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기야 배우 장혁이 등장했을 때, '군대 예능' <진짜 사나이>가 시청률의 본궤도에 올랐음이 제대로 실감됐다. 저 유명한 싸이 만큼은 아니지만, 한 때 군 입대 문제와 연루돼 곤욕을 치렀던 그가 아니던가. 재입대하는 꿈이야말로 군필자들이 치를 떠는 최악의 악몽일진데, 하물며 장혁에게 군복을 다시 입히고 대중 앞에 서게 만든 예능이 등장하다니.
연예인들이 직접 군에 입대해 병영생활을 체험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MBC <일밤>의 <진짜 사나이>가 경쟁 프로그램을 따돌리고 일요일 예능 1위로 올라섰다. 유재석의 <런닝맨>과 전통의 강호 <1박 2일>의 아성을 넘어선 것도 의외지만, 전통적으로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를 제일 싫어한다던 '세상의 절반'인 여성 시청자들까지 TV 앞으로 끌어들인 것은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군대리아' 보급(?)을 필두로 한국말 잘 하는 '호주형' 샘을 예능 섭외 1순위에 올려 놓은 것도 모자라 <추노>의 '대길이', <뿌리깊은 나무>의 '강채윤' 장혁을 일요일 예능에 입성시키다니. 이제 '먹방' 윤후의 안티 카페를 네티즌 스스로가 잠재울 만큼 화제 속에 방영 중인 <아빠! 어디가?>의 인기를 뛰어 넘을 기세다.
헌데 하필, 새정권의 출범과 함께 부상한 이 <진짜 사나이>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전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만 가능할 이 '군대 예능'에서 진짜 궁금한 건, 제작진과 출연진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분명 그저 '예능은 웃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려는 지향점이 꽤나 명확해 보인다.
더 당혹스러운 건, <진짜 사나이>를 보며 보편적인 공감대를 운운해야 하는 상황 자체다. 진짜, 우리 시청자들은 이 군대 문화와 마주하며 마음 편히 킬킬대고 감동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우정의 무대>의 인기를 잇는 '군대 예능'의 보편성 사실 군대를 배경으로 한 TV 프로그램은 꾸준히 브라운관을 장악했고, 일요일 저녁을 점령한 적도 있었다. '뽀빠이' 이상용씨를 국민MC로 등극시킨 <우정의 무대>가 시청률 톱을 자랑했다면, 그 이전 극 형식을 통해 반공교육의 선봉에 섰던 <배달의 기수>는 아련한 추억 속 TV프로그램일지언정 그만큼 꾸준히 '군대'를 미화한 프로그램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군대 예능'의 반향을 선도한 tvN <푸른 거탑>이 올 초 인터넷을 중심으로 화제를 모았을 때만 해도 젊은 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반짝' 인기일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트콤을 방불케 하는 과장된 연기와 상황 속에서 케이블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디테일, 그리고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살린 <푸른 거탑>과 같은 '군대 예능'이 지상파에 입성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가 얼마나 됐을까.
그럼에도 보편성의 이름이란 대중성은 역시나 힘이 셌다. 자, 이 숫자가 가늠이 가시는가. 현재 군복무중인 장병들의 숫자를 포함 군대에 다녀온 예비역들과 그 위 세대인 민방위 대원들, 그리고 군복무 중인 아들딸과 동생 혹은 오빠를 가족으로 둔 여성들의 수 말이다(<진짜 사나이>에 왜 필요한지 의아한 내레이션이 여성의 목소리를 빌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기에 군대간 남자친구를 둔 여성들의 숫자를 복수로 더한다면, 그 숫자는 실로 어마어마할 것이다(군대 간 친구 혹은 후배 등등 혈연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군대라는 이 전국민적인 보편의 기억은 여전히 현재진행인 우리의 역사로 수렴된다. 그렇게 분단국가의 일원으로서 단 하나의 공통된 기억을 소화하라면, 우리는 '군대'를 떠올려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는 이 집단의 기억을 무려 2013년에 제대로 브라운관에 이식시켰다. 하지만, 이 보편성에만 호소했다면 과연 이만큼의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공기와 같은 안보'에 예능이란 당의정을 입히다 샘 해밀턴 이병은 겨우 입에 붙은 '요'자 말고 '다, 나, 까'를 붙여야 하는 군대 용어가 그리도 거슬린다. 나이 마흔을 넘겨 재입대 한 서경석 이병은 명령불복종으로 인해 시청자들 사이에 갑론을박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여자친구가 6일째 전화를 안 받는다는 일반 사병 출연자의 얼굴은 애처로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진짜 사나이>는 이렇게 리얼 버라이어티란 장르를 십분 활용해 군대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펼쳐 놓고자 한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흔히 하는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예능이란 당의정을 입힌 채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이병들이라면 내내 공포의 순간으로 각인된 점호나 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각종 훈련, 그리고 비방용이라면 어땠을까 궁금한 (순화된)얼차려까지.
군필 남성들은 추억을 반추하고, 현역들은 '에이, 저 정도 가지고 뭘'이라며 으쓱대고, 여성들이라면 '우리 오빠가, 우리 아들이 저랬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일 대한민국의 군대 얘기를 <진짜 사나이>의 연예인 사병들이 때로는 친근하게, 때로는 리얼하게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밀리터리 마니아들이라면 더더욱 반길 (육군과 제작진의 협의 하에 가능했을) 각종 군 장비들과 용어, 훈련 상황들이 지상파에서 잔뼈가 굵은 제작진에 의해 매끄럽게 제작된 것이 바로 <진짜 사나이>의 요체다.
