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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두희야.
많은 이들이 늦으나마 너의 사과를 들었다.
처음에 너는 김구 선생을 죽인 것에 대해
아무것도 사과 할 것이 없다고 했지.
-왜들 이래. 나 사면까지 받은 사람이야.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하지만 너의 추적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너는 끝내 너의 추적자들에게 잡혔고 마지못해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지.
마치 선심이라도 크게 쓰는 듯.
그것도 다 늙고 병들어서 죽기 얼마 전에 말이다.
알고 보면 그 속내라는 것도
결국은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너는 처음에 이 놈이 사주한 것이라고 했다가,
저 놈이 다 시킨거라고도 했다가
나중에는 두가지 모두 맞는다고도 했다.
도대체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사람들은 혼란해 했다.
모든 일이 네 전략대로 흘러갔지.
순진한 사람들은 네가 던진 미끼를 덥ᄊᅠᆨ 물었다.
-정말로 이렇지 않을까?
-아니야 이럴수도 있잖아?
-뭔 소리야.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는거잖아. 안 그래?
그게 바로 네가 노리는 점이었다.
아무런 초점이 없는 것.
아무 말이나 적당히 늘어놓는 것.
그렇게 해서 더 나쁜 짓을 벌일 시간을 버는 것.
소문이 소문을 낳았고,
그 소문을 신문과 방송이 열심히 퍼 나르는 동안
너는 시간을 벌려 몸부림을 쳤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는 억측들이 무성했고
사람들은 편을 가르고 다시 싸우기 시작했지.
-그래도 사람이라면 양심이 있을거야.
-무슨 소리, 저게 무슨 사람이냐. 괴물딱지지.
모두들 너를 두고 신념의 화신이라고도 했고,
영원히 용서하지 못할 민족의 배신자라고도 했다.
결국 네가 바란데로 된거지.
신념의 화신도 민족의 배반자도 넌 관심이 없었어.
그저 그러는 동안 네 살 시간만 벌은거지.
사실 두희,
너는 올바른 신념도 없었고
민족을 배신할 만한 깡도 없었다.
그 어느쪽도 아니었다.
그저 시절이 바뀌는데로 바람대로 흘러갈 뿐이었지.
두희.
네가 살인을 할 때 네게 분 바람은 마침 순풍이었다.
살인죄도 사면해주는 엄청난 병풍이 네 뒤에 있었지.
그 병풍은 네 죄를 가려줄 뿐 아니라
네가 앞으로 주욱 나갈 수 있도록 출세라는 순풍까지 일으켜주는
마법의 병풍이었다.
그 안에서
너는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아마 네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한 변명을 계속 늘어놓겠지.
억울하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
왜냐면
너를 둘러싼 의혹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혼란은 불어만 갈 것이고, 사람들은 또 그렇게 바쁜 일상 속에 파묻혀
사흘만 지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지.
그나마
이젠 너의 변명을 들을 수 없게 된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더 이상은, 도저히 참지 못했던 어떤 사람이 너를 영원한 잠으로 이끌었으니.
아직까지도 그 사람을 두고 말이 많다.
-그 사람이 너를 죽여버렸기 때문에
역사의 진실이 영영 묻혀버렸다.
근데 두희야.
과연 네가 오래 살아있었다면 단 한번이라도 진실을 말했을까?
살인죄를 저질렀는데도 감옥에서 편하게 지내다가
금세 사면까지 받고 승승장구했던 네가?
네가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고생이란 것을 해 봤으면,
조금이라도 죄의 댓가를 치뤘다면
이런 말은 하지도 않는다.
네가 죽을 고생 끝에 이룬 성취를 네 조직의 배신으로 모두 잃었다면
조금은 네 말에도 진실이 담겨있었겠지.
비록
그것이 폭로일지라도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네 이놈들!
어디 한번 갈때까지 가보자며 폭로라도 했다면
조금은 신뢰가 가겠지.
하지만
너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어.
폭로는커녕 제대로 된 반성한번 하지 않았다.
어떤 미친자가
가만 있어도 등 따습고 배부른데
덮고 있던 이불을 제발로 차겠나.
그만큼
너는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했다.
내가 처단할 놈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더 나빠진 건
모조리 놈의 탓은 아니다.
다만 책임을 져야할 놈이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죄.
난 이 죄가 제일 크다고 난 생각해.
놈은 너처럼 지금까지도 쉬지않고 변명을 해 왔다.
자리에서 물러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이 죽은 게 다 제 탓입니까 ?
나라가 이꼴이 된게 모두 제 탓입니까?
그래. 두희야.
너를 죽여도 절대로 바뀌지 않았던 세상이
놈을 처단한다고 바뀔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너처럼 놈도 같은 생각일거야.
어떻게든 이번만 피하면 된다는 똥고집하나로
되는데로 아무말이나 무한반복하는 건
어찌보면 생존본능일지도 모르지.
너도 그렇고
놈도 그렇고.
그래. 세상이 다 그런거지.
그럴때마다
난 너의 추적자들을 떠올린다.
살인자인 너를 평생동안 추적하고
너를 처단함으로써 살인죄라는 벌까지 받게 되지만
그 행동에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나.
그래.
나도 이참에 아무 죄 없다고,
끝까지 우기는
놈을 때려죽인 살인범이 되기로 작정했다.
살인범이 된다 한들
두희. 너나 놈과 난 다르다.
난 더 이상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
지켜야 할 자식도 아내도 모두 내 곁에 없으니까.
그래도
놈의 최후에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다.
두희.너와 놈이 입버릇처럼 하던 그말.
-어차피 금세 다 잊혀질텐데. 뭘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