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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서 전사한 형묘비, 60년만에 발견한 캐나다인할아버지
게시물ID : humorbest_5699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asisCore
추천 : 33
조회수 : 2848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1/23 19:20:34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1/23 14:06:12

출처 : http://media.daum.net/politics/all/newsview?newsid=20121123135505932


캐나다 제2보병대대(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Battle Group) 고(故) 로이 더글러스 엘리엇(R. D. Elliott) 상병은 이역만리(異域萬里) 한국 땅에서 1953년 4월 17일, 약관(弱冠)의 나이에 숨졌다. 종전(終戰)을 석 달 앞둔 시점이었다.

캐나다에 있는 엘리엇 상병 가족들은 엘리엇 상병의 전사(戰死)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됐지만, 빠듯했던 가정형편 탓에 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엘리엇 상병의 동생 도널드 엘리엇(Donald Elliott·74)씨는 형을 가슴에 묻었다.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의 이름과 함께.

그렇게 60여년이 흘렀다. 동생 엘리엇씨는 백발의 노인이 됐다. 캐나다 온타리오주(州) 미시소거(Mississauga)에 사는 엘리엇씨는 지난 12일 현대자동차 매장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다. 차를 사러 들른 매장에서 그때 그 '낯선 나라' 출신 차량판매원을 만난 것이다. 형이 피 흘리며 '자유'를 지켜준 나라에서 온 청년에게서 엘리엇씨는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다.

그가 한국인임을 확인한 엘리엇씨가 말했다. "큰형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큰형 무덤에도 한번 가보지 못했다. 한국에 무덤이 있다는데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청년은 형의 이름을 물었다. "Roy Duglas Elliott."

청년은 그를 돕고 싶었다. 그가 '고객'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랬다. 청년은 무작정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름 하나만으로 엘리엇씨 형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엘리엇씨가 차를 찾으러 오겠다고 한 15일 오전까지도 진전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산 유엔군묘지 인터넷 사이트까지 들어간 청년은 '전몰(戰歿)용사' 리스트에서 그 이름을 찾았다. 'Roy Duglas Elliott'. 사이트에는 묘비 사진까지 올라와 있었다. 청년은 부랴부랴 사진을 현상해 액자에 넣었다. 그날 오후 차를 찾으러 온 엘리엇씨에게 청년은 액자를 건넸다. 엘리엇씨는 액자를 끌어안고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된 엘리엇씨는 흐느끼며 말했다. 정말 고맙다고. 60년간 형의 이름만 부르며 기도했다고. 감격에 젖은 엘리엇씨에게 이 한국인 청년은 말했다. "당신의 형 덕분에, 제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엘리엇씨."

미시소거현대차에서 근무하는 신상묵(30)씨는 자신이 겪은 이 일을 15일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신씨의 사연은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네티즌들은 하나같이 "영화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반응이다.

네티즌들의 찬사가 쏟아지자 신씨는 "이런…. 칭찬받을라고 올린 게 아니고 도와줄 수 있어서 감사해서 올린 글인데. (분에) 넘치는 답글들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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