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언맨이 나왔을때, 나는 당시 원작으로 보던 '시빌 워'도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막상 이렇게 빠른 시기에 시빌 워에 대한 떡밥이 나오면서,
원작에서 백 명에 가까운 히어로들끼리 치고박는 '시빌 워'의 전투씬을 10명?정도로도 압축한다는 것에 우려를 했었다.
이런 우려 속에서 어제 본 영화는 그런 나의 기우와 달리 공항전투신은 각 캐릭터의 개성, 유머코드를 적절히 버무리며 잘 표현했다고 본다.
특히 새로 등장한 톡톡 튀는 스파이디, 데드풀을 잊게할만한 스파이디와의 케미를 보여준 앤트맨의 매력, 차기작을 기대하게 하는 블랙 팬서는 이 작품이 표현한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반적으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아쉬운 작품이라는 의견을 접을 수 없다.
그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시빌 워'라는 좋은 이슈를 너무 빠르게 소진했다는 것이다.
원작의 진중한 분위기나 메시지는 둘째 치더라도, 개인적으로 더 많은 히어로들이 나온 뒤 5년 후 쯤이 적당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10년 뒤를 바라지만, 그때의 아이언맨은 로다주가 아닐 가능성이 높으므로....)
다양한 히어로들이 나와서 와장창창 거리는 모습을 보는 재미를 줄 수 있는 '시빌 워'는, 결국 대규모 전투신이 공항 전투 한번 정도로 끝나버린다.
마블 스튜디오만이 만들 수 있는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었던 이벤트인 시빌 워를 단 한 편으로 소진시켜 버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 최고의 단점이 아닐까한다.
둘째, 보여주려는 것이 너무 많았다.
시빌 워라는 제목을 단 만큼 히어로간의 대립도 보여줘야겠고, 개연성을 넣기위해 윈터 솔져를 등장시켜야겠고..
거기다 결국 나쁜 놈을 따로 넣기 위해 빌런도 넣어야겠고...
이러다보니, 결국 그가 왜 어벤져스의 분열을 바랬는지에 대한 이유가 부족하다. 아니 말로는 설득이 되는데, 관객의 마음까진 얻진 못했달까.
더군다나 소코비아의 군인에 불과하던 한 인물이, 윈터솔져에 대한 변장도구, UN테러를 혼자(혹은 둘) 저지를 능력을 갖추고, 하이드라의 비밀기지까지 찾는다니...
보여주려는 것이 많다보니 이야기의 개연성은 떨어지는데, 액션신으로 그것을 덮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셋째, 캐릭터의 개연성은 어디에 갔나.
사실, 이 영화가 그나마 칭찬받는건 앞서 나온 '슈퍼맨 대 배트맨'의 엄청난 개연성 삽질에 의한 효과가 크다고 본다.
알다시피 원작의 아이언맨과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아이언맨은 다르다. 원작에서 일루미나티의 일원이고, 권력을 지향하는 토니 스타크와 달리, 영화의 그는 유머러스하고 자유분방하며 '국가'에 대해 협조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런 그가, 자기가 참여한 일에 의해 아이가 죽고, 페퍼 포츠와 사이를 지키기 위해 정부에 본인 재산인 '아이언맨 슈트'가 귀속되는 협정에 찬성한다? 이런 우디르급 태세전환이 관객은 어리둥절하다. 그동안 아이언맨을 통해 본 그가 아니거든.
캡틴 아메리카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게 윈터 솔져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어벤져스 1편에 '군인' 운운하던 그는 이제와 협정에 반대한다. 물론 신념때문이긴 하지만 '윈터 솔져'에 대한 개인적 감정과 맞물리며 타당성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고구마 잔뜩 먹는 듯한 답답함만 주는 인물로 표현되었다. 워머신과 팔콘의 수동적인 자세 또한 마찬가지이며, 뜬금없는 호크아이의 등장과 그렇게 몸 사리던 앤트맨의 참전 역시 어리둥절할 뿐이다.
시빌 워 이슈에 참여할 이유가 설명되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해야되기 때문에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잭 스나이더의 병신짓때문에 가려져있을뿐...
시빌 워라는 이벤트를 담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사전 작업이 더 있었어야 한다고 본다.
1. 닉 퓨리 체제 및 쉴드 해체 이후, 지휘체계의 필요성을 느낀 토니 스타크를 설명했어야 한다.
다양한 이벤트를 겪으면서, 지휘체계가 있어야하며 그것을 자신이 해야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면서 권력을 지향하는 인물로 바뀌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부에 협조적인 인물로서의 아이언맨이 설명된다. 그리해야 동료들이 그런 수중감옥에 갇혀도 '가만히' 있을 인물이 설명되는 것이다.
2. 소코비아 협정이 아니라, 원작 그대로 '초인등록법'이었어야 한다.
이 둘은 애매하게 다르다. 소코비아 협정은 사실 반대할 명분이 별로 없다. 각 국가가 협의하여 UN기관 하에서 어밴져스가 활동하는 것이다. 물론 잃는 것이 있겠지만, 통제되지 않는 폭력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을 관객 모두가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하지만 초인등록법은 다르다. 비밀리에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인물들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것이다. '히어로의 삶'을 살기위해 '개인으로의 삶'을 포기해야한다. 그렇기에 여기에 '스파이더맨'이라는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기존 어벤져스에 나온 인물 중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던 인물이 있는가? 자신때문에 가족 및 주변인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경험은 토니 스타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도 막대한 재력과 원격 조종이 가능한 슈트 덕에 소중한 이를 지켰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 첫사랑을 잃은 '피터 파커'는 다르다. 그의 등장으로 '시빌 워' 주제의식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관객입장에서도 양 진영의 대립이 이해되면서도, 한 쪽이 잘못했다거나 답답해할 이유가 없게 된다. 원작이 그랬듯이 말이다.
결국, 이 모든 원인은 '시빌 워'라는 거대 이벤트를 한 편에 담으려던 오판이다. 최소 2편, 혹은 3부작으로 다루었어야 할 이벤트였다.
원작을 영화로 개편할 때, 가장 저지르지 말아야하는 것이 이벤트를 '축소'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재생산하고 관객이 상상하게 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원작을 뛰어넘는' 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대표적인 예가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이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시민사회를 투영했던 그의 영화는, 메세지만으로도 훌륭했지만 정작 오락적 면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새로 창조된 '조커'다. 슈퍼맨을 세 치 혀로 갖고놀고, 기발한 장난감들로 배트맨을 골탕먹이던 '어릿광대' 이미지에 불과하던 조커라는 캐릭터를, 놀란은 현실세계의 악당으로 재창조했다. '혼돈'을 좋아하고, 인간 본연의 어두운 면을 알리고자 했던 한 미치광이는 관객에게 두려움을 주기 충분했다. 그가 있었기에 배트맨 트릴로지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수많은 부족한 점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빌 워는 어떠한가. 던지는 주제의식은 수박 겉핥기이며, 등장하는 빌런에 대한 설명은 충분치 않으며, 심지어 런닝타임마저 짧다.
이 모든 이유가 단 한편에 모든 이야기를 담으려던 욕심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더 최악은 이제 다시는 이 이벤트를 영화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DC코믹스에 비해 주제의식이 가볍다는 비판을 한번에 지웠던 '시빌 워'라는 마블코믹스의 역대급 이벤트는 영화로의 생명이 다했다.
앞에서 설명한 그 어떤 부족함보다 이 사실이 본인에게는 너무 슬프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아쉽고, 또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