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친절한 제령 사무소 12
게시물ID : panic_511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스키튼
추천 : 30
조회수 : 1429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06/24 12:53:56
초조함이 들어 나도 모르게 다시 손톱을 깨물기 시작했다. 탁탁 바닥을 치는 소리에 놀라 내려보니 다리까지 떨고 있었다. 나의 기획으로 세운 테마 파크는 개장 예정일이 보름이나 지났지만..
 
내 발 밑엔 현재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회사 증권과 해고 예정 통보서가 있었다. 앞으로 일주일 안에 문제를 해결하고 개장하지 않으면 해고조치 하겠다는 내용의 통보서였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그냥 ‘해고’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나중에 ‘우린 책임자에게 만회 할 기회를 주었습니다’라는 말로 이미지 손실을 조금이라도 더 막아보려는 회사의 발버둥이 안쓰럽다.
 
처음의 기획의도는 좋았다.
회사 자체에서 나의 기획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회사용 부지까지 내주며 내 기획을 추진시켜주었고 현재 펄프사업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아가던 우리 회사는 이번 기획을 기점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 했었다.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 사방에 산을 병풍처럼 두른 채 자연을 벗삼은 테마 파크! 그리고 인공 해변과 최고급 펜션까지… 상상만해도 황홀한 광경이 아닌가! 말 그대로 휴양지로서 하나도 손색이 없을 구상이었다. 그리고 공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창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던 공사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마지막 점검으로 인공 해변의 파도 강도 테스트를 하던 중이었다. 해변을 관리하던 직원이 순식간에 물살에 휩쓸려 물 속 정화기 프로펠러에 끼인 채 너덜너덜하게 죽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주변엔 핏물로 넘쳐 거의 사흘을 꼬박 수질 정화하느라 정신 없던 기억이 난다.
 
왜, 왜, 왜! 그 파도는 모래사장을 덮을 만큼의 큰 파도도 아니었고, 또 그 인부도 쉽게 물살에 끌려 들어갈 만한 체격의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게다가.. 정화기 프로펠러에 어떻게 끼일 수 있어! 그 곳은 충분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는데!
 
회사는 그 인부의 가족에게 적당히 돈을 주고 사건을 덮은 채 개장을 하려 했지만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하루 이틀 간격으로 인부들이 죽어나갔고 경쟁업체에서는 이를 기회 삼아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다. 그로 인해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우리 회사는 모든걸 내 책임으로 떠맡긴 채 최대한 빨리 일을 수습하려 했다.

“아얏!”
생각이 절정에 치달으면서 손톱을 과하게 깨물어 피가 났다. 입으로 막았더니 입 안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보서가 온 날부터 기술자와 같이 다시 파크 안의 모든 시설을 점검했지만 역시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따르릉-
 
한창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네, 파크 관리부입니다.”
“형, 저에요.”
후배 녀석 전화였다. 같은 대학 같은 동아리의 후배인 이 녀석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넉살로 늘 나를 웃게 만들던 녀석이었다.
“그래, 오랜만이네.”
“저 신문 봤어요. 이름은 이니셜로 나왔지만 파크 책임자가 형 맞는 거죠?”
방금 뜯었던 손톱에 다시 통증이 오는 기분이다.
“어, 그래.”
“저기, 아니, 물론 형이 이런걸 안 믿는다는 건 알지만, 혹시나 해서..”
나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후배녀석이 불러주는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02-7XX-5XX2’
전문 제령사라는 남자의 연락처였다.
제령사? 하하.. 이 파크가 귀신이라도 들렸단 말이야? 하하하..
난 그 전화번호를 앞에 두고 다시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후배 말대로, 나는 이런걸 믿지 않는다. 유령이라는 둥.. 원혼, 귀신.. 믿지 않지만.. 믿진 않지만..
그냥 무의식 중에 번호를 돌렸다.
 
뚜르르---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말을 신호가 가는 내내 나는 속으로 주문처럼 외웠다.
 
-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아하하..”  
역시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는 다시 손톱을 뜯는 일에 열중했다.
‘그러고 보니 무슨 사무소가 또 있다고 했는데.. 아앗!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나는 한 손으로는 계속 손톱을 뜯으며 다른 손으로는 전화번호부를 넘겼다.
‘이건.. 내가 이런걸 믿기 때문에 아냐.. 그래.. 그냥 못해도 본전이니까..’
 
