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살의 직장인이자 평범한 가장 입니다.
6.25 때부터 1965년 까지 일어난 저희 집안의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원래 북한 황해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6.25 동란때 빨갱이들을 피해 가족 전체가 인천 부평 백마장(산곡동)으로 피난을 왔었죠.
애초에 부지런한 농부셨던 할아버지는 황해도에서 가져오신 전재산을 털어
백마장 근처에 4400평의 땅을 사셔서,
그곳에서 논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십여년 동안 농사를 지으시며 잘 살고 계시는데,
근데, 1965년 즈음....
공무원이 할아버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 땅을 팔라고 하십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한창 경작하고 있는 땅인데, 한마디로 거절을 하셨지요.
얼마후, 공무원이 그 땅은 황무지이니까 팔라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 땅가격이 1/10 안되는 황무지 가격으로 떨어졌다더군요.
공무원이 일부러 그렇게 신고를 한겁니다.
뻔히 벼들이 자라고 있는데 말이죠.
얼마후, 군인들이 할아버지를 찾아와서 근처 군부대로 끌고가
며칠동안 감금하고 고문을 하셨습니다.
장사로 소문난 할아버지였지만, 결국 며칠후에 그 4400평의 논을 1/10 안되는 가격에 도장을 찍으셨죠.
집에 돌아오시면서, 너무 속이 상해 할아버지는 술을 한잔 하셨는데.......
그날 트럭에 치이시고, 며칠후 돌아가셨습니다.
저희 집안은 풍비박산 났구요.
큰아버지는 당시 월남에 가 계셨고, 아버지는 당시 고등학생이셨구요....
할머니 혼자서 홀로 집안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할아버지가 강탈당하신 그 땅엔 현재 부평 대우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1979년 박정희가 여대생 끼고 술쳐먹다 김재규의 총탄에 세상을 떠버리자....
저희 큰아버지와 고모는 부리나케 그 땅을 되찾으러 사방팔방 뛰셨습니다.
그러나, 그 땅을 매입한 군장성은 박정희 죽자마자 미국으로 튀어 버렸고,
법원에서는 증거 부족,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저희들의 요구를 기각해 버립니다.
....당시 백마장에서는 그렇게 땅을 군 세력에 빼았긴 분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전국 방방곡곡에서도 엄청 많았습니다.
저희 회사 전무님은 강원도 출신이신데, 그분의 동네 분들도 많이 당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저희 할아버지 께서는 백마장에서 두번째로 크게 당하셨던겁니다.
박정희가 경제를 살렸다고들 하는데........
국민의 피땀을 쥐어짜서, 기사회생 할 정도의 설탕물만 조금씩 나눠줬던 거구요.....
국민들이 국 내외에서 열심히 피땀을 흘려 벌여들인 돈은,
게으르고 무식한 공주님을 위한 유산과 마르지 않는 29만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박정희의 망령은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를 통해 지금도 살아있고,
그들에게 붙어서 또 국민들의 피땀을 쥐어짤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전개시키는 중입니다.
사학과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가장 싫어하는 말이.....[역사가 나중에 심판해 줄것. 지금은 나서지 말고 참아라] 입니다.
국사를 공부 하면서 몇번이나 책을 집어던진지 모르겠습니다.
개개인은 똑똑한 한국인, 그러나 뭉쳐놓으면 우매한 국민들......
항상 나랏님들이 사고를 치고, 그 뒤치닥거리는 국민들이 해왔습니다.
몇백년동안이나 피땀으로 말이죠.
.....지금!
우리손으로!
그들을 심판할 기회가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우매하여, 그들을 단절 시키지 못한다면,!
역사가 그들을 심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또한번 역사속에서 심판 받을 겁니다.!
.....몇백년 동안 그러해왔지만, 역사는 절대 심판하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현실이 심판을 하는 것이죠.
깨어있는 현실은 곧 깨어있는 국민입니다.
....제발 모두가 투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