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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경제적 몰락과 NAFTA
게시물ID : sisa_572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솔미르
추천 : 2
조회수 : 89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8/07/21 15:28:49


멕시코 얘기가 나오길래 글을 하나 올립니다.김원호 연구원이 작성한 멕시코 경제위기에 대한 글입니다. 요즘 한미FTA를 반대하는 반대하시는 분들이 자주 써먹는 떡밥이죠. 글쓴 사람은 멕시코 경제위기는 내부의 문제(정치적 부패와 무능)가 곪아서 터졌으며, NAFTA는 그 원인 중 하나일뿐 이라는 관점입니다.



한·미 FTA, 그 새로운 도전] 멕시코 경제 문제, 북미자유무역협정 때문 아니다 
정쟁·무능이 부른 내부 위기 
김원호 _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멕시코發 NAFTA 공방 

멕시코가 미국·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이후 경제 사정이 악화되었다는 주장이 언론계와 시민단체, 그리고 일부 학자에 의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반대 이유 중 하나로 제기되어 왔다. 즉, 멕시코는 오늘날 심각한 실업난과,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고, 농업이 피폐해 이농 빈민들이 도시와 미국 국경 지대로 몰려들고 있으며, 멕시코의 주요 기업들이 미국 기업에 넘어가고 있는 데 이 모두가 NAFTA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비단 우리나라의 한·미 FTA 반대자들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 내에서도 개방·개혁 반대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돼온 문제다. 최근 멕시코 대통령선거전에서 야당 후보가 NAFTA 재협상을 공약으로 들고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 내 반세계화 단체들도 멕시코의 경제 피폐를 투쟁 소재로 활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렇듯 이 논쟁은 한국에 상륙하기 전부터 이미 고도로 정치화되어 있었고,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한·미 FTA 찬반론자들이 멕시코를 소재로 벌이는 논쟁 역시 해외의 논쟁을 답습하고 있어 지리한 소모전이 되고 있다. 

그러나 ‘NAFTA 책임론’은 멕시코의 경제 문제가 마치 NAFTA 발효 후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보고 있다. 또는 ‘기존 문제의 악화’로 보는 시각마저도 멕시코의 정치·경제·사회적 맥락은 무시한 채 그 원인을 개방이나 NAFTA와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만 몰아세우려는 편견이 짙어 보인다. 

자유무역의 원리가 그러하듯이, 무역을 자유화하면 산업 간(inter-industry) 교역에서 비교우위 산업은 흥하고 열위 산업은 쇠하며, 산업 내(intra-industry) 교역의 기회를 넓힐 수 있는 부문은 흥하고, 유치 단계에 머문 산업은 쇠하는 법이다. 

따라서 경쟁력 없는 산업은 생존을 위해 자체 구조조정과 국내외 산업 내 협력을 추진하는 한편, 정부의 지원을 확보해야 하고, 정부는 각 부문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프라 확충, 기술 및 인력자원 개발 투자, 금융 지원 원활화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만일 이러한 업계와 정부의 대응이 순조롭지 않다면 흥하는 부문과 쇠하는 부문의 온도 차이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멕시코의 경우는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NAFTA는 미국 경기와의 동조화 현상에 따라 경제성장, 물가 안정, 수출 증가, 투자 유치 증대 등과 같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 혜택은 일부 흥한 부문에 돌아갔고, 쇠한 부문에는 고실업과 양극화의 결과만 남았다. 

즉, 비교우위인 저임 노동력이 생산 요소로서의 비중이 큰 조립가공 수출산업(마킬라도라)과 수출 부문 제조업, 그리고 산업 내 교역이 활성화된 자동차 부품산업 등은 흥한 반면, 내수 시장에 의존했던 기술 초기 단계의 국내 전자·섬유·장난감 산업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미국과 국경을 맞닿은 북부 지역에서는 축산 농가와 야채 재배 농가는 흥한 반면, 남부의 곡물 생산 농가는 쇠했다.  

본고는 NAFTA가 멕시코에 가져온 상업 거래상의 손익 결과를 논하는 진부한 방식을 피하고, 논란이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빚어낸 정치경제·사회적 원인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먼저 이해의 편의를 위해 간략하게 멕시코 경제사를 통해 멕시코가 어떻게 NAFTA에까지 도달하였는가를 보자.  