*
 
이게 무슨 놀러 가는 건 줄 아는 건지. 차 안에 벌써 다섯- 나, 호우, 은수, 은호, 천시 - 이 비좁게 앉아서 가고 있었다.
“안나야, 너도 먹을래?”
“아잇, 운전 방해 돼. 손 치워!”
사람 셋만 있어도 시끄러울 마당에 무거운 낡은 티브이에다 꼭 한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우기는 백호의 영, 그리고 트렁크에 잔뜩 실은 물건들이 자꾸 신경을 거슬렸다.
“호우 너는 대충 옆에서 뛰면서 따라와도 됐잖아!”
- ..역시 산은 나무가 많아야 청명해 보이는 법이다.
내 말 따윈 못들은 척 딴소리를 하는 뚱뚱한 고양이새끼가 얄미웠다.
“으아아악! 왜 다들 면허가 없는 거야! 엉?”
 
굽이굽이 길을 따라 가니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진 곳에 그 파크가 있었다.
“은호 너는 트렁크에서 물건 좀 내려줘. 호우, 잠깐만 여기 좀 봐.”
 
“네가 보기에 어때? 내가 보기엔 위치문제인가 싶은데.”
- 내가 봐도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들은 바보 같은 짓을 잘 하니까.
“지세가.. 정말 신기하네. 일부러 이런 곳을 찾으라고 해도 힘들겠어. 산 자체는 각각 사방신을 모셔 좋은 기운을 지녔는데.. 어떻게 이 곳과 맞닿은 곳이 다 산의 뒷면이지? 용호가 뒤를 바라보고 있어 배반격인데..”
- 하지만 내 기운은 지금 굉장히 많이 치솟고 있다.
호우와 내가 파크 입구 주변을 보고 있는데 바닥의 얕은 흙을 뚫고 무언가 기어 올라 나왔다. 뭔가 일그러진 얼굴 형상을 하고.. 잠깐, 저 얼굴은?
“마, 망량?!”
깜짝 놀라 내려보는데 약간 솟구쳤던 흙이 다시 사그라져 버렸다.
- 산도깨비군.
“아아, 정말이지.. 미치겠군.”
이 일의 원인이 도깨비라면 곤란해진다. 장난을 좋아하는 녀석이자 힘은 다른 놈들 갑절은 세고, 또 오래 묵은 놈들이 많고 원래 형태 자체가 영의 응고된 형상이기 때문에 제령도 되지 않는...
“빌어먹을, 이 파크는 왜 여기다 세운 거야?! 아주 도깨비를 모으는 사당을 만들지 그러셔?!”
-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도깨비는 장난은 치되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으.. 모르지. 뭐든 돌연변이는 있으니까.”
좀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냥 무시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큰 돈이 걸린 일이니 놓치긴 아까웠다.
“누나, 이거 다 꺼내요?”
“어. 하나도 남김없이.”
이 일을 오래하다 보니 생긴 감인지는 몰라도 나는 오늘따라 은수의 가게에 있는 영물이란 영물은 다 쓸어왔다. 짐을 꺼내 나눠 드니 커다란 등산용 가방 두 개에 꽉 차고도 조금 남았다.
하지만 문득 드는 의문은.. 과연 망량에게 부적이 먹힐까?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곳의 책임 관리자 이철현입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인상이 별로 좋지 않다. 나름의 관상 노하우로 말하건대 저 사람 머릿속엔 아마 온통 야심과 성공, 돈 밖에 없을 것이다. 각이 뚜렷한 가는 검은 테의 안경이 그 남자를 더더욱 현실주의자로 보이게 만들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나와 대화를 길게 하기 싫은 건지 한마디를 하고는 내 앞에 개요서만 밀어놓은 채 팔짱을 끼고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저 태도는 나 같은 업종의 사람을 우습게 보는 태도였다. 돈도 돈이지만, 나는 이런 대우는 참을 수 없다.
“됐습니다. 안 봐도 알겠어요. 저는 이 일에서 손 뗄 테니 어디 혼자서 잘 해보세요.”
나는 기분이 상해 그 말만 하고 일어섰다.
“역시 그렇군요.”
돌아서려는 나에게 그 남자가 비꼬는 말을 던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러는 거 아닙니까? 당신네들은 적당히 굿이나 해주고 사람들 마음이나 홀려서 돈을 벌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큰 사건이 터지니 능력부족이지요.”
순간 혈압이 치솟아 머리가 뜨겁고 뒷목이 뻐근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 군요.”
“뭐, 이게 정상인의 사고 방식 아니겠습니까? 참, 나가는 문을 안내해 드릴까요?”
옆에선 잔뜩 독이 오른 호우가 털을 낱낱이 세우고 그 놈을 보았지만 그 놈은 느끼지 못했다.
“은호야, 영방.”
“네, 누나.”
나는 영방을 받아 천시가 가르쳐준 방법을 다시 되새기며 기를 모아 휘둘렀다.
 
