선 무표정이었다.
“이봐요! 이봐요!!”
몸을 흔들어 일으켰지만 이미 혼불은 꺼져가고 있었다. 내 손에 닿은 영의 감각은 점차 무디어져 딱딱한 느낌마저 들었다. 순간 나는 영매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던 호우의 말이 떠올랐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가씨, 내 말 들려요? 내가 지금부터 당신을 받아들이겠어요. 그러니까 영이 다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나에게 들어와봐요! 그러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말을 끝내고 나는 마음을 모아 이 여자를 받아들인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그 영의 손을 잡고 빨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대로 두면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다.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 손등에 땀이 맺힐 정도로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내게 들어오는 기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수분이 지났을까, 그 여자의 영은 안개처럼 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몸 안으로 무언가 불어넣는 것처럼 아주 서서히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흐읍..”

나는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며 그 여자가 들어오는 것을 도왔다. 한 번 들어오기 시작하니 나머지는 제법 수월했다. 온전히 그 영을 받아들인 다음, 나는 그 여자의 시체를 찾아 살리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휘청-

일어서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며 아랫배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이 느낌을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마치 누가 나의 아랫배를 낱낱이 갈라 찢어놓은 듯 아팠다. 아팠다는 말조차 부족하다. 뭔지모르게 고통스럽게 헤진 느낌이 들면서 둔탁하게 뻐근했다. 머리에 마치 강한 충격이라도 받은 듯, 누군가 망치로 머리를 내려 친 듯 눈 앞에 순간 하얘졌다. 내 마음 속에선 그 여자가 울고 있는 느낌이 전해졌다.
“이런.. 고통까지 공유할 줄은 몰랐는데..”
 
억지로 몸을 일으켜 온 길을 되돌아 시장의 골목을 찾아 시체가 있었던 그 자리로 갔다. 그 사이 경찰들이 와서 시체를 조사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을 헤치고 그 여자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자자, 관계자 외의 분들은 뒤로 물러나 주세요.”
한 경찰관이 내 앞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 아인 제 동생이에요.”
천연덕스럽게 잘도 거짓말을 하는군. 나는 동생이든 뭐든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시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나를 밀쳐내는 경찰의 손을 쥐며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안 건드릴 거예요. 그냥 가까이서 얼굴만 보고 싶어요.”
나의 눈물 콧물 연기에 마음이 약해진 경찰관은 그럼 손 대지 말고 얼굴만 보라며 비켜줬다. 나는 그 여자의 시체 옆에 가만히 앉아 속으로 그 여자를 불렀다.
‘일어나 봐요. 이제 돌아가야죠.’
나는 그 여자를 불렀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무슨 생각인지 알려줘야 알 거 아니에요.’
‘...싫어요.’
‘네?’
‘싫어요.. 싫어요.. 만약 다시 가면.. 전 또 잡혀서…’
그 말을 끝으로 그 여자는 내 몸 속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어떻게든 끄집어내서 다시 살려주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전에 나에게 들어왔던 영은 스스로 알아서 나가버려서 나는 내 속의 영을 꺼내는 법을 모른다.
‘골치 아프게 생겼네..’
뭔가 방법이 없을까, 하고 주머니를 뒤졌다. 꾸깃한 몇 장의 지폐 사이에 접힌 부적이 한 장 있었다. 펴보니 소환(召喚)부적이었다. 나는 옳다구나 싶어 재빨리 부적을 태워 눈에 띄는 영을 소환했다.
‘최대한 큰 놈으로!’
부적이 다 타기가 무섭게 어떤 남자의 영이 나왔다. 아마 교통사고로 죽어서 주변을 떠돌던 녀석이었는지 온 몸이 무거운 것에 눌린 흔적과 뼈가 바수어진 자욱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구경꾼들은 소리를 지르며 우왕좌왕했고, 경찰들도 도망가고 싶어 했지만 사람들을 의식해서 인지 먹히지도 않는 곤봉을 휘두르며 공격해댔다. 나는 혼란을 틈 타 그 여자의 시체를 들쳐 업었다. 업는 순간 몸이 휘청하며 아랫배가 깨지는 듯 했지만 이를 악물고 시체를 끌어 골목으로 도망갔다.

