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위안부는 "인신매매, 취업사기, 반노예노동"이다.
게시물ID : history_101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wHat
추천 : 5
조회수 : 55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6/16 11:47:23
1. 교도통신 “일본군 위안소 설치 지시 판결문 발견”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202446.html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과거 일본군의 군대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증거 자료가 네덜란드의 법원 자료에서 발견됐다고 교도(共同)통신이 베를린발로 11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이 자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던 일본인(사망)이 전후 체포돼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전범재판소에서 증언한 것이다. 그는 재판에서 점령지의 군정 당국인 군정감부(軍政監部)의 지시를 받고 민간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2. "위안부 동원 증거, 일본에 있다"

http://www.ytn.co.kr/_ln/0104_201209110035575341

11212.jpg

지난 92년 1월, 일본의 한 일간지 폭로 기사가 한국과 중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일본의 한 역사학자가 방위성 도서관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를 발견하면서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1938년 3월, '우메지 요시지로' 육군차관이 위안부 관련 문서에 버젓이 결재한 데 이어 중국 주둔군에 위안부 모집과 운영에 대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위안부를 모집할 때는 군이 민간업자를 선정하고 지역의 헌병과 경찰과 연계해 실시할 것을 문서로 지시했습니다.




3. "위안부 만들자" 일본 문서 입수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1234595


q21212.jpg
31313.jpg

문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출병자, 즉 군인의 성욕을 긴 시간 억제하면 중국 여성을 성폭행하게 되니"
"중국에 빠른 시일 내에 위안부소를 개설해" 
"주요 목적인 성의 만족을 주고,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야 한다."

전쟁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 위안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서입니다.



4. "위안부들은 결국 속아서 온 거야"

http://jpnews.kr/sub_read.html?uid=4591§ion=sc1


121212.jpg
 ▲ 마쓰바라 씨가 발급받았던 위안소 출입증. 1943년 11월에 발급받았다고 한다.



위안소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병참기지, 그러니까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나쓰시마에 위안소가 두 개 있었습니다. 하나는 남국료(南国寮), 또 하나는 남성료(南星寮)였습니다."

그 위안소는 누가 관리했습니까?

"나쓰시마 일대가 제4해군함대의 기지였는데 이곳(나쓰시마)는 병참보급기지였어요. 제가 배속된 곳은 제4함대 시설부대였습니다. 부대장은 하기와라 간이치 대좌였지요. 제4함대 시설부대라는 건 제4함대에 소속된 부대입니다. 제4함대 사령장관은 고바야시 마사시 해군중장이었습니다. 제가 배속받은 이 시설부대가 위안소를 관리했습니다." 

시설부대는 위안소 관리만 했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위안소도 관리했지만 본국(일본)에서 넘어 온 죄수들도 관리했습니다. 한 700명 정도? 그들은 주로 잡역을 했습니다. 그 외에 한국에서 그러니까 당시엔 조선인데요. 조선에서도 많은 수의 장정들이 왔었습니다. 그들은 일을 시켜준다는 말에, 그러니까 결국 속아서 온 셈인데 아무튼 다들 같이 사역을 했습니다. 유사시 인적지원이라는 명목으로 평소에 일을 시킨 것이지요. 아무튼 위안소, 위안부, 죄수 등은 전부 제가 소속돼 있던 시설부대가 관리했습니다."


위안소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이용할 수 있었나요?

"영업시간은 기본적으로 12시부터 22시까지 였습니다. 22시에 일단 영업은 끝납니다. 단, 일반사병들은 18시까지만 이용하도록 돼 있습니다. 귀대해서 이것저것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외 하사관이나 장교, 저희같은 군무원들은 22시까지 이용할 수 있었고 또 자고 가는 것도 허용됐습니다."

위안소는 매일 운영됐나요?

"네. 매일 열었어요."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간다는 무슨 말입니까?

"그건 그녀들이 위안소에 어떻게 왔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사실 위안부들은 모두 속아서 왔어요. 모집공고가 붙는데 위안부 모집한다는 문구는 그 안에 없습니다."


그럼 어떤 문구를 넣죠? 그 모집공고라는 것에.

"보통은 고급장교의 메이드(하녀)를 모집한다던가, 병원에서 사무 볼 사람을 찾는다는 그런 내용들입니다. 그러니까 위안부들은 결국 속아서 온 겁니다. 게다가 월급이 30엔, 숙박료도 식대도 필요없다고 하니까 다들 응모하는 겁니다."


연령대가 어떻게 되던가요?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통 18세정도부터 많게는 25, 6살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아주 어려 보였습니다."


아까 한 위안소에 60명정도 있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약 120명이라는 말이 되는데, 국적은 어떻게 됩니까?

"일본인도 있었습니다. 그 외엔 전부 한국이었지요. 일본인 비율은 약 10% 정도였습니다."


돈을 직접 건네지 않았다는 말이네요.

"돈은 요금소에 냅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남국료는 그랬어요. 아무튼 그런 시스템이란 것을 생각해보면 그 돈이 실제로 위안부들에게 건네졌는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지요."


6. "군 부대가 위안소를 직접 관리했다" (2부)


(2부는 생략하겠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