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유 과거] 산문 - 나는 거기 있었다
게시물ID : readers_80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일강의노예
추천 : 2
조회수 : 31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30 13:59:14
나는 거기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 장에 멈췄다.
붉은 조명아래 흔들리는 사진 속엔 흐릿한 인영이 고목 아래에 서 있었다. 그녀는 빨래처럼 매달려 있는 사진들을 다시 한 번 살펴 본 후 고목이 찍힌 사진을 떼어 냈다.
“이경수, 이거 지호카메라에서 나온 필름 맞아?”
인화실에서 나선 그녀는 소파에 앉아 렌즈를 손질하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그녀의 부름에 귀찮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뒤돌아보았다.
“지호 카메라에서 나왔으니까 그렇겠지.”
“나 몰래 바꿔치기 한 거 아니지?”
건성으로 대답하던 경수는 렌즈를 손질하다 눈앞에 나타난 사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걔 혼자 갔다며?”
“그래서?”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하며 사진을 쳐내는 경수 앞에 다시 사진을 들이 밀었다.
“자세히 봐”
경수는 노성을 내려다 입을 꾹 다물고 미경을 노려보았다. 경수는 렌즈를 손질할 때 방해받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설사 연인인 미경일지라도 이럴 때엔 가차 없었다. 경수의 거칠고 욱하는 성질을 잘 알고 있음에도 미경은 몇 번이고 사진을 내밀었다. 한참동안 미경을 노려보던 경수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더니 사진을 받아 들었다.
미경이 내민 사진은 특별할 점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죽어 말라비틀어진 큰 나무와 스산한 숲을 배경으로 남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서 있었다. 사진을 살펴 본 경수는 눈빛으로‘이게 왜?’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이거 사람 같지 않아?”
“이게?”
“이것 봐. 이거 얼굴, 몸. 검은 색 옷이 꼭 지호같아 보이기도 하고.”
두 사람이 말하고 있는 서지호는 아마추어 사진동호회의 친구였다. 동호회에서 처음 만난 세 사람은 추구하는 사진도 성향도 잘 맞아 곧잘 어울리곤 했다. 그러던 지호는 지난주에 출사를 나갔다 교통사고로 그만 죽고 말았다. 장례가 끝난 후 지호의 부친이 미경과 경수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사고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카메라인데, 너희가 지호 대신 사용해주면 좋겠다 싶어서.’
부친이 내민 건 단종 된 지 오래인 중고 필름 카메라였다. 누가 가질까 이야기를 나누다 필름카메라에 별 관심이 없는 경수 대신 인화실을 가지고 있는 미경이 카메라를 가지게 되었다. 카메라를 살피던 경수가 다 소진되지 않은 필름이 감겨 있는 것을 발견했고 미경이 방금 인화를 한 것이었다.
“이게 지호면 누가 같이 간 거 아닐까?”
“삼각대 썼겠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경수는 사진을 미경에게 넘겼다. 경수가 사진을 볼 동안 깔끔하게 손질된 카메라를 살피던 미경의 눈에 렌즈에 묻은 검은 얼룩이 들어 왔다. 검붉은 색의 얼룩을 손으로 만지려던 미경은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탁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저녁 먹고 갈 거야?”
“어.”
전화를 받으려던 미경의 눈에 전화기 옆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갈색 가죽 표지의 수첩은 지호가 늘 가지고 다니던 바로 그 수첩이었다.
‘이런 것도 받았었나?’
지호의 부친에게서 받은 건 카메라가 전부였다. 미경은 잠시 생각을 하다 아마 카메라 가방에 들어 있었던 것이거나 아니면 받았는데 깜빡 잊은 모양이라고 단정지었다. 받으려던 전화가 끊어지자 미경의 손은 자연스럽게 수첩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그곳은 사람들이 꺼려하던 곳이었다. 아주 옛날엔 그곳에 신원미상의 객사자나 걸인, 일가족이 없는 사람들의 시체를 버려두는 곳이었다고 한다. 수령이 500년도 넘은 나무는 사람들이 버린 시체 때문인지 아니면 척박한 토양 때문인지 점점 시들어가 가더니 어느 순간부터 잎이 돋아나지 않게 되었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죽은 고목, 그 아래로 썩어가는 시체와 백골이 나뒹구는 그곳을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귀신을 믿었던 시대, 죽은 이들에 대해 절하고 기도하기를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음에도 그들은 연고 없는 시체들을 그곳에 방치했다. 꽃 한 송이 받아 본적이 없는 시체들 위로 흙먼지가 쌓이고 쌓여 먼지와 함께 바람에 날릴 때까지도 말이다.』
삐-. 전화기에서 메시지 녹음을 알리는 소리가 났다.
[야, 김미경! 나다, 강건형. 방금 경찰에서 전화 왔어. 경수 시체 발견됐다고. 얘기 들어보니까 지호 죽기 훨씬 전에 죽은 거 같아. 니들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왜 멀쩡하던 애들이 하나씩 죽는 거냐고, 진짜! 미경아, 메시지 확인하면 바로 전화해. 알았지?]
미경이 소파로 몸을 돌렸을 땐 경수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방금 전까지 카메라를 손질하며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경수가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미경은 황급히 소파로 걸어갔다. 소파엔 경수에게 주었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미경은 바람에 흔들리는 잔가지처럼 떨리는 손으로 소파에 있는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엔 지호가 아닌, 기괴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미경 자신이 찍혀 있었다.
‘야, 이리와 봐!’
지호의 목소리가 미경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그날 미경과 경수는 지호와 함께 당일치기로 출사를 떠났다. 일명‘검은 숲’으로 불리는 그곳엔 심령 스팟으로 방송에 종종 나왔던 곳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주 오래전엔 숲 중심엔 마을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해지고 있었다. 지금은 마을이 있었다던 자리를 수령을 알 수 없는 고목이 지키고 있었다. 그 나무를 중심으로 풍경사진을 찍던 지호가 미경과 경수를 불렀다. 지호가 보여준 LCD엔 지호 자신이 기괴한 표정을 하고 서있었다. 평소에도 장난을 잘 치는 지호였기에 미경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경수는 달랐다. 그 자리에서 자신도 사진을 찍고 LCD를 확인했다. 지호와 마찬가지로 기괴한 사진이 찍히자 경수는 미경에게도 찍어 보라며 몇 번이고 권했고 미경 역시 사진을 찍었었다.
“지호는 필름 카메라 없는데…….”
순간 미경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지호가 죽기 전날이었다. 난데없이 자신을 찾아온 지호가 필름카메라를 빌려달라고 했다. ‘인화 안 했지?’몇 번이고 확인을 하던 지호는 뭔가 겁에 질린 듯 했었다. 당시 너무 바빠서 인화를 할 시간이 없었던 미경은 필름과 함께 지호에게 카메라를 빌려 주었고 그 카메라가 지호의 유품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놀란 미경이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손에 쥐고 있던 사진이 낙엽처럼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진엔 방금 전까지 있었던 미경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대신 미경의 등 뒤로 나무 바닥을 긁는 듯 한 소리가 집 안 깊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윤명조로 글을 쓰다보니... 윤명조로 글이 나왔습니다.
어제 밤 늦게 과거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쓰다보니 엉망진창이네요.
저에게 2장은 무리였던 겁니다.
 
읽어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좀 이르지만 과거 당선되시는 분~ 축하드려요.^^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