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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프랑켄슈타인의 외출
게시물ID : readers_80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6
조회수 : 70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6/29 23:42:37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 장에 멈췄다. 실종 포스터 속의 사진이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색이 누렇게 바래어 있었다. 그녀는 곧 흥미를 잃은 듯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아찔한 하이힐을 또각 거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포스터를 보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프랑켄슈타인, 혹은 M이라 부르면 되겠다. M은 그의 본명에서 따온 이니셜이었고, 그는 박사가 지어준 이름보다는 M이란 이름에 더 애착을 보였으니 우리는 앞으로 그를 M이라 부를 것이다. 눈부신 하늘 위의 태양이 그의 정수리에 쏟아졌다. M의 부러운 시선이 아가씨의 선글라스에 머무른다. 25년간 바깥출입을 하지 않은 그에겐 한여름의 햇살이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25년 전의 외출은 사실 외출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했다. 현관에서 고작 몇걸음 떨어져 있는 뒷마당에 박사의 시신을 묻기 위해서 나간 거였으니까. 게다가 그날은 온종일 먹구름이 끼어있었기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어두컴컴했다. 그렇기 때문에 M이 햇살아래 얼굴을 내민 것은 최소한 반세기 만의 일이었다. 박사는 창조자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였다. 마지막 제자인 박사가 죽고 나자, M은 혼자 남겨졌다. 박사는 생전에 그를 데리고 외출하려는 시도를 수없이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이 ‘바깥세상으로 나가라’였을 정도였다. 그는 혼자 남게 될 M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이 없었던 M은 늘 집안에서만 머물렀다. 그런 그가 은둔형의 삶을 버리고 드디어 외출할 결심을 한 것은, 평소 즐겨보던 일기예보의 기상캐스터의 조언 덕분이었다.
 
“이번 주말은 외출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녀는 ‘외출하기 좋은 날’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마치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프랑켄슈타인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방송이 끝나고 M은 결심했다. 밖으로 나가보자고. 나가서 햇살 아래 걸어보자고. 그녀의 말대로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기 전에. 그리하여 프랑켄슈타인은 반세기만의 외출을 감행하게 되었다. 밖으로 나온 그는 길을 따라 쭉 걷기 시작했다. 사거리의 신호등을 지나고 알록달록 색이 예쁜 보도블록을 지나갔다. 자전거 도로를 지나고 마침내 어느 공원에 이르렀을 때, 그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그때, “어지러우세요?”하고 걱정스레 묻는 소리가 들렸다. 한가로이 잔디밭에 앉아서 휴일을 보내고 있던 젊은 여자였다.
 
“제 옆으로 오세요. 이쪽엔 그늘이 있으니까. 벌써 일사병에 걸릴 리는 없지만…….”
 
여자가 옆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하고 미소 지었다. 예의바른 M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여자의 옆자리로 옮겨갔다. 서늘하고 촉촉한 잔디의 이파리들이 M의 피부를 간질였다. 여자는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에 책을 올려놓은 자세 그대로 M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M의 창백한 얼굴엔 그을린 흔적도, 땀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M은 여자의 콧방울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타투가 특이하네요?”
 
M은 “타투?” 하고 멍하니 되물었다. 여자가 그의 목 언저리를 가리키면서, 티셔츠 안으로 이어지는 자국에 시선을 주었다. M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가 볼을 붉힐 수 있었더라면 지금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을 터였다. 이건 꿰맨 자국이었다. 신체와 신체를 이어붙인 흔적. 목도리를 하거나 목 위까지 올라오는 터틀넥을 입었어야 했는데. 과거에 그는 이 흉터로 인해 범죄자처럼 쫓겨 다녀야했다. 그런데 그녀는 달랐다. 이것을 ‘타투’라고 부르면서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한번만 만져 봐도 돼요?”하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M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가 자신의 목을 만지도록 허락했다. 보드랍고 따뜻한 손가락이 그의 목언저리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리곤 타투가 아니라 봉합된 상처라는 걸 깨닫곤 이채를 띠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올려놓은 채로 M에게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이름이 뭐예요?”
“……M.”
“난 앨리스예요. 우리 친구가 되지 않을래요, M? 물론, 내가 싫지 않다면요.”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저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은 사람이지만 사실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괴물이에요. 그래도……괜찮습니까?”
“뭐 어때요. 우리 엄마는 내가 일곱 살 때부터 나를 작은 괴물이라고 불렀는걸요.”
 
앨리스는 M의 표정을 확인하면서 “제 얘기가 기분 나쁜 건 아니죠?”하고 물었다.
 
“저는 오랫동안 홀로 집에서만 지냈기 때문에 대화하는데 서툴러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도 서툴고요……앨리스씨처럼 아름다운 여성에게 어떻게 말해야 되는 지도요.”
 
M의 말에 앨리스는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가끔 밖에 나오는 것도 좋죠? 친구도 사귀고 말예요. 이제 어지러운 건 괜찮아요?”
 
M이 어색하게 웃으며, “저는 움직이려면 전기가 필요해요. 집에 있을 때엔 콘센트가 있으니까 때때로 충전하면 되지만……공원에는 콘센트가 없겠죠?” 두리번거렸다. 앨리스는 호기심으로 두 눈을 반짝이면서 공원의 화장실로 그를 데려갔다. 그리고 M이 콘센트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충전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상하지만 다정하고 재미있는 여자였다. 박사를 제외한 어떤 사람들도 앨리스처럼 그를 편견 없이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여자들은 다 앨리스처럼 대범하고 너그러운 걸까? 그는 집앞에서 마주친 선글라스를 낀 여자를 떠올렸다. 그녀는 M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앨리스와는 달랐다. M은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가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앨리스는 동행하기로 했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M의 집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밖으로 나오게 된 거예요? 집안에 오래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박사님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어요. 박사님은 혼자 지내서는 안 된다고, 밖에 나가서 꼭 반쪽을 찾아 완성시키라고 하셨거든요. 정말 다행이에요. 앨리스씨를 만나서.”
 
앨리스의 얼굴이 달콤한 밀어를 들은 것처럼 은은하게 붉어졌다. M은 조심스레 앨리스의 뺨에 손을 올렸다. 매끄러운 피부가 M의 차갑고 창백한 손가락에 감겨들었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시선을 들어, M의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멋진 집이네요. 언제 한번 구경하러 가도 될까요?”
 
M이 고개를 끄덕이며, “앨리스씨는 무척 잘 어울릴 거예요. 분명히.”하고 중얼거렸다.
 
“네? 뭐라고요?”
 
M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작게 미소지으며 앨리스의 손을 잡았다. M의 미소를 처음보는 앨리스는 조금 더 얼굴을 붉히며 그가 이끄는대로 걸어갔다.
 
“지금은 어때요?”
“초대하는 거예요? 우린 오늘 처음 봤잖아요.”
“앨리스씨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달칵. M이 문을 열고 집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앨리스.”
 
그들이 떠난 정원에서, 이제는 박사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버린 잔디의 푸른 이파리들이 더위에 허덕였다. 때마침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맑고 평화로운 날이었다. 기상캐스터의 말처럼, 외출하기에 아주 좋은 날이었다.
 
 
 
 
 
 
 
 
 
 
 
/
 오유과거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깜빡잊고 모르고 지나갈뻔했네요.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분량은 A4 딱 2장인데, 올리려고 보니까
 읽는데 불편할 것 같아서 대화 사이사이에 엔터를 넣었습니다.
 
 주인공이 프랑켄슈타인이다보니까 처음부터 실종포스터가 등장하네요. 
 공게에서 주로 서식해서 그런지 내용이 좀 해괴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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