은수의 가게에 도착했을 때 내 몸은 비에 홀딱 젖은 듯 땀에 절어 있었다. 문 앞에서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던 은수와 호우가 시체를 받아 소파 위에 눕혔다. 대강의 상황을 설명하고, 나는 호우에게 내 안의 영을 꺼내는 방법을 물었다.
-글쎄. 스스로 한번 찾아봐.
호우는 저 말 한마디만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쏘아붙이려다 그냥 참고 다시 내 안의 그 여자를 불렀다.
‘이봐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여긴 괜찮아요. 나와도 상관없어요.’
여러 말로 회유 했지만 소용없었다.
‘좋아요. 저랑 있어도 상관은 없지만 전 지금부터 나가서 그 놈을 다시 잡으러 갈 겁니다. 그 놈을 다시 만나고 싶으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슴이 터지는 듯 한 느낌이 들면서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쑤욱 하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 위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안 돼!”
손을 뻗어 도망가려는 영의 자락을 잡았다. 그리고는 호우와 함께 억지로 시체 속으로 꾸겨 넣었다. 그 영은 도망가려 발버둥을 쳤지만 나와 호우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억지로 다 구겨 넣자 그 여자의 시체가 벌떡 하며 일어났다. 눈동자가 움직이며 우리를 보는 걸로 봐서는 다시 정상적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 그 놈을 만난다구요?”
“그래야죠.”
“미쳤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 하며 웃어 보였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미쳤나 봐요.”
그 여자는 나의 황당한 대답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아가씨한테.. 끔찍한 일이었다는 거 잘 압니다. 잠깐이었지만 저도 공유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건, 아가씨는 다른 피해자들처럼 그렇게 죽어버리진 않았다는 거예요. 아니, 어쩌면 살아있는 게 더 싫은 기억이 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있으면.. 가능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저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그 놈을 잡으러 가야 해요.”
싫은 기억이 밀려오는지 갑자기 펑펑 우는 여자를 달래고 다시 가게를 나섰다. 아까의 고통은 씻은 듯이 사라져 몸은 가뿐했다.
 
*

시장 쪽으로 가려다 아까의 그 아수라장에 내 얼굴을 아는 경찰까지 있다는 생각이 나 뒤로 돌아 아파트 쪽으로 갔다. 이미 어둠은 짙게 깔려 가로등이 있는 자리를 제외하고는 뭐가 뭔지 구분이 잘 안 갈 정도였다. 형화 부적을 태울까 하다 도리어 놈에게 내 위치를 알려주게 될까봐 온 몸의 기를 죽이고 그냥 어둠 속을 걸었다. 그렇게 한참 동네를 살피는데, 무언가 나를 따라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벅, 저벅,

내가 두 걸음을 걸으면 같이 두 걸음을 걸었고, 내가 멈추면 따라 멈추었다. 나는 모르는 척하고 막다른 골목까지 걸었다. 확실히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이 눈앞에 보이자, 나를 쫓는 걸음이 빨라졌다. 나는 막다른 골목의 벽돌 벽을 등지고 나를 쫓는 무언가를 향해 영총을 겨눴다. 그러자 나를 쫓던 희미한 형상이 멈칫했다.

“너.. 누구야?”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만 작게 쿡쿡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맛있게 보여..’

엄청나게 허스키한 남자의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였다.
 
철컥-
 
‘나를 죽이려고? 아니면 이 남자를 죽이려고?’
 
황급히 형화 부적을 태워 그 놈을 보았다. 내가 총을 겨눈 자리에 있던 남자는 아까 그 경찰관이었다.
 
