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하게 아셔야 하기 때문에 적어봅니다.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이 '독립'의 사용을 지양하고 유난히 '건국'을 강조하는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정통성과 업적을 훼손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는 본질은 거기에 있습니다.
헌법에 우리나라는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는 87년 개헌당시 진보진영의 개정안을 여당이 여론에 밀려 수정없이 받아드린 결과입니다. 지금도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 상당수는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역사적 의미를 받아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48년 최초 헌법에서 우리나라는 3.1운동으로 건립하였다고 명시되었던 것이 박정희가 쿠데타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이후에 한 5차 개헌에서 삭제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죠.
그들에게 친일은 포장하고 싶은 과거이고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은 지우고 싶은 수치심입니다.
3.1운동은 단순한 항거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전세계적으로 큰 방향을 일으켰고 특히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였던 미국의 진보진영이 조선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편집장 사설을 통해 3.1운동의 조선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후에 윤봉길과 이봉창의 의거에 감명한 중국의 장재석은 김구에게 한국의 독립을 적극 지원할 것을 약속하고, 장재석의 제안으로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을 독립시킬 것이라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카이로 선언의 일부입니다: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이하 삼대 강국(미국, 영국, 중국)은 한국이 식민지 노예상태에 처해있음을 알고 있으며 한국의 해방과 자유를 찾아줄 것을 결단한다."
카이로 선언이 있기 전에 광복군은 이미 (국제관계상) 중국군의 일부로 인도로 파병되어 영국군을 지원해 일본군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카이로 선언 이후에는 하나의 독립 군대로 인정받고 영국군과 독자적인 군사지원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즉 독립운동가들과 임시정부는 미국, 영국, 중국에 우리나라의 존재와 정체성을 끈임없이 어필함으로써 독립에 큰 기여를 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일본인이라 칭하고 독립군 자금을 횡령하던 이승만이 감히 그 공을 가로챌수는 없습니다. 미 OSS가 광복군을 지원하기 위해 이승만을 연락한 것도 이미 한국군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고 난 뒤의 일이지요. 이마저도 이승만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던 미군은 이승만을 무시하고 이범석을 직접 연락해 광복군을 지원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군과의 협력을 최종승인한 것도 임시정부의 수장인 김구였습니다.
건국과 독립은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라를 되찾음에, 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하게 됨에 감사해야할 대상은 나라를 잊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 죽어갔던 독립운동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