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하나에 들어갈만큼 작아져서
벌레처럼 죽어버리고 싶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한 나날이 없었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우울한 인생이었다.
근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들러붙어 잊혀지지않는 악몽 같은 나날에 대한 망각에 불과 했었던것도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그게 과연 진짜 행복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찮은 인생을 살아온 나는 하찮은 사람이다.
지나간 과거를 지나간것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건 고쳐야 한다고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재의 나' 의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머릿속에 가장 끈질기게 남는 기억들 인것 같다.
그 남아있는 기억이 나같은 경우는 끔찍한 악몽같은 기억들 뿐인 것이고.
하찮은 기억에 의존해서 살아갈수 밖에 없는 나는 하찮은 사람이다.
망각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
그러나 그 안식처의 벽은 너무나도 허술해서,
망각이 그저 망각으로 전락해버리는 현실 앞에서는 여지 없이 무너져 버린다.
현실이 과거의 반복으로 느껴져버릴 때에는
그냥 벌레처럼 죽어버리고 싶다.
지나간 현실은 과거로 남아버리고 나의 과거는 더욱더 두터워지겠지.
과거가 두터운 사람은 살아가는 길이 무겁다.
똑같은 길이의 삶의 길을 걸어온 다른 사람에게 때때로 눈을 돌리면
다른 사람보다 더 무거운 만큼이나 비참함만 더 해진다.
세상에서 무거운 사람은 존재해서는 안되는 존재이고
존재할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다가온다.
남들이 불쌍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봐도 '아 그러시냐'. '어 그래' 라는 말 밖에는 해 줄 말이 없다.
나는 알고 있다.
세상에 있어서 무거운 사람들은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승리자들이 이끌어가고 승리자들을 위한 세상에 패배자는 쓸데없는 짐짝이다.
골치아픈 것들을 빨리 잊고 싶어하는게 세상 심리.
사실 패배자들도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이것을 잘 알고 있다.
패배자들에게는 한마디의 위로보다도 그저 망각이 더 큰 약이다.
힘들었던 일을 전부 잊어버린다. 기억 저 깊은 곳에 뭍어버린다.
더 무정한 사람이 될 수록 망각은 더 쉬워진다.
덜 무정한 사람일 수록 망각에서 깨어나는 기간이 짧다.
깨어나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난 그냥 벌레처럼 죽어버리고 싶다.
행복한 사람들은 망각에 대해서 모른다.
행복한 기억을 오래 남기는 사람들이 왜 잊고 싶겠는가.
행복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기에
가는 길이 가볍다.
긴긴 망각 속에서 해메이다가
깨어나면 내 등에 지고 있는 것들은 무거운 짐들.
무거워 쓰러지는 때 조차도 시간은 흘러가고
내가 해야 할일들은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정신없이 내게 다가오겠지.
그러다가 또 망각.
생산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하찮은 반복.
이것은 이미 삶이 아니라 고문이다.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는 하찮다.
그냥 벌레처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