‘아가씨가 그 영을 불러준 덕에.. 내가 겁에 질린 이놈 몸에 쉽게 들어올 수 있었지.. 너무 고맙군..’
말을 끝내자마자 그 놈은 갑자기 고개를 숙여 내 허리를 붙들어 쓰러뜨리곤 몸으로 나를 눌렀다. 온 몸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여자인 내가 남자 경찰관-게다가 귀신까지 들린-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이!!”
무릎으로 국소를 치려했지만 워낙 강하게 눌러대 발이 움직일 구석이 없었다.
‘이 곳이 아픈가 보지?’
그 놈이 내 팔의 붕대를 보더니 말했다. 나는 더욱 거세게 반항하며 머리로 들이받으려 했다.
‘오오.. 그럼 안 되지!’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 놈이 주먹으로 내 팔의 붕대 위를 내리쳤다. 다행히 영적인 타격이 아니어서 만들어 놓은 팔이 부수어 지지는 않았지만 순간 눈앞이 몽롱할 정도로 아팠다.
‘자, 그냥 가만히 있어. 내가 저승길 선물을 줄게..’
“빌어먹을!”
나는 힘껏 목을 들어 남자의 귀를 물어뜯었다. 하지만 귀신들린 몸은 통증을 느끼지 않아 오히려 화만 돋운 셈이 되었다. 화가 난 그 놈은 힘껏 내 뺨을 수차례 내려쳤다.
‘계집년! 어서 겁을 먹으란 말이야!’
저 놈은 분명 나의 틈을 노리고 있었다. 내가 두려움에 휩싸이길 기다리고 있었다. 내 혼을 끄집어 낼 기회만 노리며 계속 때리면서 내 옷을 찢었다.
‘네 년이 이래도 참아?!’
계속 맞다 보니 얼굴과 온 몸이 다 얼얼했다. 그 놈을 보니 이미 얼굴이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내 배 위에 앉아 계속 나를 때리며 옷을 뜯는 그 놈을 노려보며 손으로는 주변을 더듬었다. 다행히 영총이 손에 잡혔다.
 
탕!!

영총을 남자의 허벅다리에 겨눠 쏘았다. 영총의 힘은 약해 탄환은 이 거리에서도 다리를 뚫지 못하고 얕게 박혔다.
‘아악!!’
경찰관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 놈은 영총의 효력을 본 모양이었다. 그 놈이 아파하는 순간 경찰관의 몸이 움찔하면서 틈이 생겼다. 나는 다시 한 번 영총을 장전해 아랫배를 향해 쏘았다.

탕!!탕!!
그 놈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영총의 탄환에서는 기생령이 쏟아져 나와 그 놈의 영을 갉아 들어가고 있었다.
‘으으!!’
그 놈은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경찰관에게서 빠져나가 다른 곳으로 도망가려 하고 있었다.
“어딜!”
몸을 날려 영의 자락을 잡으려 했지만 그 놈이 죽기 살기로 도망을 가버려 잡을 수 없었다. 골목 끝으로 그 놈이 만신창이가 된 영체를 끌고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무조건 쫓아 달려갔다. 계속 죽을힘을 다해 쫓아갔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질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뛰는 도중 핸드폰을 꺼내 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은수아! 나야! 지금 당장 호우보고 골목 앞 사거리로 나와서 기생령을 달고 가는 영을 잡으라고 해줘!”
이 말만 하고 전화를 끊고 계속 쫓아갔다. 아까 흠씬 두들겨 맞은 탓인지 생각만큼 몸이 빨리 달려주질 못했다. 앞서가는 그 놈은 지치지도 않는지 중간 중간 뒤를 흘끗 돌아보며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그 놈은 이제 골목을 빠져 나와 도로를 가로질러 갔다.
‘오케이!’
저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나는 기운이 솟아 지나가는 차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며 영을 쫓았다.
‘쓰레기 주제에 발만 빠르군’
그 놈은 도로 앞 작은 공원을 지나 사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순간 약간 살랑이는 바람이 불었다.
이 익숙한 느낌은.. 호우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그 놈은 어느새 호우의 입에 물려 있었다. 나는 순간 긴장이 풀려 웃어버렸다.
“하하, 잘했어..”
호우는 눈을 깜박이곤 그 놈을 문 채로 은수의 가게로 돌아갔다.

내가 어떻게 처치하기도 전에, 호우가 이미 그 놈을 갈기갈기 뜯어 죽여 놓았다. 처음에는 물어 뜯기만 하던 호우는 그렇게 죽이는 것도 모자르다는 듯이 도망가지 못하게 사지를 깔아 누른채 한 부위씩 앞발과 입을 이용해 찢어내고 있었다. 그놈은 영인 상태에서도 고통스러운지 괴성을 질러댔지만 호우는 아랑곳 하지않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사지를 처참하게 찢어내야 하는 것인양 천천히 찢어내고 있었다. 너무 잔인하다고 한소리 하려다.. 그 놈에게 그 이상 어울리는 죽음은 없는 것 같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놈은 영의 파편 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한채 갈갈이 찢겨 사라졌다.
 
