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사퇴 발표 5일 만에 서울에 나타난 안철수 후보가 28일 참모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지지자들의 뜻을 따르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갔다. 앞으로의 행보는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하겠다’는 게 핵심 메시지로 보인다.
■ 무슨 얘기 나왔나? 점심은 원래 캠프의 실장, 부실장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지만 안철수 후보의 참석이 예정돼 있지 않아 선약이 있는 이들은 일부 불참했다. 박선숙·김성식·송호창 공동선대본부장과 조광희 비서실장, 유민영·정연순 대변인, 김인현 분석대응실장, 김경록 기획실 부실장, 박인복 국정자문지원실장, 이상갑 민원팀장, 김형민 기획실장, 김연아 홍보실장 등이 안 후보와 점심을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돌아가며 각자의 소회를 자유롭게 밝혔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안 후보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안 후보는 이를 경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 거의 전원이 문재인 후보를 도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4일, 12일) 전후 안 후보가 뭔가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밖에 참모들이 전국을 다니며 지지자들을 추슬러야 하며, 선거운동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만나는 게 좋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의 표정은 이전보다 많이 편해졌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안 후보는 박선숙·김성식·송호창 공동선대본부장과는 수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점심은 선대본부장들 외에 팀장·실장급 참모들의 얼굴을 마주 보고 노고도 위로하고 의견도 듣는 성격의 자리였다고 한다.
■ 안철수의 핵심 메시지는? 안철수 후보가 유민영 대변인을 통해 전달한 메시지는 ‘고맙다. 빚을 갚겠다. 앞으로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지지해주시는 분들 입장에서 판단하겠다’로 요약된다. 지지자들의 입장으로 판단하겠다는 얘기는 결국 문재인 후보를 돕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안철수 지지층의 50% 이상이 문재인 후보 지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다만 돕는 시기는 좀더 숙고할 것으로 보인다. 앙금이 쌓인 지지자들의 감정을 고려해 조금 더 시간을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안 후보는 지지자들을 다독일 필요도 느낀 것 같다. 안 후보 쪽은 애초 사퇴 선언 나흘 만인 27일 캠프 해단식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지자 투신 시도, 캠프 항의방문, 1인시위 등이 이어지자 이를 연기했다. 이후 안 후보 쪽은 관망세로 돌아섰다. 안 후보가 ‘지지자의 뜻’을 행보의 기준점으로 제시한 것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뜻했던 바를 다시 이루기 위해 앞으로도 확고하게 정치인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의 성격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지지자들의 뜻을 존중하는 결정을 할 테니, 나를 따라 같이 움직이자는 의미다. ‘지지자들과 나는 한 몸’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 언제 움직일까? 안철수 후보를 잘 아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 중진인사는 “안 후보는 문 후보를 도울 것이다. 시기는 절박감이 생길 때다. 이겨도 안철수 덕에 이기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안 캠프 팀장급 인사도 “캠프 내에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 ‘보름 남기고 확 돕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시간을 두는 게 문 후보에게 좋다는 의견도 있다. 문 캠프 핵심 인사는 “다음주부터 부동층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진다. 안철수 후보가 다음주쯤 움직여주는 게 우리에게도 좋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안 캠프 팀장급 인사도 “민주당에서 우리를 압박하지 않고 시간 여유를 준다면 우리로선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가 아직 허탈감에서 회복하지 못한 지지자들에 대한 다독임 없이 곧바로 움직이는 게 문 후보 득표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안 캠프 실장급 인사는 “지지자들 마음이 어수선한데 당장 지원 유세에 나서면 오히려 반발만 불러온다. 지지자들을 온전히 문 후보 쪽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다독여야 한다. 문 후보의 광화문 유세장에 안 후보가 문 후보 손잡고 연단에 올라갔다면,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