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면 안 됩니다. 법적으로도 문제일 수 있고 도덕적으로도 나쁩니다. 하지만 공직자에 대한 비판은 경우가 좀 다릅니다. 세월호 사건 때 홍가혜씨 인터뷰는 '민관 합동구조'를 총괄하는 해경의 업무 방식을 비판한 것입니다. 홍씨를 형사처벌하는 게 옳은 것인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도덕적 비판을 할 것과 형사처벌을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2주 뒤 선고입니다. 홍씨와 관련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도 일부 확인됐습니다.
2014년 4월18일 아침 6시17분 종합편성채널(종편) <엠비엔>(MBN)이 진도 팽목항 현지에서 홍가혜(26)씨의 인터뷰 내용을 생방송으로 전했다. "해양경찰청에서 지원해준다고 했었던 장비며 인력이며 배며 지금 전혀 안 되고 있고요… 민간 잠수부들의 말들도 다 똑같습니다… 뭔가 사람 소리와 대화도 시도했고 갑판 하나 사이를 그 벽 하나를 두고 신호도 확인했고 대화도 했고 지금 증언들이 다 똑같습니다… 정부 관련된 사람들이 민간 잠수부들한테 한다는 소리가 시간만 대충 때우고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어 홍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스포츠·연예매체 <스포츠월드>의 김용호 기자는 "홍씨가 과거 티아라(걸그룹) 화영의 사촌 언니 행세를 했다. 10억대 사기 혐의로 경찰 조사도 받았다. 홍씨는 진도에서 또 거짓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누리꾼은 이 보도를 근거로 홍씨를 '허언증 관심병 환자'라고 비난했다. 홍씨는 인터뷰 이틀 뒤인 4월20일 경찰에 체포되어 구속됐다. 해양경찰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홍씨의 인터뷰는 해프닝처럼 잊혀졌고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홍씨가 했던 주장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무엇이 과장되었을까. 그는 적절한 수위의 처벌과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일까.
재판에 나온 민간 잠수사들의 증언
홍씨가 4월18일 한 인터뷰 내용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해경이 민간 잠수사들의 입수를 적극 돕지 않거나 막고 있다. 둘째, 민간 잠수사들이 배 안의 생존자와 교신을 했다. 셋째,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민관 합동구조가 잘되도록 정부가 조처해달라. 이 중 첫째와 둘째에 해당하는 내용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다. 재판정에서 나온 증언들을 살펴보면, 홍씨의 첫번째 주장은 대체로 근거가 있었다. 다만, 두번째 주장은 사실관계를 엄밀하게 검증하지 않고 방송으로 전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민간 잠수사들은 언론 보도와 달리 정부가 민간 잠수사들에게 비협조적이었음을 재판 과정에서 증언했다. 황아무개(61)씨는 7월2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 나왔다. 그는 한국수중환경협회 특수구조봉사단 회장으로서 4월16일부터 팽목항에서 민간 잠수부들의 구조대 지원을 총괄했다.
황씨는 재판정에서 "해양경찰이 민간 잠수부의 입수를 막지는 않았지만 지휘체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보니 다른 곳에 가서 물어보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대책위원회는 4월18일 '해경이 민간 잠수부의 투입을 막고 있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황씨는 "그러한 불만은 팽목항에 있던 사람은 누구나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해경의 명예 훼손했다는 이유로 목포교도소에 3개월여 갇혔다가 보석으로 석방돼 재판받는 홍씨 20일간 독방생활 고통스런 기억 진실 무엇이었고 처벌 적절했나
민간 잠수부 관련된 발언들은 당사자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 '생존자 교신'은 검증 빠진 발언 연예매체들의 무차별 비난 속에 거짓말쟁이 이미지는 확대재생산
홍씨의 '정부 관계자가 민간 잠수부에게 시간만 때우다 가라고 말했다'는 주장은 이러한 팽목항의 정서에 기반한 것이었다. 민간 구조대원 이아무개씨는 4월17일 밤 10시17분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민간은 (중략) 투입시켜달라 해도 상황본부에서 자기들도 잠수부 많으니 시간 때우다 가라는 함장. 민간에 구조 협조 요청한 건 가족들 보여주기식이겠지"라고 글을 썼다.
