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서 흘려 들었던 내용이나 책에서 본 내용들을
부족하지만 조금이나마 옮겨볼까 합니다.
사실 꽤나 시사-정치적인 문제이지만
고게에서 사촌혼 얘기를 안좋게 하시는 분들이 많이 보여서
조금이라도 생각을 나눌까 싶어 적어봅니다.
근친상간과 사촌혼은 다릅니다.
근친 죽어라! 하면서 막연하게 반대하시는 분들 보면
'근친은 불법이기 때문에 무조건 안되는 거예요' 라는 말 밖에 안보이더군요.
하지만 사촌혼은 '절대적 금기'인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상간과는 조금 다릅니다.
저도 오이디푸스컴플렉스의 '절대적금기'의 사회적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사촌혼 금지'는 유교적 관습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요식적 체계에 불과합니다.
사실 혼인, 사촌혼 문제는
인류학, 사회학적으로도 꽤나 풍부하게 다루어지는 문제이고
인권, 여성문제, 동성애문제, 외국인에 대한 이해와도 깊게 연결되어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콜로세움하기 귀찮은 것도 있지만, 댓글로 설명하기엔 너무 힘든 주제여서 안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 명확한 지점을 밝히자면,
사촌혼이 그 자체만으로 인륜에 반하는 행동이고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사촌혼에 반대하는 논리 중 가장 강력한 것이 기형아출산 문제죠.
하지만 사촌혼 금지를 법적으로 허용한다고 해도 기형아출산이 실제로 증가한다고 보기 힘들고
동성동본 결혼금지가 폐지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민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 관습이 완고하고, 딱히 바꾼다고 해서 실익이 없기 때문에 개정하지 않는 것 뿐입니다.
사실상 기형아 문제 이외에는 사촌혼에 반대하는 실질적 논리를 찾기 힘듭니다.
국보법 철폐를 외치는 분들이,
'사촌혼은 한국에서 불법이니까 무조건 더러운 거임'이라는 논리를 펼치는 걸 보면 정말 아연실색할 일입니다.
사촌혼에 대한 반대를 하더라도 그에 맞는 물리적 원인, 사회안정성의 논리를 대야지, 불법인데요? 라니요.
더군다나 사촌상간은 불법이 아닙니다.
사촌간(8촌이내)의 혼인을 법적 혼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은 유교적 관념과 풍습이 오래 자리잡아 그런 건데,
그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증조, 고조, 4대, 5대 순서대로 모두 차례 지내고 벌초 해야겠죠.
하지만 성묘도 차례도 지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촌혼은 단지 지금의 관습상으로 익숙하지 않은 것 뿐이고,
근친상간의 범위를 넓게 두는 것은 사회적 현실을 절대적 당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뿐입니다.
한국의 혼인제도에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몇 가지 더 있었습니다.
'호주제'와 '여성 재혼 금지기간 6개월'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죠.
사촌혼은 동성애문제와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동성애도 결국 익숙한가의 문제, 관습의 문제니까요.
호모포비아인 분들이 '동성에 너 더러워.' 하는 것과
여성혐오자들이 '여자 너 더러워.' 하는 것과
몇몇 분들이 '사촌혼 너 더러워.' 하는 것은
집단에 포함되는 형세나 정도가 다를 뿐이지,
그 무논리와 폭력적 무지함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미국의 경우 사촌간 결혼에 아무 제한이 없는 주는
앨라배마,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코네티컷, 플로리다, 조지아,
하와이,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뉴저지, 뉴멕시코, 뉴욕, 로드아일랜드,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버몬트, 버지니아, 컬럼비아 특별구 입니다.
그럼 미국 이 주에 사는 사람들, 혹은 사촌혼을 한 사람들은 다 더러운 개새끼 들일까요?
네, 한국과 미국은 다른 나라죠.
한국에서는 한국의 법도를 따라야죠.
참고로 70, 80년대 한국에서,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는 여성은 '걸레'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 원인으로 미국의 소설, 영화, 드라마에 의한 문화적 태도의 변화를 많이 이야기 합니다.
미국의 문화를 접하면서 '아...이쪽이 더 자연스럽고, 타당하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런 사회적 통념이 자리잡게 된 거겠죠.
미국이나 서양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촌혼이 실제로 사회통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의 현실적인 문제도 있겠죠.
다만 동성애와 사촌혼에 대해 극단적인 이중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이러니 할 뿐입니다.
사실 저는 동성혼의 법적 인정에 대한 문제도 확실히 결론을 못내는 편인데,
차라리 법적 도입의 선후를 따지자면 사촌혼이 먼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사촌끼리 그러는 거 더러워'라고 악플을 다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사촌끼리 그러는 거 더러워'라고 생각하는 것이 혹시 고정관념이 아닐까요?
법이 그렇다. 관습이 그렇다. 라는 말 이외에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스스로 근거를 찾아봤지만 그 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구요.
'관습이 그러니까 따라야 한다.'라는 논리에는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미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호모포비아적 사회관념도 원래는 관습이었습니다.
관습과 법체계는 사회구성원이 여론과 논의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에 적절한 근거와 논리가 없다면 그 행위를 다시금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논리 없이 상대방을 '남, 나와 다른 틀린 것들, 더러운 것들'로 치부하는 행위.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쓰던 전체주의의 어법입니다.
새누리가 48%를 '종북'으로 밀어붙일 때 쓰는 매카시즘의 어법입니다.
호모포비아들이 동성애를 '더러운 것들'로 매도할 때 쓰는 성폭력적 어법입니다.
저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문제, 성소수자문제, 혼인문제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편견의 조각들부터 깨뜨려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