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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소소한 sulls,
게시물ID : humorstory_3868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수없다,
추천 : 14
조회수 : 56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6/23 02:59:59
 
 
 
 
 
 
  이 시간에는 아마 조회수도 낮고 볼 사람도 없을 테니 지금 써야겠어요,
  하도 술 마시고 벌인 일들만 써서 술 마시고 깽판 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까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써봐요,
  원래 글 쓰던 형식으로 쓸 테니 널리 헤아려주시기를 부탁드려요,
 
 
 
 
  1.
  어느 가을 날이었다,
  회사가 충무로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사이에 있었는데 그날 미팅은 동대문 쪽이 빨라 그쪽으로 길을 잡고 걸었다,
  패스를 찍고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웬만한 아이들보다 작게, 구겨진 전단지처럼 쪼그리고 있는 작고 마른, 어지간해서는 움직임도 힘들어 보이시는 할머니셨다,
  앞에는 찹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평소에도 오지라퍼 소리를 달고 살았기에 그때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할머니, 이거 얼마에요?"
  "오천 원이에요."
  "이거 팔면 할머니 집에 가실 수 있으세요?"
  "응, 이거 팔면 집에 가서 밥 해먹을 수 있어."
 
  꾀죄죄한 옷과 바싹 마른 낙엽보다 쉽게 바스러지실 듯한 몸, 저분의 자제들은 과연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혹시 그들도 할머니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왠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할머니 점심은 드셨어요?"
 
  가을 초입이라 내게는 아직 더웠지만 할머니께서는 한기가 들 그런 시기였다,
  마침 그날 간식으로 나온 조그마한 떡바구니 2개와 귤 몇 개가 가방 안에 있었다,
 
  "아니, 아직 못 먹었어. 집에 가서 먹어야지."
 
  뭐라도 사드시지 그랬냐는 말도 차마 할 수 없었다, 1천 원이 할머니의 하루 생활비일 수도 있을 테니,
 
  "할머니, 그럼 이것 좀 드실래요? 이거 저는 아까 먹고 남은 것 챙겨가는 길이었거든요."
  "맛있게 생겼는데 이런 거 그냥 먹어도 돼?"
  "그럼요, 아, 혹시 귤도 좋아하세요? 지금 좀 멀리 가야 하는데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그러는데 제 짐 좀 덜어주세요. 헤헤."
 
  그 자리에서 할머니께서는 배가 고프신지 떡부터 드시려 하셨다,
  빈 속에, 그것도 찬 곳에 계시다 떡을 드시면 체하실지도 몰라 잠시 드시지 말고 기다리시라 한 후 따뜻한 음료를 사와서 먼저 한 모금 드신 뒤에 천천히 드시라 했다, 귤은 산성이라 빈 속을 더 쓰리게 할 듯해 귤은 나중에 드시라 하고,
 
  그날따라 지하철이 늦게 들어왔다, 찹쌀이 한 홉 정도밖에 안 됐지만 왜 그리 가방이 무거웠는지 모르겠다,
 
 
 
 
 
  2.
  회식이 끝난 뒤 11시에 부천에서 베프 쉥키를 만나기 위해 신도림에서 전철을 갈아타려던 길이었다,
  평소 남 일에 별 신경 안 쓰는 편이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그날도 헤드폰을 끼고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을 때였다,
  키는 나보다 작고, 몸집도 나보다 작은 아저씨가 폐지를 싣고 지하철 문이 열리자 나서려 할 때,
  아저씨 먼저 나가신 뒤 나가자며 뒤에 서 있었는데 팔이 아프신지 한 팔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한참을 낑낑거리시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욕하는 소리만 들렸다,
  환승하거나 내릴 때에는 볼륨을 줄인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누가 봐도 분명 몸이 약한 사람이고 고생하는 사람임을 모를 리 없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화가 났다,
  
  "아저씨, 저 앞으로 나가 보세요."
  하면서 아저씨 등을 톡톡 치면서 말씀드렸다,
 
  아저씨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셨고, 나는 웃어보였다,
  갸우뚱하면서도 아저씨는 승강장으로 나갔고, 나는 짐수레를 들고 승강장으로 옮겼다, 옮긴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하는데 자꾸 폐지들이 걸려 올라설 수가 없어서 실강이를 하다 내가 넘어지면서 에스컬레이터 틈에 무릎이 끼이면서 피가 났다,
 
