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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 아저씨는, 이 쪽방에서 '낮은 곳'을 보듬었다
게시물ID : bestofbest_566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닉네임Ω
추천 : 328
조회수 : 39781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1/09/28 14:43:37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9/28 13:45:26
매달 70만원 벌며 기부… 세상을 떠난 후, 세상을 부끄럽게 하다…짜장면 배달원 김우수씨의 마지막 흔적 한달 70만원 벌이의 변두리 중국집 배달부. 창문도 없는 4.95㎡(약 1.5평)짜리 고시원 쪽방에 살면서 어려운 형편의 어린이들을 돕던 후원자. 7세 때 고아원에 버려져 지난 24일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이틀간 아무도 찾지 않은 병실에서 쓸쓸하게 숨진 사람. 김우수(54)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중국집 '동보성'은 김씨가 지난 5년간 주말마다 배달부로 일한 곳이다. 가게는 33㎡(약 10평) 크기에 불과하다. 주인 이금단(45)씨는 "김씨 아저씨는 출근 시각보다 한 시간 일찍 가게에 나와 영업 준비를 하던 사람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성실했던 김씨는 유품이 된 지갑 속에 5000원권 3장과 1000원권 45장을 남겼다. 다음 날 배달에 필요한 거스름돈으로 쓰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돈이었다. 김씨는 주말마다 오전 8시부터 13시간 배달일을 하고, 오후 9시 일당 9만원을 받아 마을버스를 타고 아무도 없는 고시원 쪽방으로 돌아갔다. ◆월세 25만원 고시원 쪽방 동보성에서 마을버스 열다섯 정거장 떨어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시원 구석 방. 김씨는 창문도 없는 좁은 방에서 4년 전부터 월세 25만원을 내고 살았다. 27일 주인을 잃은 방 한쪽에 놓인 책상 위에는 그가 후원해 온 아동 3명의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가 놓여 있었다. 책상 서랍에는 후원했거나 후원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받은 감사편지들이 보물처럼 놓여 있었다. "용돈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게임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매일 노는 것은 아니에요." "보내주신 14.25달러로 가족을 위한 옷과 농작물을 구입했습니다. 항상 후원자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에티오피아 후원아동)" "후원자님 언제나 저의 마음을 알아주셔서 감사드려요." 김씨는 158㎝, 55㎏의 작은 체격이었고, 웃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2~3벌뿐인 옷은 언제나 깨끗이 빨아서 입었다. 동보성 주인 이씨는 "2009년 연말에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들을 대통령이 초청한 적이 있어요. 다들 잘 차려입고 가라고 했지만, '평소 내 모습이 제일 떳떳하다'면서 배달 일할 때 입는 검은색 옷을 입고 갔어요. 꾸미지 않는 사람이었어요"라고 했다. 고시원 총무 박모(34)씨는 "월세도 한 번 밀린 적 없고, TV를 볼 때면 남에게 피해를 줄까 봐 볼륨을 최대한 줄여서 보던 사람"이라고 김씨를 기억했다. ◆하루 담배 두 갑 피우던 사람이… 김씨는 지난 2006년부터 매달 5만~10만원을 어린이재단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데 썼다. 하루에 담배 2갑을 피우고, 소주 2병을 마셨지만, 아이들 후원을 시작하면서 "술, 담배 살 돈이면 1명 더 도울 수 있다"며 모두 끊었다. 어린이재단 관계자는 "고인이 형편이 좋을 때는 국내·외 아동 5명을 후원하다가 최근에는 생활이 어려워져 1명으로 줄였지만, 한 번도 후원금이 밀린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나머지 돈으로는 매달 20만원씩 납입하는 연금보험과, 12만1000원을 붓는 종신보험을 들었다. 종신보험 4000만원은 어린이재단이 받도록 해놨다. 사후 장기 기증도 서약했다. 동료 배달원 황대식(31)씨는 "김씨 아저씨는 언제나 '내가 인생을 제대로 살게 된 건 후원아동 덕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전했다. 배달일을 하지 않는 평일에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신문 경제면을 보면서 전 재산인 300만원어치 주식이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하는 조조영화를 혼자서 보는 것이 낙이었다. 그는 거의 매일 영화를 봤다. 영화관을 나서면서는 2000원짜리 스포츠복권을 1장 사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집 동료들은 "'당첨금액이 큰 로또를 사지 그러느냐'고 말하면, '내 운이 거기까지는 닿지 않을 것 같다'며 웃곤 했다"고 말했다. 오후에는 자전거로 한강변을 달렸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자전거를 타고 의정부, 속초 등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집 근처 풍물시장에서 혼자 쇼핑하면서 1만~2만원짜리 운동화, 옷가지를 샀다. 동료 박산(37)씨는 "'좋은 물건 샀다'며 새 시계를 찬 팔목을 불쑥 내밀던 아이같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고아원에 버려졌던 인생인데 가족이 없는 김씨의 시신은 장례 절차를 밟지 못하고 27일까지도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 영안실에 있다. 김씨가 일했던 중국집 동보성 이금단 사장은 "평생 외롭게 산 사람인데 죽어서까지 가족 없는 설움을 받는다"면서 눈가를 훔쳤다. 어린이재단이 김씨의 장례를 치르기로 해 28일 빈소가 서울 대림동 서울복지병원에 마련된다. 그는 평생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단 하나의 단축 번호도 저장돼 있지 않았다. 단 한 통의 문자 메시지도 없었다. 부산이 고향인 김씨는 미혼모의 아이였고, 7세에 고아원에 맡겨졌다. 12세 때 고아원을 뛰쳐나온 탓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구걸, 양조장 허드렛일, 시장 지게꾼 등 어렵고 힘든 생활을 했다고 주변에서 말했다. 소년원도 몇 차례 다녀왔고, 지난 2005년에는 한 술집에서 "나를 무시하느냐"며 불을 지르려다 1년 6개월간 징역을 살았다. 자포자기했던 김씨는 감방 안에서 어린이재단이 발간한 잡지 '사과나무'를 읽고 인생을 새로 살기로 했다. 주위 사람들은 "잡지에서 불우한 환경에 처해있는 어린이들의 사연을 읽고 며칠을 울었다고 하더라"고 했다. 돕고 싶은 아이들이 생기자 제대로 살고 싶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제2의 인생, 그의 마지막 5년은 세상 누구보다 뜨거웠다. 쪽방 구석 사진 속의 그가 기자에게 물었다. "나는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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