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취재] 신은미·황선 콘서트 사제폭탄테러 범인을 만나다
그는 극우사이트가 만든 괴물이었다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 사제폭탄테러의 범인은 인터넷이 만든 괴물, 정확히는 극우사이트가 만든 괴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접했고, 인터넷으로 범행을 계획했고, 인터넷으로 범행 과정과 연행 후 상황 등을 알렸다. 그는 범행 과정을 올린 게시판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일베에 중계해달라."
폭탄테러가 발생한 다음날인 11일 오전 익산경찰서에서 폭탄테러의 피해자 황선 씨가 가해자 오모(18)씨를 만났다. 이 면담은 황선 씨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 오군을 꼭 만나고 싶다”는 요청으로 이뤄졌다. 폭탄테러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면담 자리에 <민중의소리>가 동행했다.
“이 사건 많이 알려졌어요?”
이 둘의 만남은 어렵게 성사됐다. 사건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만남은 부적절하다는 경찰 측의 입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신청하는 면담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 경찰 관계자는 이 둘에게 짧은 만남의 시간을 허락했다.
황씨와 오씨가 면회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전날 밤늦게까지 경찰 조사를 받은 탓인지 오군의 표정은 많이 지쳐보였다.
황씨가 물었다. “몸은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 없어요?” 오씨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황씨의 질문이 이어졌다. “혼자 범행을 계획한 게 아니죠. 어떻게 이런 무서운 테러를 이 앳된 학생이…” 그는 황씨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했잖아요” 그가 즐겨보는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에서 황씨는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하는 사람이었다.
황씨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왜곡되고, 인터넷을 통해 잘못 전달되고 있어요. 저는 맹세코 ‘북한이 지상낙원’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낸 적이 없어요. 저는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런 분단된 현실에서 잘못 전달되는 북한에 대한 생각과 사람들이 ‘종북세력’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의 활동에 대해 편견을 깨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전하기 위한 콘서트를 열었는데 여기서의 내용이 더 왜곡돼 전달되는 상황이 너무도 안타까워요.”
오씨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믿고 있는 듯 했다. 그는 황씨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제 보수세력이 기자회견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토크콘서트에 앞서 신동성당 앞에서 보수단체회원 100여명이 콘서트 반대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신은미·황선을 즉각 구속하라’고 외치며 콘서트 진행 관계자와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는 오씨도 있었다.
십대의 학생에게 인터넷은 자신의 행동을 알리는 공간이었다. 그는 연행 직후에도 경찰서에서 수갑을 찬 자신의 손을 찍은 사진을 게시판에 올렸다. “무사히 경찰서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는 자신이 전날 폭탄을 던지려 했던 상대를 앞에 두고 이런 질문을 했다. “이 사건 많이 알려졌어요?”
은미·황선 씨의 토크 콘서트 사제폭탄 테러를 저지른 A군으로 보이는 사람의 일베 게시물ⓒ일베 게시물 캡쳐
“주범은 어린 학생 아니라 어른들과 이상한 생각 조장한 인터넷”
오씨는 범행 직전 애니메이션 관련 커뮤니티 네오아니메 사이트에는 신은미씨 등을 폭사시키겠다는 내용의 글과 사제 폭탄을 만드는 화학약품 사진 등을 게시했다. 오씨가 올린 글은 일베 사이트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으며, 관련 글에는 수십개의 응원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왜 우리(신은미·황선)를 죽이겠다고 했어요”라는 황씨의 질문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인터넷에 올리면서 조금 과장했어요. 죽일 생각은 없었고, 행사를 방해하고 싶었어요.”
면담 마지막 즈음 황선씨가 “아직도 내가 미워요?”라고 묻자, 그는 “다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다”는 황씨의 말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유치장에 있는 갇힌 몸이지만, 지금도 그는 일간베스트에서만큼은 의사, 열사 등으로 불리며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게 괴물은 다시 커가고 있다. 황씨는 면회장을 나오면서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사제 폭탄을 만들어 테러를 자행한 주범은 그 어린 학생이 아니고, 이런 생각을 조장한 어른들과 인터넷이에요. 그리고 이 어린 아이도 이들이 만든 피해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이런 생각을 전하러 왔어요. 그리고 조금이라고 저의 생각이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그 친구가 인생의 큰 오점을 안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10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씨가 진행하는 토크 콘서트에서 한 남성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품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제지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행사장이 연기로 뒤덮여 아수라장이 됐다.ⓒ방용승 페이스북
11일 오전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익산경찰서에서 여상봉 수사과장이 신은미 황선 토크콘서트 사제폭탄 사건에 대한 경찰 브리핑을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11일 오전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익산경찰서에서 열린 신은미 황선 토크콘서트 사제폭탄 사건에 대한 경찰 브리핑에서 증거물들이 공개되고 있다.ⓒ양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