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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위정자가 버티면 모든 것이 잊히나"
게시물ID : sisa_5600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9999
추천 : 11
조회수 : 743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4/11/06 18:45:36
10월28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서 가수 이승환씨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쌈지농부의 천호균 대표농부(65)도 함께했다. 세대와 성향, 하는 일이 다른 두 사람이 세월호 문제만은 따로 또 같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승환씨는 세월호 행사 무대에 두 번이나 섰고, 천 대표는 세월호 1인 시위를 벌였다. 둘 다 세월호 동조 단식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에게 세월호 문제에 적극 나서게 된 이유를 물었다. 

세월호 문제로 1인 시위에 나선 것을 봤다. 세월호 단식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가? 

천호균(천):광화문에서 하루를 같이했고, 파주에서는 두 달쯤 시민 단식 릴레이가 있었다. 예술인들, 협동조합 회원, 파주에서 지역신문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단식을 네 번인가 했다. 나이 든 사람은 쉽지가 않더라. 건강검진을 받기 전에 금식하는 건 기분이 나빴는데, 이건 스스로 결정하니 그렇진 않았다. 

이승환(이):유민 아버지 김영오씨의 몸이 완전히 돌아오려면 3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남겨진 가족들과 따뜻한 밥이라도 먹게 해주는 게 우리 사회의 도리인데…. 단식 후 보식은 잘 하셨는지 모르겠다. 저는 딱 3일 단식했는데 보식을 안 했더니 후유증이 좀 있는 것 같다. 단식 후 이틀 뒤 술을 마셨더니 바늘로 찌르는 듯 배가 아팠다. 

ⓒ시사IN 조남진 이승환씨(오른쪽)와 천호균씨(왼쪽)는 "세월호 문제는 진보ㆍ보수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관련된 일"이라는 데 공감했다. 

지금은 괜찮나? 

이:나도 나이가 좀 되다 보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잘못될까 봐 깜짝 놀랐는데 이제는 괜찮다. 

두 분은 왜 굳이 단식까지 해야 했나? 

천: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실 성장의 원흉이다. 사업한다고 돈만 생각하고, 애들한테 착한 교육도 안 시키고. 

이:'똥치미'라고 애들이 머리에 똥을 뒤집어쓴 캐릭터도 만들고(웃음). 

천:그동안 경험한 아픔이 많은데 세월호 참사가 유난히 혹독한 것 같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장에서 가라앉고, 수습이 안 되고, 구조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니까. 쿠데타가 일어나고,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것도 봤지만. 이것은 특이한 경우다. 

이:살아오면서 정부가 이렇게 무심하고 무책임한 경우를 본 적 있나? 

천:그때 마침 재ㆍ보궐 선거가 있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돌변하더라. 많은 사람들이 남의 일 같지 않게 공감하고 있었는데 선거 후에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간다는 게 내가 볼 때는 특이했다. 마치 제2의 쿠데타 같았다. 

이:이 대담이 천 대표님을 편향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이 정권에서는 상식을 이야기해도 사람이 한쪽으로 쏠렸다고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다. 괜찮으신가? 나는 이미 '커밍아웃'을 해서 상관이 없지만(웃음). 

천:파주 헤이리에 예술인이 많다. 그동안 남의 일에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세월호 일에는 다들 같이 나섰다.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들이 있다. 파주 같은 경우에는 '삐라'로 인해 보수 인사들이 이제는 평화를 자기 문제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모여서 삐라(전단) 살포를 저지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파주처럼 분단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남북 문제에 대해 주로 보수적인 목소리를 냈는데 이번 대북 전단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천:세월호와 비슷한 예인 것 같다. 자기 일로 다가오면서 올바름으로 통합됐다. '내 자식, 손자 손녀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하는 마음이 든 거다. 그분들의 엄청난 불행을, 시민들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사회적 통합의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은 통합은커녕 자기네들끼리 싸움만 벌이지 않는가. 

이:정치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통합을 방해하고 훼방을 놓는 것만 같다. 

천:이런 불행이 오히려 희망을 향한 길을 열어주고 있다. 비극이 낳은 것 중에 기적 같은 행운이 있다. 비무장지대(DMZ)는 전 세계에서 자연이 가장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이런 큰 불행도 우리를 깨우치게 하는 힘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큰 문제들도 세월호 희생자들이 길을 열어주는 거 아닌가? 

이:세월호 참사가 난 지 200일이 지났는데 천 대표님은 어떻게든 희망을 보시려는 것 같다. 난 절망이 보이는데. 위정자들에게 남겨진 교훈은 '버티면 모든 것은 잊힌다'는 확신이 아닐까. 결국 세월호로 여론을 호도한 것이 성공한 것 아닌가? 

천:진실은 더디게 밝혀진다는 말이 있다. 파주에서 신문을 만드는 협동조합에서 세월호를 계속 놓치지 말자는 약속을 한다. 전체가 세월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잊지 말자는 운동은 이어가야 한다. 200일 안에 이뤄지지 않았으면 400일 안에는 이뤄지지 않겠나. 운동의 불씨를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걸 포기로 보는 것보다는 이어짐에 대한 희망이라 보는 게 맞지 않나. 

대북 전단을 날릴 때마다 외부의 뜻있는 사람들이 말리러 가는 건 많이 봤지만 지역 주민들이 말리는 건 처음 봤다. 

