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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2
게시물ID : panic_56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회갑성
추천 : 11
조회수 : 59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0/05/09 18:53:47
다음날 아침 눈을 떳을 땐 해가 중천에 밝아 있었다. 간밤에 살충제를 뿌리며 마당에서 한 복판 난리굿을 피웠던 게 기억이 났고 난 벌떡 몸

을 일으켰다. 얼마나 성과가 있는지 이 백주대낮에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볼 요량으로 마당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개미떼들이 새까

맣게 군집해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젯 밤 개미굴에다 살충제를 무자비하게 분사했던게 즉효였던 듯 덩어리 진 개미뗴가 굴에서부터 이어져

퍼지더니 1m정도 지름의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모두 개미시체라 생각하자 팔뚝으로 소름이 돋았다. 

죽은 개미의 수는 어림짐작으로 몇십만은 되어 보였다. 워낙 숫자감각이 없는 터라 죽은 개미들이 그 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하찮은 벌레들이라지만 내 손으로 이렇게 많은 숫자를 죽였다고 생각하니 마치 사람을 죽이기라도 한 듯 가슴한켠이 무거워졌

다. 물론 법적제제가 없으니 겁 까지 나지는 않았다.

난 집창고로 들어가 삽을 찾았다. 곧 낡기는 했지만 아직 쓸만해보이는 것을 찾아냈고 마당으로 가 흙을 퍼 개미들의 시체를 덮었다.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비해 허무허무한 말로였다. 몇만원치 살충제에 가히 제국이라 불러도 모자람 없는 개미들의 세계가 붕괴했다.

게다가 고작해야 삽질을 스무번 정도했을 뿐인데 수많은 개미들의 시체는 흙더미에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인간이 새삼 이런 곤충들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젯밤 개미들은 나를 무엇으로 인지했을까? 

만일 인간의 시각으로 옮겨본다면 아마 파괴를 주관한다는 인도의 시바신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별의 별 생각속에서 쉬지 않고 삽질을 한 끝에 개미들의 시체는 모두 종적을 감추었고 난 살짝 찝찝한 기분속에서 마당 곳곳을 더 살펴봤다. 

죽은 건 개미 뿐만이 아니라 몇십 종이나 돼는 수 많은 벌레들도 있다. 어떤 과학자가 유익한 곤충이라고 칭했던 무당벌레 시체가 

마당을 둘러보는 동안 간간이 눈에 띄었다. 다른 벌레들에 비하면 그 횟수가 간간이라는 말이지 절대로 죽은 숫자가 적다는 건 아니었

다. 족히 몇십마리는 되리라.

내가 어젯밤에 저지른 일이 가히 지랄발광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냥 지나치게 많은 개미와 독을 품은 독충들만 죽

였엇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구태여 사람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주는 무당벌레나 거미등을 해칠 필요가 있었을까? 

극심한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틀전에 본 강아지의 시체가 내 이성을 뒤흔들 만큼 충격적이었기에 앞 뒤 안

가리고 설쳐버린 것을 이제와 어쩌겠는가.

마당일을 완전히 정리한 뒤에서야 난 부엌으로 들어갔다. 달뜬숨을 쉬며 냉장고를 뒤져 시원한 냉수통을 꺼내들었다. 컵에 부어 한잔 하

는 그 순간이었다.

"악"

문득 따금한 감촉이 목 언저리에서 느껴졌다. 깜작 놀라며 손바닥으로 후려치자 뭔가가 톡 터지는 느낌이 들더니 찐득한 액체가 목에

서 질질 흘러내렸다. 검지로 닦아서 보니 초록빛깔을 띄는 진액이 묻어 있었다. 기분이 더러워지며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솟구쳤다.

진액에서 풍기는 냄새가 너무 지독했기 때문,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급히 수돗가로 다가갔다. 수돗가 앞 물이 가득찬 대야

위엔 날파리시체가 잔뜩 떠 있었고  큼지막한 나방하나가 날개를 쫙 편 채 부유하고 있었다. 

물을 틀고 손을 씻자 손을 씻고 내려간 물이 대야의 수면을 뒤흔든다. 둥둥 떠 있는 벌레들의 시체를 보자 대야물을 쏟아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손을 씻고 뒤엎을 생각이어서 나는 손바닥에 묻은 초록색 진액을 우선적으로 씻어냈다.

"푸득"

그 순간 죽은 듯이 물 위에 떠 있던 나방의 날개가 움직였다. 

나방은 새처럼 맹렬한 날개짓으로 재빨리 솟구쳐 날아올라 내 얼굴로 달라붙었다. 깜작 놀라 난 손을 들고 얼굴을 후려갈겼다. 