(명심하세요 아가씨. 영방은 아가씨의 기를 소모해서 다루는 무기가 아니라, 아가씨의 기로 모은 영들을 소모해서 다루는 무기입니다. 아마 그 동안 영방을 다루지 못한 이유는 아가씨가 스스로의 기를 자꾸 불어넣으려 해서 조화가 깨졌기 때문일 겁니다. 절대로, 본인의 기를 넣지 말고 자신의 기로 모은 영들을 다루세요. 그리고 그들을 조종하시면 됩니다.)
 
나는 그 느낌을 생각하며 영방을 휘둘렀다. 서서히 주변에 떠돌던 영들이 영방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곧 영방의 키는 내 키를 넘어설 만큼 커졌다. 영방이 만족할 만큼 길어지자, 그 끝에 화광(火光)부적을 말아 붙여 남자의 얼굴에 가져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나는 그냥 말없이 갖다 댄 영방에 힘을 주었다.
“아악!!”
남자는 뜨거움에 놀라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그리곤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상처가 없어서 이상하지요?”
남자는 내 말에 당황하며 기분이 상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죠. 저는 당신의 몸을 건드린 게 아니라 이 안에 있는 혼을 건드렸으니까요.”
나는 남자의 이마를 톡톡 치며 말했다.
“두 배. 처음 약속하신 금액의 두 배를 주신다면 제가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두, 두 배? 원 금액도 충분한 액수 일 텐데요.”
“의뢰인께서는 저희 업계를 잘 모르시나 보네요. 저는 지안나랍니다. 지금 금액의 세 배를 받아도 아깝지 않은 탑 클래스의 인물이죠.”
- 안나, 정말 네가 그런 인물이었나?
‘쉿! 그냥 가만히 보고나 있어.’
“아, 만일 거절하신다면.. 저는 이 곳뿐만 아니라 댁에 지금 있는 것들 보다 더한 잡귀들을 풀어놓을 용의도 있습니다.”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럼, 일이 끝나는 날까지 협조 부탁 드립니다.”
 
*
 
“또또 성질부리는 거봐라.”
“시끄러. 너라면 화 안 나냐. 실컷 사람을 불러놓고 대놓고 무시를 하다니.”
“아무튼.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다 귀신의 존재를 믿을 순 없잖아.”
“후후. 그래도 두 배다 두 배!”
“너 사람 말은 듣고 있는 거야?”
“호우! 은호! 어서 가자!”
꼴 보기 싫은 녀석을 혼내주고 돈까지 두 배라니. 정말 신나는 기분이다.
 
하지만 신나는 기분도 잠시였다. 그냥 둘러보기엔 파크는 너무 넓었고, 망량의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경치 좋으라고 일부러 네 개의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그 안에 파크를 만든 것 까진 좋은데..”
- 네 군데 산에서 이 곳으로 계속 영기가 흘러 들어오고 있다.
“응. 근데 문제는..”
- 아무튼 결론은, 이 곳은 확실히 자리가 안 좋다.
“아아.. 더우니까 돌아다니기도 힘들다. 이것 봐.. 붕대도 다 젖었어.”
출발하기 전 은수가 내 팔의 붕대를 갈아주며 오른팔까지 붕대를 감아버렸다. 한쪽만 감고 있으니 놈들이 그 쪽만 일부러 공격하니까 둘 다 감자는 거였는데, 생각은 좋았지만 지금은 더워서 다 풀어 헤쳐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 사람이 죽은 곳이 인공 해변이라고 했지? 우리 거기부터 가자.”
주변을 살피며 가는 나와 호우와는 달리 뒤에선 은호와 은수가, 천시 셋이서 히히덕 거리며 오고 있었다. 확실히 이 곳에 영기가 넘치긴 하나보다. 천시가 저렇게 빨리 걷다니.
“아.. 저 생전 도움이 안 되는 웬수들 같으니라고..”

인공해변의 규모는 상당했다. 눈으로 어림잡아도 오 천명 가량은 너끈히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각 장소 별로 이름이 있었고 또 비가 와도 즐길 수 있도록 천장은 투명한 돔으로 되어 있었다.
“안나야, 이리와.”
은수가 돗자리를 펴며 나를 불렀다. 분명 내 물품 가방 두 개 중 하나는 놀러 오기 위한 물건들로 꽉 차 있을 것이다.
“지금 망량이 돌아다니는데 너는 정말 한가하구나.”
“어? 그게 망량이었어?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는 안나를 믿으니까.”
은수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결국 모두 돗자리 위에 앉아 도시락을 열고 먹었다. 언제 망량이 나타날지 몰라 신경이 쓰여 좀 체한 기분도 들었지만 꽤 맛있게 먹었고 음료수까지 마시며 나도 모르게 휴가 기분을 내기 시작했다.
 
