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시사평론가]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면 공개 과정에서 현 집권세력의 치밀한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우선 국정원이 행동에 들어가기 몇시간 전, 박근혜 대통령은 “여·야가 제기한 국정원 관련 문제들에 대해 국민 앞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국정조사 수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보인다. 회의록을 전면 공개하기로 마음먹고 그 대신 국정조사 수용을 통해 역풍을 덮어버린다는 그림일 것이다. 그러면 NLL 정국 조성- 국정조사 수용을 통해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되찾는다는 구상인 것으로 판단된다. 야권으로서는 조만간에 새누리당이 국정조사 수용을 천명할 것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도 진작부터 회의록 공개를 작심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왔음을 읽을 수 있다. 위법 논란을 무릅쓰고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입맛대로 발췌한 내용을 단독 열람시켜 야당의 전면 공개 요구를 유도했다. 문재인 의원이 차라리 전면공개하자는 얘기를 꺼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야 공히 전문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습적으로 공개를 강행했다.
무엇을 노린 것이었을까. 청와대와 새누리당으로서는 당연히 수세의 상황을 반전시켜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노림수이다. 그리고 국정원으로서는 코너에 몰린 국정원 조직을 공격적인 대응으로 보호하고, 향후 남북대화에 제한선을 그어두려는 남재준 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야권의 허를 찌르며 일단 이슈를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야권의 대응에 비해 한수 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작적 냄새가 너무 강하게 풍겨났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시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아닌 공작으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깨닫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