이씨는 17일 오후 사고 해역으로 직접 배를 몰고 간 민간 구조대원이었다. 민간 잠수부들이 당시 완도해경 278함 쪽과 나눈 교신 기록을 살펴보면, 민간 잠수부들이 278함 쪽에 지원을 요청하자 278함은 "(민간 잠수부들이 해경과) 합류는 불가하고 자체 수색하라"고 지시했다. 민간 잠수부들은 "현재 날씨도 매우 안 좋고, 기름도 떨어져 가고, 부식도 떨어져 가는데 우린 어찌하나요?"라고 다시 물었고, 278함은 "저희가 도와드릴 것도 없고 사고 현장 주변을 둘러보고 알아서 자체적으로 수색하십시오"라고 설명했다.
해경이 '시간만 때우다 돌아가라'는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으나, 민간 구조대원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정황이었다. 이씨는 이날 해경의 태도에 큰 실망감을 느꼈다. 홍씨의 인터뷰는 이씨의 이러한 경험을 전해 듣고 한 것이었다. 이후 언론들도 "민간업체 언딘이 수색을 독점해 민간 잠수사 투입이 제지됐다"는 의혹을 전했다.
홍씨의 인터뷰 중 또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민간 잠수부들이 세월호 안의 생존자와 대화를 했다'는 주장이다. 7월25일 재판정에 출석한 민간 잠수사 백아무개씨는 "(생존자와 대화 관련) 그런 이야기가 팽목항에 많이 떠돌았다. 말이 안 된다고 정리되었던 이야기였다. 홍가혜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족인 박아무개씨는 9월2일 재판정에 출석해 "(생존자와 대화 관련) 이야기를 4월17일 새벽 들었다. 저의 동서가 두번째로 나가는 배를 타고 갔다가 선내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며 돌아와서 이야기해주었다. (중략) 그래서 누가 어떻게 확인하였는지 물었더니 '잠수부가 내려가서 망치로 두드리니까 안에서 같이 두드리며 신호를 해주어서 살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하였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증언들이 홍씨에게 얼마나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다. 여러 정황상 민간 잠수사들에 관한 이야기 등 근거가 있었던 부분도 있지만 생존자와의 교신 같은 경우 정확한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팽목항에서 떠돌던 확인 안 되는 소문들을 언론에 폭로한 것이 옳았는지는 비판적 평가가 필요하다. 홍씨 쪽은 없는 이야기를 꾸며내어 폭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재판부에 강조하고 있다. '경솔한 행동에 대한 비판'과 '형사처벌'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홍씨 변호인 쪽의 입장이다.
'티아라 사촌언니' 사칭 발언의 진실
홍씨와 달리 경찰은 얼마나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홍씨를 구속한 것일까. 경찰의 수사 내용 역시 이곳저곳에서 수집한 소문과 전언에 불과했다.
청와대 모 사회안전비서관은 홍씨 인터뷰 직후 해경에 전화를 걸어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해경은 4월18일 저녁 9시께 김용호 기자와 통화해 김 기자로부터 '홍가혜는 티아라 화영의 사촌 언니를 사칭하고, 야구선수 ㅈ씨의 애인이라고 사칭했다'는 설명을 듣고 통화 내용을 수사자료에 첨부했다. 홍씨가 인터뷰 직후 남긴 것처럼 보이는 "(엠비엔 인터뷰로 유명해져서) 나 이러다 영화배우 되는 거 아닌가 몰라"라고 쓴 트위터 글도 첨부했다.
그러나 김용호 기자의 주장 중 "홍가혜가 티아라 화영의 사촌 언니라고 사칭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홍씨는 여러 차례 '화영의 사촌 언니가 아니다'라고 트위터로 밝혔지만(2013년 8월5일 등) 연예매체들이 홍씨를 티아라 화영의 사촌 언니라고 계속 보도했을 뿐이다.
김 기자가 근무하는 스포츠월드 연예팀은 4월23일 '홍가혜가 기자를 사칭해 아이돌그룹 B1A4 콘서트장에 들어가 이들과 사진을 찍었다'는 내용의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보도했다. 그러나 B1A4 소속사는 재판부에 '홍가혜씨는 연예부 기자를 사칭한 것이 아니라 B1A4 쪽 지인과 함께 와서 사진을 찍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제출했다. <한겨레>는 야구선수 ㅈ씨의 측근으로부터 "ㅈ씨가 홍가혜와 애인 사이였던 것은 맞다"는 증언을 들었다.