  창피해서 얼른 다시 일어나 제대로 에스컬레이터에 짐수레를 태우고 올라온 뒤 계단을 봤다,
  내가 이 짐수레를 견디고 저 계단까지 오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높고 긴 계단,
  짐수레의 무게를 생각한 뒤 되도록 빨리 올라가기로 결정한 뒤 심호흡을 하고 올라서기 시작했다,
  열 몇 계단 안 되게 올라섰을 때, 어떤 청년이 자기 달라면서 들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타인의 불행이나 힘든 일에 대해 기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저씨와 내가 계단 밖으로 나오자 그 청년이 내게 말했다,
 
  "저기, 다리에서 피 나요. 양말도 젖었어요."
  "괜찮아요. 심한 것도 아닌데 금방 멈추겠죠. 고마워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 청년과 인사를 나눈 뒤 아저씨를 돌아봤다,
  아저씨는 고맙다며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이셨다,
  정작 고마워해 할 사람은 내가 아닌 조금 전의 그 청년인데,
 
  아저씨는 혼자 살고 있고 독감에 걸려 며칠 동안 일도 못하고 돈이 없어 약은 커녕 밥도 못 드셨다고 했다,
  그날도 아팠는데 그날도 굶는다면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아 이를 악물고 나왔다 하셨다, 물론 밥 한끼 못 드신 채,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 따뜻한 소고기 국밥이라도 드시고 약도 사 드시되 절대 술은 드시지 말라 했다,
  만약 술을 드신다면 다시는 이런 사람들 못 만나게 될 거라 엄포를 놓으며,
 
  다시 한번 행복은 비교우위급이 아니지만 나는 얼마나 편하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착잡한 마음으로 돌아보던 날이었다,
  물론 베프 쉥키에게 또 똘짓했다고 겁나 욕 먹고 베프가 사온 약으로 응급처치를 받기는 했지만,
 
 
 
 
 
  3.
  홍대에서 집으로 가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한 할아버지께서 퉁퉁부은 몸과 얼굴로 적선을 해주기를 바라며 내 쪽으로 다가오고 계셨다,
  한쪽 다리는 절고 계셨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다시피 걷고 계셨다,
 
  고민했다, 도움을 드릴지 말지에 대해,
 
  언젠가 껌을 파는 할머니께 껌을 사며 돈을 드릴 때였다,
  손이 나보다 고왔고, 껌을 안 사는 사람들에게는 뒤돌아서서 욕을 하는 모습을 본 뒤로 결심했다,
  앞으로는 그런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과 '딜'을 하기로,
 
  손이 곱거나 예의가 없거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절대 도움주지 않기로,
  허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내게 도움이 되니 그들을 돕기로,
 
  그 할아버지께서 드디어 내 앞에 오셔서 허리를 숙이시며 손을 내미셨다,
  손과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굳은 살 잔뜩 베이고 한겨울이었는데도 슬리퍼를 신은 그 발과 양말이 너무나 시려워 눈물이 날 뻔했다,
  지갑에서 5천 원을 꺼내 드렸다,
 
  나는 항상 1-2에서 탄다, 하행이든 상행이든, 사람이 많아 자리에 앉지 못하면 끝에 가서 벽에 기대 앉아 책을 읽으면 되니까,
  끝까지 가셨던 할아버지께서는 다시 내 앞을 지나가실 때,
  걸음을 멈추고 땅이 꺼져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시며 허리를 숙이셨다,
 
  그 돈이 그 분께는 얼마나 큰 가치이길래 손녀 뻘되는 사람에게 그토록 허리 숙여 인사를 하셔야 했을까,
  쫓아가서 1만 원을 더 드릴까 하는 생각과 마지막 남은 자존감까지 허무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교차되는 순간, 지하철이 들어왔고,  낮고 무겁게 누르는 거대한 공기에 저항하지 못한 채 힘없이 지하철을 탔다,
  그날 따라 사람도 없어 황량하기 그지 없는 지하철 안에서 썬글래시스를 끼고 있는 게 다행이라 낮게 읊조리며 세상이 궁금한 눈물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울 자격도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은 금방 거둬버렸다,
 
  세상은 왜 이토록 잔인할까,
  겸손하고 착해서 힘들게 사는 것일까,
  아니면 힘들게 살아서 겸손하고 착하게 되는 것일까,
  우르보로스도 아니고, 뫼비우스의 띠도 아닌 삶이, 다양한 삶들이 문득 서글프게 빛나던 겨울달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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