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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산문-앨리스 인 커틀랜드
게시물ID : readers_79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수
추천 : 1
조회수 : 36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29 12:21:02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 장에 멈췄다. 어느 건물 안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을 찍은 평범한 사진이었지만, 사진을 보는 내내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번호판이 지워져 있었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그녀의 생일선물을 사러 나갔다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그녀의 아빠가 몰던 차였다. 저곳이 아빠의 마지막 행선지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마자 그녀는 사진이 발견된 곳으로 향했다.
 
 처음 들어선 그곳은 어수선했다. 순간 그녀는 자신이 수산물시장에 들어온 것은 아닌지 헷갈렸다. 중구난방으로 세워진 가판대에는 반창고나 디스켓, 게임기 등이 걸려 있었고, 오징어나 꼴뚜기, 문어들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거나 무심히 둘러보는 이를 붙잡고 뭔가 떠들고 있었다. 여긴 뭐하는 곳이지,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엔 사람들이 너무 흩어져 있어, 어째 말을 걸기가 망설여졌다. 그때 예전에 봤던 것과 비슷하지만 어째 광기 서린 웃음을 짓는 열차가 멀리서부터 쏜살같이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기사 아저씨 눈이 부리부리했다.
 “이 열차는 베오베행, 베오베행 열차입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 광장으로 가실 분은 이번 열차를 타시기 바랍니다.”
 “아, 역시 베오베에서 보는 게 편하지.”
 “나도. 좋은 건 거기 가면 다 있잖아.”
 “발품 파는 고생 안 해도 되고 말이야, 빨리 가자.”
 디스켓 가판대에서 어슬렁거리던 오징어들이 이런 대화를 하면서 열차로 향하는 모습에 그녀는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이나 그녀 말고도 열차로 향하는 이들이 많았다. 거기다 광장이라고 했으니 아마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빠를 찾기도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어지러이 널린 가판을 이리저리 피해 달리던 열차가 어느덧 굽이굽이 방향을 꺾지 않고 넓고 평탄한 길에 접어들었다. 베오베 역이었다. 복작대는 틈을 비집고 밖으로 나온 그녀는 잠시 목적을 잊고 탄성을 질렀다. 아까 그녀가 들어섰던 곳보다 정돈된 그곳에는 훨씬 많은 수산물들이 오가며 활달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던 그녀는 밀려오는 허기에 배를 쥐었다. 그때 뭔가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 식당 같은 간판을 건 곳으로 향했다. 음식점이라고 생각한 그곳에서는 오징어들이 탕수육을 둘러싸고 뭔가 열심히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역시 탕수육은 부먹이 맛있죠.”
 “찍먹이면 다 행복하지 않나요?”
 “전 둘 다 괜찮아요.”
 “다 필요없고 치느님, 치느님을 섬기세요. 치렐루야!”
 잠시 한마음으로 노란 아저씨를 따라 ‘평화와 치킨을!’을 외친 그들은 다시 소스를 부을 것인지 찍을 것인지를 놓고 격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난 간장도 괜찮던데….”
 순간 그녀의 말을 들은 오징어들이 그녀 주위로 몰려들었다. 못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부터 호기심 어린 표정까지, 자신을 향한 시선에 그녀는 당황해했다.
 “간장이라니 이단이시네요.”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존중해드려야죠.”
 “부먹과 찍먹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간장이 왜 나와요?”
 “취향이잖아요, 안 찍어먹는 사람도 있는데요, 뭘.”
 “간장도 생각보다 괜찮아요.”
 “전 간장에 찍어먹는단 얘기는 처음 들어봐요.”
 그들이 말을 늘어놓는 사이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돌들이 원형을 그리며 그녀 주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콜로세움이다! 누군가가 외쳤다. 점점 높아져 가는 벽에 그녀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이대로 있다간 갇힐 거야. 그때, 망토를 두르고 별 달린 요술봉을 든 노란머리 여자애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빼주었다.
 “니는 여기 첨 오는 안갑네, 여는 어예 온 기고?”
 “어, 뭐라고?”
 강한 억양에 순간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아이는 심통 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여기는 어떻게 왔나 안 카나! 같은 한국말이구만 와 몬 알아듣는데!”
 “아…, 미안해. 난 아빠를 찾으러 왔어.”
 설명하면서 그녀는 사진을 내밀었다. 여기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니? 사진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주머니에서 클립을 든 녹색 털인형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동그란 그것을 앞에 놓고 아이는 요술봉을 휘둘렀다.
 “ASKY~ 열려라, 레전설!”
 그러자 클립을 든 인형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아이는 입을 열었다.
 “저쪽으로 쭉 가면 나올끼다. 근데 거기는 도돌이표 마법이 걸려 있어가꼬, 니 아빠 찾기 쪼매 힘들지 싶다.”
 “도돌이표 마법?”
 “순환론이라고도 부르던데,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사람들이 몬 알아듣는다 카데.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어예 안 되겠나, 잘해보그래이, 내는 간다.”
 “아, 고마워!”
 
 아이가 가르쳐준 그곳은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빠의 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목에 웬 메달들이 무수히 널려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상한 평면도나 3D 영상 같은 것이 중간 중간 걸려 있었다는 점이다. 조심스레 그것들을 지나 다가간 아빠의 차는 이미 먼지가 수북해 유리창이 부옇게 흐렸다.
 차 안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수염이 자라고 많이 초췌해졌지만 운전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분명 그녀의 아빠였다. 조수석을 쳐다보다, 뒷자리를 바라보다, 자동차 천장을 올려다보다 이내 한숨을 쉬고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아빠를 보던 그녀의 눈에 어느덧 눈물이 고였다. 아빠가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은 그녀의 생일선물이었다. 자신의 생일을 잊지 않은 그 모습에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자동차 보닛을 두드렸다.
 “아빠.”
 목이 메어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유리창을 뚫고, 마법을 뚫고 전해지길 바라며 그녀는 있는 힘껏 크게 외쳤다.
 “아빠-!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공간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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