사아.. 사아..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디선가 미풍이 불었다.
“아.. 역시 여름엔 실바람이 구세주라… 응? 실바람?”
여긴 완벽한 실내인데?... 문득 이상한 기분에 주변을 보니 모래가 들썩거리며 뭔가가 기어오고 있었다. 눈을 찡그리며 뭐가 오는 건지 보려고 노력했는데 거리가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여하튼 결계는 쳐 놓아야 할 것 같은 예감에 영방을 휘둘러 키운 뒤 멸화(滅火)부적을 꺼내 말아 바닥에 동그란 원을 그렸다. 일행의 주변으로 그려진 원을 따라 불꽃이 일며 스파크가 튀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결과였다. 평소의 결계는 그냥 작은 불꽃이 이는 정도였는데.
 
잠시 결계를 그리는 사이에 그 것들은 벌써 다가와 있었다. 거뭇거뭇한 물체들이었는데 내가 만든 결계에 닿자마자 작은 괴성을 지르며 타 들어가버렸다.
- 저건 그냥 흙덩어리야. 운 좋게 영기가 흘러 넘치는 곳에 있게 되서 혼이 깃들었을 뿐이지.
계속 타 들어가던 ‘흙 덩어리’가 조금씩 결계의 불을 끄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빨리 망량을 찾는 게 좋겠어.
나는 영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다시 한번 결계를 그었다. 이번엔 불꽃이 정강이 높이까지 치솟아 타올랐다.
“은수야, 나 다녀올 때까지 은호 손 발에 부적 좀 감아줘.”
“알았어.”
 
*
 
“이러면 나도 싸울 수 있는 거야?”
“있기야 하겠지마는.. 너 괜찮은 거야? 저번에도 거의 초주검이 돼서 왔잖아.”
“세상에 처음부터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
은호는 팔 다리를 휘둘러 근육을 풀었다.
“누나! 같이 가요!”
은호는 사라져가는 안나의 모습을 재빨리 뒤쫓았다.
“불안해.. 쟤 하는 짓이 꼭 초창기 안나처럼 보인단 말야.”
 
*
 
투명하고 푸른 물과 어우러진 하얀 모래가 눈부시게 빛났다. 모래 뒤편엔 허리 높이로 만든 조경수가 조화를 이뤄 말 그대로 파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배치였다. 모래 위에 촘촘히 덮인 거무스름한 흙들은 내 발에 닿자마자 영기에 눌려 터져 다시 모래 속으로 사라져갔다.
“망량이 왜 나타났을까.”
- ..........
 
퍼억!!!
 
갑자기 무언가 둔탁한 것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나도 모르게 그만 무릎을 꿇고 넘어졌다.
그런 내 앞에 망량이 나타났다.
 
“이 녀석은 착한 놈이네.”
 
150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우람한 체구, 그에 어울리지 않는 일그러진 우스꽝스런 얼굴을 한 망량이 쓰러진 내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어느 손?”
- 안나, 망량이 지금 너에게 장난을 걸고 있다.
‘으으.. 머리 아파.. 무슨 장난?’
“자자, 맞춰봐. 어느 손?”
내 앞에 내민 거친 흙빛을 한 두 손이 있었다.
“오, 오른손?”
“아냐. 자, 생각을 더 해봐. 어느 손?”
“그럼, 왼손?”
“오오오! 아주 똑똑하네! 자, 이걸 너에게 줄게.”
 
망량이 펼친 손에는.. 오른손엔 사부(死符)가, 왼손엔 생부(生符)가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내 등에는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렀다.
 
“난 그럼 마저 청소를 해야 하니까.. 너는 이걸 갖고 돌아가. 그럼 무사히 돌아 갈 수 있지.”
그리고 망량은 다시 흙 속으로 사라졌다. 멀리서 은호가 뛰어왔다.
“누나! 괜찮은 거에요?”
“그래, 괜찮아. 너, 근데 은수를 혼자 두고 온 거야?”
“아아, 천시도 같이 있어요.”
“이 바보! 둘이 무슨 힘이 있다고 두고 와!”
 
셋이 황급히 돌아가 보니, 은수는 어떤 검은 형체와 같이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손?”
“네?”
“맞춰봐. 어느 손?”
“외, 왼손?”
“흐흐흐…”
 
망량이 펼친 손에는 사부가 들려 있었다.
 
“어쩔 수 없네. 네가 졌으니 네 목숨을 가져가야겠어.”
“뭐?!”
“지긴 뭘 져!”
 
터엉!!
 
나는 잔뜩 키운 영방으로 망량의 오른 어깨를 내리쳤다.
망량의 팔은 힘없이 떨어져 흩어졌고, 그 손아귀에선 사부가 보였다.
 
“두 장 다 사부였어?”
“이 쓰레기가 감히 망량을 사칭해?”
 
다시 한번 영기를 끌어 모아 영방을 휘둘러 허리를 후려쳤다. 그러자 퍽 소리와 함께 그 형체는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돌아보니 아까의 망량이 서 있었다.
 