올 초 인터넷을 달궜던 <레 밀리터리블>의 관심에서 엿볼 수 있듯, 군대 얘기에 대한 잠재된 관심은 제작진이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매력적이지만 따 먹기는 힘든' 과실이었던 셈이다.
그 과실을 제대로 수확한 <진짜 사나이>는 <나는 가수다> 이후 <아빠! 어디가?>와 짝패를 이뤄 MBC의 예능을 부활시킨 일등공신이라 평가 받고 있다. 그간 여타 지상파와 케이블의 인기 예능을 짜깁기해왔다고 질타를 받던 (<무한도전> 등 몇몇을 제외한) 그 MBC의 예능국 말이다.
자, 성공기와 배경은 여기까지. 보면 볼수록 의아스러운 것은 도대체 <진짜 사나이>가 지향하는 바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가다. 그 단서는 물론 프로그램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국민들이 재미도 얻겠지만, <진짜 사나이>를 보며 안심을 했으면 좋겠다"는 한 출연자의 소감은 꽤나 상징적이다. "안보는 공기와 같다"는 그 흔하고 전통적인 안보관에 직결되는 보수성 말이다.
샘 해밍턴은 아직 모르는 진짜 한국 문화 |
▲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에 출연 중인 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이 5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스타 사무실을 방문했다. |
ⓒ 이정민 | |
물론 '예능'을 '다큐'로 받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진짜 사나이>의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는 지향점은 분명 따져 봐야 마땅하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군대 내부로 걸어 들어가 권위와 명령, 그러니까 상명하복에 죽고 사는 군대의 가치에 일언 반구할 수 없는 입장에 섰다. 샘 해밍턴이 가장 돋보이는 건 (개인 캐릭터와 시너지를 일으켜) 이러한 문화에 덜 익숙한 외국인의 문화 충격에서 비롯된 좌충우돌이 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 그러니까 남이나 북이나 군사문화의 잔재인 권위주의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시대에 <진짜 사나이>는 그 군대의 가치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극복, 이를 통한 남자들의 성장, 그리고 이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공동체의 가치로 (실제 의도가 어떠하든) 상승시키는데 일조한다. 그런데 과연 그 가치들은 무한 긍정해도 되는 걸까. 자, 그리고 그 군대(와 군대 문화)는 <진짜 사나이>에 비춰지는 것처럼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낭만적'인 공간인가?
앞서 당의정이란 표현이야말로 <진짜 사나이>의 핵심일 터다. 지금 당장 인터넷 검색 창에 '군 비리'를 검색해 보시라.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군대 관련 사건사고는 이제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군은 공군의 전면적 금연 실시와 같은 가벼운 예처럼 개인의 인권이나 개성은 무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권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 사회면을 들썩였던 육사 생도의 성폭행 사건도 크게 다를 바 없는 '권위주의'의 산물일 것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윤종빈 감독이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사병 자살 문제를 소재로 개개인의 개성을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결국 '조직'에 순응하는 인간형을 그려낸 것이 지난 2005년이다. 영화 <돼지의 왕>의 연상호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창> 역시 군대 문화에 전염되는 한 인간을 통해 한국사회를 비판한 바 있다. 비단 총기 사고나 자살과 같은 극단의 안타까운 사건 외에도 군대문화가 한국사회에 주는 폐해는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
자, 조직 우선주의와 상명하복의 수직적 관계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연원이 과연 어디서부터일까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진짜 사나이>에 웃고 울고 공감하는 우리는 자신이 경험했건 안 했건, 부지불식간에 그 군대 문화에 이미 순응하거나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일베'의 시대, 2013년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출범한 <진짜 사나이>
흥미로우면서도 우려스러운 점은 <진짜 사나이>가 현정권의 출범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일베'가 '민주화'를 부정하고, 군사정권의 망령을 되돌리는 시대, 대통령의 아버지가 쿠데타로 완성한 군사정권과 권위주의가 '군복 입은 여성대통령'으로 부활할 조짐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이 2013년에 왜 우리는 하필 군대에서 축구하고, 얼차려 받고, 군대리아 먹는 예능을 목도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진짜 사나이>야 말로 희비극이 교차하는 박근혜 시대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경제'를 최우선 기조로 삼아 '창조 경제'와 같은 '명령'들을 '권위주의'적으로 밀어붙이는 시대 말이다. 이에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순응'을 우리는 <진짜 사나이>의 군대 문화에서 매주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끝으로 하나 더, 안 그래도 '미필자'들이 핍박 받는 획일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구멍 병사'는 웃음을 사고, 일등병사는 능력자로 인정받는 <진짜 사나이>의 이미 예견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 창출이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건 과잉된 해석일까. '방위'라고, '공익'이라고 '면제'라고 놀림 받던 그들은 <진짜 사나이>의 인기와 함께 '두 번 죽이는' 분위기가 형성되지는 않을까 살짝 근심이 드는 건 기우일까.
프랑스의 거장 장 뤽 고다르는 '정치영화'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어라."
정치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아니라 형식과 주제를 비롯한 작품 전체를 '정치적'으로 만들라는 전언인 셈이다. 이에 빗대면, <진짜 사나이>는 분명 "예능을 정치적으로 만든" 박근혜 시대의 예능이다.
오마이뉴스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