김 기자는 검찰이 홍씨를 기소하는 데 주요 참고인으로 8월12일 재판정에 출석했다. 김 기자는 자신의 주장은 "'야구계 후배'와 '티아라 소속사 홍보실'의 설명에 근거한 것으로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김 기자는 홍씨를 거짓말쟁이로 몬 주요 근거였던 '사기 혐의 경찰 조사'와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은 몰랐다"고 말했다. 홍씨 쪽은 '김 기자가 악의적으로 홍씨와 관련해 허위 주장을 해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영화배우 되는 거 아닌가 몰라' 글은 홍씨가 쓴 게 아니라 홍씨를 사칭한 누리꾼의 장난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4월18일 오전 해경은 자체 조사 끝에 홍씨의 말이 허위라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김재인 당시 해경 정책홍보계장은 같은 날 전남지방경찰청에 출석해 보도자료를 낸 경위를 설명하면서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런 사실(홍가혜 주장)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정도의 의견만을 밝혔다.
홍씨의 선고 공판은 다음달 9일 예정돼 있다. 홍씨의 발언이 비록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우리 형법 307조(명예훼손 처벌 조항)는 허위 사실을 적시하건, 사실을 적시하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애초부터 누군가를 비방할 목적으로 어떤 주장을 공개적으로 했다면 처벌할 수 있다.
홍씨가 어떤 판결을 받을지는 불투명하다. 홍씨가 인터뷰할 당시 자신이 한 주장을 사실로 믿었는지 여부와 애초부터 해경의 명예를 훼손할 마음이 있었던 것인지 여부를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홍씨의 변호를 맡은 양홍석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법무법인 이공)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부 정책이나 공무원의 업무와 관련한 지적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 일반 시민이 정부 정책을 비판할 때 설사 그 내용에 좀 문제가 있더라도 이것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한다면 정부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시민은 아무도 없게 된다. '잘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내 이름으로 사회생활 불가능할 정도'
<한겨레>는 지난 18일 홍씨를 만났다. 홍씨는 목포교도소에 3개월여 갇혀 있다가 7월31일 보석으로 석방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교도소 생활을 고통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20여일간 독방에 수감됐는데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는 독방 생활이 가장 힘들었다고 홍씨는 말했다.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을 꾸다가 새벽에 잠에서 깨어 소리를 지르거나 울었던 순간을 그는 "거대한 폭풍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이었다"고 기억했다.
홍씨는 '왜 소문을 충분히 검증한 뒤 인터뷰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장의 해경에게 여러 차례 확인을 했지만 아무도 확인해주려 하지 않았다. 해경을 믿을 수 없었다. 팽목항 현장에서는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방송에서 밝혀도 문제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해경의 명예를 훼손하려 한 것이 아니라 민간 잠수사 중 입수한 사람은 2~3명뿐인데 언론에 500명이 투입됐다고 나오는 등 사실과 다른 부분을 국민에게 알리고 민관 합동 구조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해경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있었다면 진도로 출발하기 전 '지금은 정부 비난보다 구조에 집중할 때'라고 에스엔에스에 글을 왜 썼겠나"라고 주장했다.
홍씨는 공식 잠수자격증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5년간 50번도 넘는 잠수 경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잠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 진도로 갔다. 민간 구조대원 모집 글에 특별히 잠수자격증 종류가 명시돼 있지 않았다. 내가 무식해서 용감했을 뿐이다. 또 설사 잠수를 안 하더라도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4월18일 인터뷰 직후 잠적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홍씨는 19일 저녁 7시23분 전남지방경찰청 지능팀 형사에게 '월요일(4월21일) 오후 4시 전에 출석하겠습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홍씨는 약속시각보다 이른 20일 경찰에 자진 출석했다. 홍씨는 "경찰이 왜 언론에 내가 잠적 상태라고 설명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씨는 사건 초기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는 "검찰 수사관이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교도소 계장에게 물어보니 '검찰이 선처해줄 생각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때는 변호사도 없어서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잘못했다는 반성문을 왜 써야 하는지 속상해 많이 울었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고등학생 때 자살을 기도한 이모가 늑장 출동한 구급대원들 탓에 숨졌다고 주장했다. 해경의 부실한 구조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아이들의 소식을 듣고 자신의 불행했던 기억이 떠올라 진도에서 무엇이든 돕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홍씨는 석방된 뒤 자신을 비난하는 보도들과 누리꾼의 댓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목을 매는 등 수차례 자살을 기도했다가 가족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그는 최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홍씨는 김용호 기자 등 자신에 대해 허위 사실을 주장한 언론과 누리꾼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홍가혜라는 이름으로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홍씨는 자신이 잘못한 것은 "현장에서 들었던 내용을 우회적으로 전하지 않고 가감 없이 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