“너는 착한 놈이잖아. 착한 놈은 누굴 해치는 게 아냐. 그리고 청소는 내 일이야.”
“나는 착한 놈 아냐.”
“아냐. 내 직감은 정확해. 너는 착한 놈이야. 그러니 이런 일 하지 말고 돌아가. 그러라고 내가 일부러 생부까지 줬잖아.”
- 그러는 너는 왜 남을 죽이고 다니지?
“누가? 내가?”
- 그래.
“나는 누굴 죽인 적 없어. 다만 청소할 뿐이다.”
“무슨 권한으로 이걸 청소라고 하는 거야?”
“누구든 자신의 집에 쓰레기가 들어오면 청소 하는 법이야. 그래서 나는 청소하는 거야.”
- 여기가 네 집이냐?
“..........”
호우의 질문에 망량은 아무 대답 없이 사라졌다.
 
“망량의 말은 인간이 쓰레기라는 거야?”
- 아니. 아마 아닐 거다.
“그럼 도대체 뭐가..”
- 그걸 지금부터 우리가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천시, 아까 봤던 그 형체의 영기를 기억해?”
(뚜렷하진 않지만 거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건 어디서 온 거지?”
(글쎄요. 제 감으로 보건 데 이 해변의 가장 밑층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밑에 또 층이 있어?”
(그것까진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 아래에 있는 건 확실합니다.)
- 우선 내려가 보자.
“안나, 나는?”
망량에게 당하고 잔뜩 겁먹어 있을 줄 알았던 은수가 예상외로 담담하게 물었다.
“은호랑 천시 데리고 차에 가 있어.”
나는 가방을 열어 무전기를 꺼냈다.
“자, 이거 가지고 가 있어. 필요하면 연락할게.”
“그래 알았어..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 늘 의지하기나 하고..”
“아냐, 네가 얼마나 나한테 큰 도움이 되는데. 그런 생각 말고 가서 있어. 분명히 네가 필요할 때가 올 거야.”
고개를 돌려 은호를 보니 같이 가지 못해 내심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혹시 모르니 넌 가 있어. 필요해지면 부를게.”
 
“또 둘이 남았네.”
- ..........
 
은수 일행을 보내고 호우와 난 해변 주변을 뒤지며 내려가는 통로를 찾았지만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계단은 고사하고 무슨 하수도 뚜껑 같은 것 조차도 없었다. 아마 미관을 고려해서 완전히 메운 듯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호우를 보는데, 호우는 잔잔한 인공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 물 속이다.
 
호우는 잔잔한 수면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곳에는 신경을 써서 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아주 옅은 영기가 있었다.
“이런.. 나 수영 못하는데..”
나는 겉 옷을 벗고 가방에서 가벼운 면티와 짧은 반바지로 갈아 입고 준비체조를 했다.
“후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정말.”
체조를 끝내고 등허리에 은색 방수 테이프로 영총과 영방, 그리고 부적 몇 장과 지퍼백에 싼 무전기를 붙였다. 약간 무거웠지만 어차피 수영을 할게 아니라 잠수를 할거니 오히려 잘됐는지도 모른다.
 
풍덩-
 
차가운 물살이 닿았다. 물의 감촉이 물컹하게 느껴졌다. 옆에 따라오는 호우는 제법 수영을 잘했다. 나는 거의 물 속에서 걷는 수준이었다.
 
- 저기다.
 
호우가 말한 부분은 그냥 인공 모래로 덮힌 부분이었다. 아직 물 높이는 내 턱에 차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잠수 했다.
 
부글..부글..
 
물안경도 없이 들여다 보느라 그런지 눈이 뻑뻑해서 뭐가 뭔지 아련한 영상으로만 보였다. 나는 손을 뻗어 호우가 말한 지점의 모래를 손으로 헤쳤다.
“푸하!!!”
나는 다시 올라가 숨을 마시고 또 들어왔다.
몇 번을 헤치니 얇은 아연 판처럼 보이는 판이 있었다. 손으로 밀어보니 다행히 쉽게 밀렸다. 그 밑에는 촘촘한 십자 모양으로 된 배수구가 있었다. 배수구 옆에는 돌려 끼우는 자물쇠가 있었다.
 
철컥-
 
쑤와아아아아아아----------
 
자물쇠를 열자 물이 강하게 그 안에 빨려 들어갔고 나도 덩달아 빨려 들어갔다.
‘으아앗’
강한 물살과 물거품에 앞 한 뼘도 내다 볼 수 없었다. 허우적 거리며 빠져 나가려 하는데 순간 호우가 외쳤다.
- 위험해!
서늘한 느낌이 내 정강이를 스쳐갔다. 호우는 내 몸을 자신의 몸으로 밀어 어떤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쿨럭쿨럭!”
물을 토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하수구 안이었다. 마구잡이로 쏟아지던 물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아마 관리 장치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 괜찮나?
“쿨럭, 어, 쿨럭쿨럭..”
- 저 위를 봐라.
 
