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히기 싫어요. 내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말이 두서없을지도 몰라요.
나는 열여섯살이에요. 난 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것 같아요.
가정을 제외했던 인생의 첫 기억은 고등학생들에게 집단강간당하는 것이었고
가정을 포함한 인생의 첫 기억은 아버지의 불륜사실을 안 어머니의 울음소리였어요.
그 이후로 어린시절의 모든 기억은 매일을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던 기억들이에요.
어머니는 처음에는 나를 감싸주셨지만, 점점 지쳐가셨던걸로 기억해요.
강간당했던건 불과 네살때의 일이에요. 아무도 없을때 끌려가서 당하고 내쳐졌죠.
그리고 그들을 잡지 못했어요. 증거 불충분으로 인해서. 지금 그들이 잘 살고 있으면 그건 반칙이겠죠.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해. 햇빛이 반짝거리던 어느날 어머니의 첫 자살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어요.
자살시도의 첫 목격자였던 나는 이상하게도 침착하게 119에 신고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채 2년이 되지 않아서 알게된 이복형제들의 존재
어머니는 충격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셨을거에요.
그래서 제가 열두살경 어머니는 절 포기하셨죠.
아, 중간에 안쓴 내용이 있네요. 어머니는 스트레스로 인해 제가 일곱살경 유산하셨어요.
아마 자기 자신도 돌보기 힘드셨을거에요.
아버지는 양육권을 어머니에게로 넘겨받아 저는 새어머니와 아버지의 집에서 이복형제들과 살게 되었죠.
이복형제들은 나보다 일곱살이 더 많은 남자 일란성 쌍둥이였어요.
제 인생 참 영화같죠. 새어머니는 절 많이 보살펴주셨어요. 물론 오빠들도 날 많이 챙겨주고 신경써주셨죠.
한 6개월이 지났을까. 친모의 사망소식이 들려왔어요. 물론, 눈물은 났습니다만 그게 왜 났는지도 잘 몰랐죠.
그리고 이어진 생부의 정신적 압력. 이 집에서 내가 나가야만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으며 2년간 살다가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도화선은 터졌습니다.
쌍둥이 오빠 중 한명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과 함께 집단따돌림의 시작.
제 사정을 안 친구들이 따돌리기 시작했던거죠. 그 모든것이 동시에 겹치자
전 자살시도를 했어요. 더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뭘할까. 정말로 나는 태어나선 안됬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살았습니다. 새어머니가 살리셨더군요. 깨자마자 제 손을 잡고 우시는데, 그게 그렇게 이해가 안됐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6개월간 살았습니다. 그 6개월은, 정말로 모든것이 터져서 미쳐버렸던 한때니까요.
그리고 받은 병명은 위암 2기.
그리고 오늘. 나를 잘 챙겨주던 오빠의 2주기.
내 글이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슬퍼서 죽을것 같아요. 날 좀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