*
 
아까부터 계속 울던 아가씨를 달래서 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은수와 호우와 함께 편의점에 갔다.
“너 때문에 집에 반창고가 남아있을 새가 없구나.”
“아 참!”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네, 여기 00동 사거리 시장 옆 골목인데요, 여기 경찰관 한 명이 쓰러져 있어요.”
경찰관이 나에게 무슨 일인지 더 물었지만 그냥 끊어버렸다.
“죽을 만큼의 상처는 아니니까 뭐.. 오히려 내가 피해자지.”
“잘하는 짓이다 정말..”
편의점 안에는 시원했지만 조명이 너무 하얘서 내 얼굴의 상처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세상에.. 그 놈.. 어떻게 사람 얼굴을 이렇게 때려.. 그 동안 시체 보면 하나도 손 안 댔던데!”
“그러게 반항은 왜 했어.”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손을 댈 필요가 없었을 만큼 네 영능력이 약했으면 바로 혼이 뽑혔을 텐데... 그냥 몸으로 몇 대 맞고 때우는 게 낫지 않나?
정색을 하는 내 얼굴을 보며 은수와 호우가 씨익 웃었다. 얄미운 녀석들 같으니.
 
"근데 호우, 그냥 죽이면 될텐데 뭘 그렇게 공을 들여 찢은거야?"
-자신의 짓에 합당한 댓가를 받은 것 뿐이다.
"음.. 그래."
- ...짐승도 그런 짓은 안한다.
“자자, 이제 기분 털자. 온 김에 과자랑 라면도 좀 사가자. 나 배고파.”
“그래, 그러자.”
가판대에서 석간신문 하나와 퀴즈 잡지를 뽑아 들고 그 위에 아이스크림 한 통과 과자, 라면, 초콜릿 바 몇 개를 얹었다.
“안나.”
“응?”
“기억나? 우리 아버지 장례식..”
“............”
“지금 그냥, 아주 잠깐, 정말 잠깐 든 생각인데... 그 때 네가 정말 우리 아빠를 성불 시키지 않았다면, 나는 아빠를 계속 볼 수 있었을까?”
“모르지... 진부한 얘기지만, 너희 아버지는 네 마음 속에 살아계시잖아.”
“그래. 그렇지 참.”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짓던 은수가 싱긋 웃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은수가 우울해 하는 모습을 보자 호우가 다가와 은수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바보냐? 은수가 영능력으로 네 감촉을 느낄 것 같니?”
-시끄럽다! 그래도 내 모습이 보이긴 하지 않느냐! 나름의 위로를 해주는데 그런 식으로 예의 없이 말하지 마라!
“위로 좋아하시네. 자기만족 아니셔?”
-됐다. 어차피 나는 너처럼 못생긴 여자에게 예의를 기대하진 않았으니 괜찮다.
“야! 이건 맞아서 얼굴이 이렇게 된 거잖아! 이 덩치만 큰 고양이 주제에!
우리가 또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보던 은수가 크게 웃어젖혔다.
“그만들 해, 사람들 다 쳐다본다.”
그 말에 우리는 서로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 웃어버렸다.
“오늘 몸 잘 풀었으니까 내일부터는 다시 일하러 나가야겠어.”
“그렇게 불어터진 얼굴로 나가게..?”
“불어터지다니! 그리고 어차피 이 일은 얼굴로 하는 게 아니잖아.”
“그래, 그럼 내일부터 사무실로 갈 거야?”
“응 그럴려고.”
“그래도 어디 부러진 데 없어서 다행이야.”
“그렇지? 난 정말 운이 좋단 말이야.”
그래도 얼마간 같이 지내서 내가 간다는 말에 서운했는지 은수는 걸음을 빨리 해 몇 걸음 앞서 가 버렸다.
 
“내가 나중에 좀 더 성장해서.. 내 안에 있는 영매의 기질을 잘 사용 할 수 있게 되면, 그땐 꼭 너희 아버지를 불러줄게.”
은수는 그 말에 멈칫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 고마워,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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