한 오륙 미터 정도의 높이로 보이는 하수도는 아주 큰 통로로 아래로 뻗어 있었다. 밑에는 약간의 물이 고여 있어 벽에 부딪히며 찰방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 예상에 이 곳은 인공 바다의 물을 정화하기 위한 장치 같았다. 호우가 말한 곳을 보니 그 곳은 내가 있는 곳처럼 어떤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 같은 구멍인데 앞에는 날카로운 프로펠러가 달려 있었다.
“쿨럭, 다른 곳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쿨럭, 갈아버리는 건가 보지, 쿨럭!”
- 다리를 봐. 방금 네가 저기 걸려 들어갈 뻔 했다.
“응?”
그 말에 다리를 보니 아까 서늘하다고 느꼈던 정강이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으, 으아, 앗 따거! 쿨럭, 따거워!”
- 가능하면 재채기를 멈추도록 노력해라. 상처가 벌어진다.
“쿨럭쿨럭”
달리 지혈시킬 만한 것이 없어서 그냥 부적을 대충 붙였다. 물살에 쓸릴 때는 몰랐는데 가만히 있으니 갑자기 아파졌다.
“이 일을 그만두고 차라리 막노동을 하는 게 낫겠어. 이게 뭐야 여자 다리가.”
- 입찬 소리하지 말고 따라와. 노동의 가치도 모르는 주제에 말을 함부로 말하면 신이 노한다.
“맨날 잘난척. 알았습니다, 호우선생니임.”
 
내가 들어간 통로를 따라 가니 아래로 내려가는 철 사다리가 있었다.
내려가는데 뭔가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킬킬..”
“어서 나가!”
“킬킬킬...”
 
사다리 밑에는 반쯤 열린 철문이 있었는데, 그 곳은 파크의 쓰레기를 갈아 모아 놓는 장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망량과 다른 여럿의 무엇이 있었다.
 
“망량!”
 
망량이 나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졌다.
“너는 왜 여기까지 온 거야”
“잠깐, 그 말은 나중에!”
 
망량이 나를 보는 사이에 그 안에 있던 한 놈이 망량을 향해 달려 들었다. 나는 뒤에 붙여 놓은 영방을 꺼내 키워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큰 소리와 함께 그 놈이 비틀거렸다. 나는 그 놈의 얼굴을 보기 위해 형화 부적을 발화시켰다.
“현무?!”
- 현무?!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보는 대로다.”
“잠깐, 여기 있는 거, 사방신 맞지?”
“그래.”
“근데 왜 너랑 사방신이랑 싸우는 거야? 오히려 친하다면 친한 사이잖아!”
“이게 다 인간들 때문이야.”
 
-크와앙!!
 
호우가 몸을 날려 내 뒤로 기척 없이 다가오던 청룡의 목덜미를 물어 뜯었다.
- 인간들 때문이라니?
“너희도 봐서 알겠지만, 이 곳의 지형은 다 사방신 산의 뒷면이 바라보는 자리야.”
나는 눈이 벌개져 달려드는 주작의 부리 안에 영방을 찔러 넣어 돌렸다.
 
끼에엑!!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하지만 약간씩 산세가 비껴있게 되 있어서 그 음기는 그 틈으로 나가 밖의 양기와 만나 중화되고 있었어.”
 
주작이 다시 몸을 일으켜 나에게 달려 들어 어깨를 물어 뜯었다. 나는 아픔을 못 이겨 그만 이를 악 물어 힘을 모았다. 그러자 내 몸 안에 알 수 없는 기가 뭉쳐 밖으로 터져 나와 주작을 밀어냈다. 호우는 청룡, 현무와 싸우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이 쪽으로 달려 왔다.
 
망량 역시 온 힘을 모아 안 그래도 흙빛인 얼굴을 더욱 붉혀가며 백호와 싸우고 있었다.
“그, 근데, 이 인간들이 이 곳에 이 건물을 지으면서 풍수를 다 바꾸고 기를 막아놨어.”
백호와 싸우는 망량은 힘겨워 보였다.
“그래서 결국 사방신의 음기만이 모인 이 놈들이 나오게 된 거..”
 
푸커억!!
 
호우가 나를 도와주는 사이에 상대가 없던 청룡과 현무가 망량을 덮쳤다.
“안돼!”
나는 등허리에서 영총을 꺼내 쏘았다.
 
탕!
영총은 현무의 앞 다리에 맞았지만 현무 자체는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이런!”
나는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 했던 결계부적을 꺼내 망량의 주변에 결계를 쳤다.
“이게 뭐야! 나는 괜찮다!”
“아냐. 이제부턴 나한테 맡기고 너는 상처나 돌봐.”
“역시 넌 착한 놈이구나. ..이름이 뭐야?”
“지안나.”
 
