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에 사는 68살 윤 모 씨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렸습니다. 윤씨의 집이 국·공유지인 도로를 무단으로 침범했다며, 구청이 윤씨에게 변상금 450만 원을 내라고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1971년에 이 집을 처음 지었어요. 여기서 애들 다 키우고 43년째 살고 있어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지냈는데, 집이 50cm가량 도로를 침범했다고 느닷없이 5년 치 변상금을 내라고 통보한 거예요! 이게 말이 됩니까?"
이렇게 집이나 건물이 도로를 침범했다며 구청에서 변상금 통지를 받은 주민은 윤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최 모 씨에겐 9백만 원이 넘는 변상금 청구서가 날아왔습니다.
"가게 간판이 조금 나온 건 줄 알고 철거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아예 건물 자체를 뒤로 물리라는 겁니다. 정원이 있는 담벼락이면 철거하겠어요. 근데, 우리 가게는 벽돌로 쌓아 만든 건물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사정을 설명해도, 구청에선 무조건 법대로 하래요. 돈을 내든지 아니면 건물 다 때려 부수고 다시 짓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고요!"
이들 두 사람처럼, 변상금 청구서를 받은 가구는 송정길에서만 35가구, 성동구 전체에선 188가구에 이릅니다. 청구된 변상금을 다 합하면 4억 2천만 원이 넘습니다.
"우리는 정당한 법 집행을 하는 것뿐입니다!"
성동구는 왜 4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변상금을 청구했을까요? 구청의 입장은 간단명료했습니다. 한마디로 '법대로 했을 뿐'이란 겁니다. 지난 2012년, 정부의 국공유지 관리방침이 변경되면서 측량 대상이 아니던 국가 소유의 도로와 하천도 측량 대상에 포함됐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 소유의 건물이 도로를 침범한 사실을 새로 발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국가는 방대한 재산과 건물을 모두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위반 사례를 확인할 때마다 변상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구청의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합니다. 먼저, 주민들은 구청이 처음 집을 지을 때 도로를 침범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공사를 시작할 당시에 도로 침범 여부를 제대로 확인했다면 이런 문제는 근원적으로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주민들은 또, 40년여 년 전의 일을 지금에 와서 법대로 하겠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도로를 수십 센티미터 침범한 것에 대해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변상금을 부과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도 주민들은 되물었습니다. 이런 점을 반영해, 관련 도로법은(제72조 2항) 지난 7월, '고의나 과실로 국공유지를 침범하지 않은 경우엔 변상금을 징수할 수 없다.'라고 개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동구의 입장은 완강했습니다. 애초 주민들이 집을 처음 지을 때 집을 넓게 짓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로를 침범했다.'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판단한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또, 만약 건물을 뒤로 물리지 않으면, 변상금과 별도로 해마다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의 점용료도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구청의 법 집행에 무리한 면이 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행정학, 부동산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만났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구청의 법 집행에 무리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규언 교수는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건물을 많이 짓다 보니, 건물을 지적과 다르게 짓는 '지적 불합치'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현재 전 국토의 15%, 약 500만 필지 정도가 이런 '지적 불합치' 상태인데, 이런 상황에서 변상금을 일괄적으로 부과하면 큰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번 건과 반대로 국가가 사유지를 침범한 경우도 많다며, 이런 문제를 모두 법대로 처리하려고 하면 소송이 난무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생길 것이다."라고 우려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지적 불일치 문제는 장기적 민원이 발생하거나 재개발-재건축 때 순차적으로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습니다.
'행정'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행정(行政, Administration)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법의 규제를 받으면서 국가 목적 또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행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작용'. 전 취재과정 내내 이 의미를 떠올렸습니다. 특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작용'을 어떻게 해석하는 게 좋을까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제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법을 가능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입장에 서서 해석하고 이해하고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담당 공무원들도 나름의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성실히 업무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 조금 더 깊이 고민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와 관련한 기사가 '8시 뉴스'를 통해 보도된 뒤, 어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주민들을 만나 구청의 입장을 설명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주민들에게 큰 혼란을 줘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당분간 변상금 부과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앞서 설명한 도로법 제72조 2항(고의나 과실로 국공유지를 침범하지 않은 경우엔 변상금을 징수할 수 없다.)의 정확한 유권해석을 국토교통부에 질의했고, 회신이 오는 대로 내용을 법률-부동산 전문가 등과 상의해, 가능한 주민들에게 유리하게 관련 지침을 정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