천:북한에서 삐라에 대응해왔다고 신문에 나오면 식당에 1000명 오던 손님이 100명도 안 온다. 당장 자기 일로 피부에 와 닿은 거다. 

이:정부에서 삐라 뿌리는 단체에 지원금을 준다는 사실을 파주 시민들이 알고 있나? 

천:자기 일이 되니까 조금씩 귀가 열린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세월호와 삐라가 우리에게는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 열림을 도와주는 운동이 필요한데 세련되게 해야 한다. 멋쟁이들이 노래를 한다든지, 예술인들이 나서야 한다. 

가수 신해철씨를 보라. 사회적인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문화예술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이:인터넷에 유명한 사진이 있지 않나. "나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딱 그거다. 생각을 하려면 뭔가 계기가 필요한데 자기 일로 다가오지 않으면 아무 생각이 없다. 나는 직접적인 일은 없었지만 운명처럼 '이명박 나쁘다'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들에게도 뭔가 계기가 있어야 할 거다. 아무튼 내가 해철이 몫까지 하려고 한다. 

천:문화예술의 본질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숨은 진실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예술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거다. 그런데 엄청난 자본주의가 밀려오면서 눈을 멀게 하고 있다. 진실을 알리는 게 예술의 의무다. 

젊은이들이 SNS에 글을 쓰면 취직이 안 될까 봐 두려워한다. 사회 저변에 스멀스멀 기어들어온, 돈과 힘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이:영화계는 움직이는데 가요계는 아무 움직임이 없다. 특히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라는 로커들이 아무 생각이 없어서 나도 깜짝 놀랐다. 세월호 이후 영화계에서는 성명도 나왔지만 유독 음악계만 반응이 없었다. 어차피 오버그라운드는 기획사의 입김이 많으니 인디 밴드를 모아서 해보려고 했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자본과 결부된 입김이 작용하는 거다. 뭔가를 이야기할 때 자기 밥줄과 관련됐다는 공포가 이미 시작됐다. 이런 공포가 암암리에 모두의 마음에 내재돼 있다. 하고 싶은데 못하는 마음, 혹은 관심 없음. 두 종류의 마음이 있다. 

언제부터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됐나? 

이:나는 경상도에서 태어났고 집안이 여유도 있다. 보수가 아닐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명박씨가 대선 후보로 나올 때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선 후보로 나왔는지 의심스러웠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인상이 너무 탐욕스러워 보였고 실제로도 범법자였는데…. 그래서 그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천:사회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다. 사회문제에 대한 시각은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생겼다. 생명ㆍ자연에 대한 안목이 생기다 보니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7년 전부터인 것 같다. 우선 녹색당에 가입했다. 특별한 정치 활동은 아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핵운동을 하고 밀양 할머니들을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이:6∼7년 전이면 저와 거의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문화예술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명박 '가카'의 치적인 듯하다. 하지만 세월호는 진보니 보수니 나눠서 볼 문제가 아닌데…. 

천:진보ㆍ보수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관련된 일이다. 

이:서울시청 앞 세월호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이야기했지만 내가 이렇게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팽 당하는' 느낌까지 받는 불쌍한 국민인 줄 몰랐다. 사실 임기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임기 말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행태를 보니 그제야 비로소 좋아졌다. 

요즈음 국민만 더 불쌍해지고 있다. 

이: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다가 사실상 복지 없는 증세를 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공약을 어기고. 우리끼리 장난으로 분명 '행복지세'를 만들 거라는 얘기도 한다. 

행복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는? 

이:행복한 직업군에 있는 사람은 남들보다 큰 행복을 받으니 돈을 더 내라는 거다. 음악가ㆍ미술가ㆍ영화인 같은 눈엣가시들이 대상이 될 거다. 그런 제도를 준비하는 단체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마저 앗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고통스러운 이야기라 듣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세월호 문제는 이제 그만해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천:그런 사람이 많은 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외면하는 사람들도 각자 자기 일이 있는 거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먹거리 정의운동이라는 게 있다. 10인분 시켜야 할 것을 8인분만 주문하고 나머지 돈을 후원하는 식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다 보면 세월호에도 눈을 뜨게 된다. 

이:본인이 좋은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좋은 일에도 계속 눈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천 대표님은 한때 분노했던 사람들의 불씨만으로도 세상을 바꾸기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천:시간이 필요하다. 이걸 계기로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최근에 임진강에 보를 준설한다고 예산이 나오고 공사가 시작됐다. 파주 시민 가운데 이걸 막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다 1번만 찍던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정부 논리에 설득되지만 상당수가 반대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게 다 세월호에서 파생된 게 아닐까. 최근 파주에서 문화재 주변에 크게 개발이 이뤄지는데 주민들이 반대하니까 새누리당 시장이 시정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문제가 시급하다는 프레임을 제시하고, 언론은 유족들을 지겹다고 생각하게끔 유도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도 사실이다. 

천:아까 말한 불씨가 꺼져가느냐, 남아 있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파주라는 보수적인 지역에서도 항상 세월호의 색인 노랑을 쓰자고 말한다. 얼마 전에 오픈한 '스페이스 오'라는 갤러리가 있는데 갤러리 안에 들어가면 전부 노란색이다. 이런 게 불씨다. 이런 불씨는 한번 바람이 불면 살아날 수 있다. 

이:시민들의 분노가 잊히는 것 같지만 분노의 기억은 남아 있을 것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08&aid=000001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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