“치직! 여기는 지안나. 들려?”
“치지이이이- 드-들려. 치직..”
“어서 가서 이철현씨를 치익-- 불러. 그리고 인공 칙- 해변의 쓰레기 하치장을 치치칙- 열어 달라고 해서 칙- 여기로 좀 와줘!”
“치익- 내가- 칙직- 가도 돼? 치이이익”
“응. 대신 치익- 물건들 다 칙- 가져와.”
“그래. 치이이익-“
 
내 앞을 막아서서 방어 해주던 호우는 곳곳에 상처를 입어 영체가 약간 흐려졌다.
“이 놈들이..”
나는 이미 키운 영방을 다시 키워 그 끝에 내가 가져온 멸화(滅化) 부적을 감았다.
그리고 휘두르자 작은 스파크가 튀며 허공을 가르며 위잉-하는 낮은 울음을 내었다.
“오늘 내가 너희를.. 아주 완전히 갈아 엎어 주마.”
 
넷은 잠시 주춤거리다 서로 눈빛을 주고 받더니 모두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내가 한 놈을 치면 다른 놈이 내 허리를 치고, 그 놈을 호우가 뜯으면 다른 놈이 호우의 머리를 내려치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런데 유독 현무가 아까보다 행동이 굼떠졌다. 영총을 맞았던 다리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주작이 달려들어 나를 할퀴려 했지만 나는 영방으로 막아 몸을 피해 현무 쪽으로 달려갔다.
‘호우, 나를 호위해줘.’
- 알았다 안나.
 
퍽!!
 
나는 내 인기척을 느낀 현무가 돌아보기도 전에 머리를 내리쳤다. 기생령이 안으로 파고 들어서 인지 설 익은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박살이 나 흩어졌다. 순간 현무의 몸뚱이는 무슨 일인지 파악이 안되었는지 혼자 몇 걸음을 더 가다 내가 다시 한번 내려치자 쓰려져 잠잠해졌다. 그리곤 곧 기생령들에게 다 먹혀 찌꺼기조차 남지 않았다.
 
“지안나, 뒤를 봐!”
결계 안에 있던 망량이 소리쳤다. 내가 뒤를 돌자, 호우가 쓰러져 있었다. 현무의 죽음에 화가 나 날뛰던 놈들에게 당한 것이다.
‘호우!’
- 안나..
 
나는 화가 나 눈 앞에 보이던 청룡의 음기덩어리를 내려쳤다. 화 덕분인지 순식간에 내 안에서 솟아난 영기가 영방을 따라 청룡의 안면을 강타해 얼굴 반쪽을 날려 버렸다.
 
“다음은 너냐?!”
 
나는 그 옆에 있던 주작의 목 밑 명치에 영방을 찔러 넣고 틀어버렸다. 그러자 주작이 날뛰고 백호가 달려들어 내 허리를 뜯었다.
“아아아악! 이 비겁한!”
 
그 모습을 본 망량이 결계를 뛰쳐나와 내 옷 목덜미를 잡고 끌어 결계 안으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내 허리를 물은 백호 때문에 상반신의 반 쪽만 결계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망량이 온 힘을 다해 내 허리를 물고 있는 백호의 머리를 내리쳤고, 순간 백호가 놀래 내 허리를 놓은 틈을 타 망량은 나를 결계 안에 다 밀어 넣었다.
 
“고마워. 나머진 내가 할게.”
“마..망, 쿨럭쿨럭!”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깊게 물렸는지 기침과 함께 피가 나왔다.
망량은 얼굴 반쪽을 잃고 우왕좌왕 하는 청룡에게 온 힘으로 달려 들어 나머지 얼굴을 뜯어내 자근자근 밟아 으깼다.
 
끼이이이- 덜컹!!
 
육중한 쇳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안나! 호우!”
순간 모든 시선이 그 남자와 은수, 은호, 천시에게로 향했다.
“호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안나! 너는 또!”
은수 옆에서 나와 호우의 모습을 번갈아 보던 은호는 화가 치밀었는지 밑도 끝도 없이 주작에게 달려 들었다.
 
퍼어억-!
 
은호는 주작의 공격에 날아가 반대쪽 벽에 처박혀 기절을 하고 말았다.
‘아.. 내가 저 녀석 때문에 정말..’
 
이철현이라는 남자는 이 안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다.
 
