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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 과거]산문- 기억의 화석
게시물ID : readers_80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폐허의현자
추천 : 2
조회수 : 40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6/30 19:20:50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 장에 멈췄다. 그녀는 앙상한 손을 뻗어 손끝으로 사진을 쓰다듬었다. 흑백사진에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젊은 얼굴이 셋 찍혀있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뭔가 생각나세요?”

얼마나 먼 세월 건너를 보려는지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흔들리는 눈꺼풀을 보며 기다리자, 신 냄새가 나는 한숨과 함께 그녀는 현실로 돌아왔다.

“이게 나야.”

그녀의 손가락이 가장 왼쪽 여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여성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래쪽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은 여성이었다. 사진은 세월에 깎여나간 것처럼 접히고 찢어진 흔적이 많았다. 그녀가 쓰다듬는 여성의 머리 쪽이 가장 심했다. 해진 사진은 그 여성의 머리와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더 흩어져 나갈까봐 사진에 닿지 못한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다가 주저앉았다.

“생각나는 것만이라도 말씀해보세요. 말씀하시다보면 기억나실 거예요.”

다시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손은 마치 어떤 벽에 가로막혀 주저앉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애원은 답답함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아저씨. 경숙이 좀 찾아줘. 경숙이를 보면 기억이 날거야.”

그녀는 또 다시 불가능한 주문을 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연락이 끊어진 이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성도 모르고 이름조차 확신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대답이 궁해져서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알아보겠다는 변명을 나는 중얼거린 것 같았다. 그녀는 어디로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사진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어머닌 좀 어떠세요?

숨어서 담배를 태우다가 황급히 비벼 껐다. 어느새 아내가 베란다 창을 열고 다가와 있었다.

“또 그 이야기시지. 친구분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왜 하필 그 시절인지. 남편도 자식도 다 잊고 왜 그 때인지 아무도 설명해줄 수 없었다. 그녀는 누구든 붙잡고 친구들을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분들은 어디에 사셨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얼굴만 보면 알 수 있다며 그녀는 무작정 거리로 나갔다.

“사진은요? 얼굴이 나와 있잖아요. 그거론 안 된다고 하셔요?

사진은 궁여지책이었다. 그 시절의 물건을 보면 그녀의 집착이 덜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때문에 나는 휴가기간을 전부 그녀의 시골집에서 보냈지만, 찾아낸 것은 그 사진 한 장뿐이었다. 오래전에 내가 사준 지갑에 들어있던 그 찢어지고 흩어진 사진 한 장.

“사진 상태가 안 좋잖아. 그 얼굴이 잘 안 보이는 사람을 찾아 달래. 결국 계속 똑같은 소리야.”

내게 옮았는지 아내의 한숨이 무거웠다. 나는 친절한 아저씨 역을 맡았지만 아내는 악독한 계모 역을 맡았다. 때리고 욕해도 아내는 여전히 참고 있다.

“어머니도 언젠가 알아주시겠죠. 너무 실망하지 마요.”

아내의 희망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녀가 다시 나의 어머니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사진 복원은 뜻밖에 쉽사리 이루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시간이 우스울 만큼. 자세히 보면 덧씌운 흔적이 보였지만 그녀는 발견하지 못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친구들을 보고 싶어 했고 아직도 나와 아내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따금 혼자서 사진에 말을 걸고 있었다. 친구들을 이름을 부르며 당시의 일들을 현재형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제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내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살고 있었다. 나보다 어려진 어머니는 실수하거나 짜증낼 때도 있지만 순진하고 귀여운 소녀임을 나는 엿들으며 알았다. 언젠가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그녀를 보살펴 줘야할 것이었다. 그것이 내게 가능한 일의 전부였다.

그리고 사진 복원에 도움 주신 분들께 이미 전했어도 부족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어머니는 이제 경숙씨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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