따금한 느낌이 들더니 몰려온 얼얼함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너무 놀란 탓에 힘을 조절하지 않고 얼굴을 때린 탓이었다. 콧잔등이 시큼하며

눈물이 핑 돌았음은 물론 걸쭉한 액체가 인중을 타고 흘러내리더니 입안으로 흘러들며 혀를 자극했다. 비릿하고 짠맛이 영락없이 코피

맛이었다.

"씨발."

욕을 뱉으며 이미 힘을 잃고 땅에 쓰러진 나방을 힘주어 밟았다. 찍하며 나방의 액이 튀었고 다시 발을 들어올렸을 때 나방은 날개가

찟기고 몸이 짓이겨져 걸쭉한 액을 내뿜은 채 돌바닥에 껌 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화는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심해졌다. 고작 해충 따위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게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난 불구대

천의 원수라도 된 양 나방을 수십번 힘주어 밟았다. 나방의 몸이 갈기 갈기 찟기고 흩어져 바닥에 진액만이 번져 물감처럼 남았을 때

가 되어서야 나는 발로 짓밟는 것을 멈추었다.

열심히 발을 움직였더니 가슴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고작 벌레따위에게 이렇게 맹렬한 적개심을 품은 게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나방이 얼굴을 뒤덮을 때 느꼈던 그 끔직한 기분이 떠오르자 그 정도 반응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손만 씻을려고 했는데 나방이 들러붙은 얼굴 부분이 가려워서 집에 들어가 제대로 씻어냈다. 비누로 일차적으로 씻어낸 뒤 평소 잘 쓰

지 않는 세정제도 가져와 힘주어 얼굴 곳곳을 깔끔히 닦아냈다. 

거품이 난 얼굴에 연신 찬물을 끼얹어 모두 씻어냈다. 또 다시 새 물을 받아 얼굴을 씻었고 그제서야 찝찝하던 기분이 조금 풀렸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그 뒤에서야 터졌다.

수납장의 수건을 집어들고 얼굴을 닦을 때 따금한 감촉이 코에서 느껴졌다. 굉장히 날선 통증이라 나는 깜작 놀라며 손을 멈추었다. 

불쾌감과 참기 힘든 찝찝함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콧잔등에 초록빛을 뛰는 종기같은 것이 돋아 나 있었다. 

금방 집에 있는 구급상비약들을 가져와 세밀히 응급처치를 했다.다소 무식한 방법이었는데 코에 나 있는 종기를 억지로 힘껏 짜낸 뒤 그 위에 

소독약을 면봉으로 살살 펴발라준 뒤 그 위에 아까진기를 덧 바르고 지혈제를 뿌리는 것이었다. 거기다 작은 반창고까지 붙이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그럼에도 불안했다. 종기가 터질 떄 나왔던 그 끈적끈적한 액체가 머릿속에서 생생히 떠올랐다. 

종기라면 의당 누런빛깔을 뛰어야 할 텐데 그것은 은은하게 초록빛을 띄고 있었다.

고름이 초록빛을 띈다는 건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쩝쩝"

딱딱한 식빵을 연신 씹어삼켰다. 너무 늦게 일어난 탓에 아침도 먹지 못한 난 동네가게에서 산 식빵으로 허기를 달래며 인

근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향했다.

코의 상처를 보여준 뒤 정확한 병명을 알고 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머리숱이 많고 젊어보이는 의사는 내 코의 반창고를 벗긴 뒤 면밀히 살펴보더니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살이 썩어가고 있네요...독 같습니다."

살이 썩어간다는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그..그게 큰 문제가 됩니까?"

"이대로 두면 코 전체가 썩어들어갈 겁니다. 당장 수술을 시작해서 상처부위를 도려내고 세균감염을 막기 위해 제대로 된

소독을 받으셔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충독같은데 어디서 물리셨는진 모르지만 이 정도면 굉장히 아프셨겠습니다."

의사가 위로랍시고 침중한 어조로 말했지만 내 속만 박박 긁을 뿐이었다.

...

...

"마취 들어갑니다."

마스크를 쓴 간호사가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따금한 느낌이 코에서 일더니 코 전체가 얼얼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팔뚝쪽도 따금해졌고 빠르게 졸음이 몰려왔다. 

문득 이렇게 수술대에 오르니 십년전 포경수술을 받을 때가 떠올랐다. 그 당시 의사는 내게 안심하라는 뜻으로 편하게 웃어보이며 천장에 달린 티

비를 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꼬추를 살짝 꼬집는다고 말했었다. 

직후 따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헌데 신기하게도 꼬집혔다고 생각하니 별로 아프지 않아서 나는 히죽거리며 계속 티비를 시청했었다. 당시에 난 의사가 마취주사를 성기에

주사했다는 걸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노릇이었다.

시야가 흐릿해지며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와 생각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어릴 적의 회상도 잠시 나는 강력한 마취약의 기운을 이기

지 못하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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