“은수야, 진통제 좀..”
“약주면, 약주면 또 먹고 싸우려고?”
“쿨럭쿨럭.. 우선 줘..”
나는 거의 강제로 뺏다시피 약을 빼앗아 입에 털어 넣고 씹었다. 바로 약효가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입 안의 피를 다 토하고 허리도 좀 여며놔서 아까보단 나았다.
“망량, 쿨럭, 혼자 싸우게 할 순 없어..쿨럭”
 
주작과 백호, 그 둘은 이제 필사적으로 망량을 공격하고 있었고 망량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켠에 호우는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많이 흐려지긴 했지만 아직 영체가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영방을 짚고 일어나 망량을 공격하는 백호의 뒷 정강이를 쳤다. 그 공격에 비틀 하던 백호가 그 틈에 전력으로 공격한 망량에게 한쪽 어깨를 뜯겼다. 주작은 백호가 당하는 모습을 보자 다시 나를 공격해 왔고 망량은 그 모습을 보고 주작의 등허리를 내려쳐 쓰러뜨려 버렸다.
 
탕!!
 
끼이이이이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주작이 쓰러졌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라는 생각으로 돌아보니 은수가 어깨를 후들후들 떨며 영총을 겨누고 있었다.
“아하하.. 총 쏘는거 어렵네..”
 
약해져 있던 주작은 기생령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먹혀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백호는 은수에게 달려 들어 손목을 물어 뜯어 쓰러뜨렸다.
 
크르르..
 
백호는 낮은 저음의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저 입, 저 입만 어떻게 되면..”
“입?”
“그래.. 입만 어떻게 되면 발톱쯤은 피해서 공격 할 수 있을 텐데..”
“그래. 알았어!”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망량은 몸을 날려 백호의 입에 뛰어 들었다.
 
“망량!”
 
백호의 입에 몸을 밀어 넣은 망량은 양 팔로 백호의 얼굴을 감싸며 손에 깍지를 껴 완전히 얼굴을 막아 버렸다.
“어..어서..”
나는 너무 놀라 정신이 잠시 멍했다가 망량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 그래!”
여전히 내 온 몸은 욱신거리며 피를 토해냈지만 정신은 약간씩 맑아져 가고 있었다.
“후우, 후우,”
나는 영방을 쥔 손에 다시 한번 힘을 주어 키운 후 영기를 끌어 모아 온 몸을 날려 백호의 목을 내리쳤다.
 
퍼어어억!
 
영방은 망량을 피해 백호의 목을 거의 다 뚫어 놓았다. 나는 다시 한번 내리쳤다.
 
퍼억!!
 
데굴데굴데굴-
 
아슬아슬하게 몸에 달려 있던 백호의 머리가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아.....”
 
나는 그 모습에 기운이 빠져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았다. 떨어져나간 머리에 달라붙어 있던 망량은 움직이지 않았다.
 
“망량, 망량,”
대답이 없었다.
“호우, 호우?”
호우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 정신이 있는 건 나와 천시 그리고 이철현이라는 남자 뿐이었다.
나는 온 힘을 모아 그 남자에게 말했다.
“우리를.. 병원으로..”
 
풀썩-
 
*
 
몇 번인가 의식이 돌아오려 했지만 이내 다시 잠들어 버렸다.
“안나, 안나!”

은수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어떻게 됐어? 라고 묻고 싶었지만 눈이 떠지질 않았다.
 
한참 후에 눈을 떴다.
오랜만에 보는 병실의 하얀 천장이 반가웠다.
“호우는?”
“나아졌어.”
“은호는?”
“걔도 괜찮아.”
“너는?”
은수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양 손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거의 서른 바늘을 꿰맸어. 그래도 다행인 게 흉터는 크지 않을 거래.”
은수가 워낙 밝게 대답하는 바람에 나까지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그래, 다행이네.”
“호우, 이번에 힘들었을 거야.”
“.....”
“자기 동족과 싸우는 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야. 게다가 자신을 너무나 잘 아는 상대 넷과 싸운다는 거는..”
“으응..”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들과 마주쳤을 때, 호우의 심정이 어땠을까.
사람으로 치면 혈육과 칼을 겨누어야 했던 상황인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 망설임 없이...
“호우는 너를 참 많이 아껴.”
“.....”
“은호는 그냥 뇌진탕이래. 이미 일어나서 호우랑 천시랑 망량 데리고 올라 갔어.”
“망량? 망량도 살아있어?”
“그래. 다행이지? 너도 이제 가야지. 병원이야 그 쪽에서 다니면 되니까.”
“응.. 가자.. 나 잘 테니까, 네가 좀 알아서 싣고 올라가주라. 알았지?”
“그래, 좀 자도록 해.”
은수는 이불을 내 목까지 올려주고 병실을 나갔다.
 
꿈 속에서 나는 은수와 은호, 호우, 천시, 망량과 함께 거하게 상을 차려놓고 음식을 먹었다. 모두 한 냄비에서 음식을 덜어먹었는데 정말 맛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곧 이 꿈이 예지몽인 것을 알게 되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