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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친일이 아닙니다.
게시물ID : sisa_5691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우보이액슬
추천 : 14
조회수 : 859회
댓글수 : 42개
등록시간 : 2015/01/09 01:47:54
친일을 뛰어넘는 충일(忠日)입니다. 
그(새끼)는일본인이 되려했습니다.

다카키 마사오에서 일제에 충성을 보이고자 이름을 오카모토 미노루로 한번 더 바꿉니다.
(다카키 마사오는 자신의 이름을 본따 만든 이름이라 그런듯 합니다.高木正雄 이름에서 보이듯 자신의 이름앞에 고 자만 붙혔음을 알수있습니다.)
유신시스템도 다 일본에게서 배운짓거리 입니다.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권 선생 시사인 인터뷰 내용 발췌합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45

언제부터 박정희와 사이가 나빴던 건가? 
박정희에게 아버지는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미운 털이었다. 아버지는 학도병으로 일본군에서 탈출해 광복군 대위가 됐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일본 육사를 나왔다. 박정희는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한 후, 일본 육사교장에게 혈서를 보내면서 완전한 일본식 이름인 오카모토로 다시 이름을 바꾼다. 오카모토는 일본 낭인들을 데려와서 명성황후를 시해했던 일본 육군 중위 이름이다. 이건 친일 정도가 아니라 충일(忠日)이다. 유신도 일본 놈들에게 배운 거다. 그는 완전히 일본인이 되고 싶어했다. 


유신정권은 장준하 선생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가?
수신(修身)은 하셨는데 제가(齊家)는 안 하셨다. 가족보다는 나라를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한창 힘들 때는 (아버지가) 어디 계시는지 알면 안 되는 처지였다. 24시간 도청을 당했다. 권력의 충견들이 미친개처럼 아버지를 물고 늘어졌는데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오죽하면 3족을 멸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이사를 서른여섯 번 했다. 어떤 곳에서는 2개월 만에 쫓겨난 적도 있다. 기관원들이 전세를 준 주인에게 압력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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