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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후광으로 고위직에 올라 말아먹은 예
게시물ID : sisa_5656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추태산발호미
추천 : 2
조회수 : 7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16 11:24:38
츨처 : 엔하위키 

원균의 무과급제는 아버지 원준량의 입김이 작용한 부정시험의 의혹이 있다.

김탁환의 소설 불멸이나 불멸을 원작으로 한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북방에서 여진족 토벌에 활약했다고 설정되어 있지만 실록에 그가 어떠한 군공을 세운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그의 승진속도는 꽤 빨랐으며 과거 급제한 뒤(1579년) 12년 만에 경상우수사에 오른 것을 볼 때 군공을 세웠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원균 옹호론자들이 조산만호 때 변방 오랑캐를 무찌른 공으로 부령부사로 특진했다고 말하는데 승진기록만을 볼 때 조산만호에서 부령부사로 특진한 것만큼은 기록에 나와있고 시전부락 전투에 당시 종성도호부사(약칭 종성부사·종3품)였던 원균이 '우위, 1계원장(一繼援將)'으로 참전하기는 했다고 나온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전라 좌수사 원균(元均)은 전에 수령으로 있을 적에 고적(考積)이 거하(居下)였는데 겨우 반 년이 지난 오늘 좌수사에 초수(超授)하시니 출척 권징(黜陟勸懲)의 뜻이 없으므로 물정이 마땅치 않게 여깁니다. 체차를 명하시고 나이 젊고 무략(武略)이 있는 사람을 각별히 선택하여 보내소서.” 
ㅡ 《조선왕조실록》 선조 25권, 2월 4일(신미) 1번째기사링크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그런 자리에 앉기엔 성과가 형편없다"라는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592년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어아니 능력없는 양반에게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라니!

부임한 지 3개월 뒤에 그의 인생을 바꾼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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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고위층이니 아들도 고위층
승진은 여타의 군관들보다 빠른 건 당연
그리고 결국 정점에 올라 말아먹기 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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