정권 때마다 경제위기 자초 

아스테카 문명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대 문명이 꽃피웠던 멕시코 고원에 정복자 스페인인들이 16세기에 나타나 그로부터 약 300년 동안 토착 문명을 말살하며 식민 통치를 실시한다. 식민시대 경제 구조는 봉건적 대농장제도를 기초로 하여 원주민인 인디오를 노예 다루다시피하며 농산물과 광산물을 채취하고 이중 특히 광산물을 유럽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19세기 멕시코가 독립한 이후에도 이 같은 경제구조에는 변함이 없다가 1910년 멕시코 혁명을 계기로 토지개혁이 시작된다. 사파타 등 농민 혁명 지도자들의 주장에 따라 1917년 멕시코 헌법은 토지의 재분배와, 에히도라고 하는 토지 집단소유제도를 도입한다. 1929년에는 혁명 세력을 규합한 국가혁명당(PNR, 제도혁명당(PRI)의 전신)이 탄생하여 71년간의 일당독재가 시작된다. 

1930년대 세계를 휩쓴 대공황으로 광산물 외화벌이의 한계가 드러난 멕시코는 국내 제조업 육성을 시작한다. 멕시코의 산업화는 경공업에서 시작해 1960년대에는 철강·시멘트·유리 등 일부 중화학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1970년대에는 대유전의 발견과 함께 막대한 외자를 끌어들여 석유산업에 투자한다.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인구의 도시 집중과 노동자 계층의 증가가 가속화되고, 내외국인 투자자를 위시한 새로운 산업자본이 형성되면서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해 멕시코는 1960년대 말 사회적 위기를 맞는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을 불과 10일 앞두고 멕시코시 중심가의 틀라텔롤코 광장 소요 사태로 300여 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는다. 이어 1970년 등장한 에체베리아 정부는 정권 안정을 위해 통신 등 주요 산업을 국유화해 재정 기반을 확충한 뒤 분배정책을 실시한다. 후임 로페스 포르티요 정부도 고유가를 배경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정책에 몰두한다. 이로써 정권의 위기를 재분배로 막아보려는 무책임한 재정정책으로 인해 1976년부터 1994년까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매 6년마다 경제위기가 반복된다. 

멕시코의 화려한 민중 잔치는 1981년 유가 폭락에 이은 이듬해 외채 지불중단 선언으로 막을 내린다. 멕시코는 이때부터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일당독재로부터 개방과 경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결코 순탄치 않은 전환기를 맞게 된다. 

1982년 취임한 델라마드리드 대통령이 온건한 개방을 시도했다면, 1988년 살리나스 정부는 과감한 개방 경제개혁 조치들을 단행했고, 1994년 등장한 세디요 대통령은 정치 개방을 위해 1996년 선거법 대개혁을 단행해 1997년 PRI의 하원 다수 의석 상실을 허용하고, 2000년에는 마침내 야당 집권의 길을 터준다. 

이중 살리나스 대통령은, 냉전 종식과 함께 동유럽이 세계 경제의 일원으로 등장하자 동유럽으로 몰리는 해외 투자자금을 유치하고, 미국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제 비전과, 당시까지 추진한 경제 자유화 개혁정책들을 원점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굳히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NAFTA를 추진한 것이다. 이른바 개혁의 ‘잠금장치효과(locking-in effect)’를 시도한 것이다. 

아래에서는 먼저 멕시코 농업과 제조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분석함으로써 농업 피폐와 고실업, 양극화의 진정한 원인을 파헤쳐보고, 현 정부가 NAFTA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원인과 NAFTA 재협상론의 정치적 배경을 지적하기로 한다. 




위기 근원, 농정의 실패 

멕시코는 오랜 역사를 통해 극심한 빈부격차에 문맹률(8%, 공용어인 스페인어 문맹률 18%)이 높고, 도농 간 도로망 등 사회 인프라가 극히 취약한 나라다. 1억 인구의 절반이 빈민이며, 농민의 80%가 빈민층으로 분류된다.  

멕시코는 NAFTA 협정에 따라 농산품을 A, B, C, C+ 등 4그룹으로 나누어 1994년, 1998년, 2003년, 2008년 각각 1월 1일을 기해 단계적으로 농산물시장을 개방하고 있다. 

NAFTA 재협상론이 본격화된 것은 2003년 1월 C 그룹에 속한 보리·닭고기 등이 완전 개방되면서부터였다. 다음 완전 개방 차례인 C+그룹에는 멕시코인의 주식인 옥수수·콩·오렌지주스·분유·설탕 등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농민 조직은 물론 야당인 민주혁명당(PRD)과 과거 집권당이었던 PRI가 연합하여 미국과 캐나다 농산물로 인해 멕시코 농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재협상을 요구했다. 멕시코의 일부 언론도 이에 가세하여 멕시코 농촌의 빈곤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NAFTA가 멕시코 농업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멕시코 농촌의 피폐는 NAFTA 보다 훨씬 역사가 깊다. 논란의 대상인 옥수수를 예로 살펴보자. C+그룹에 속한 옥수수는 NAFTA 발효 후 최장 기간(15년) 동안 관세 철폐를 유예하되 이 기간 동안 매년 관세 할당(TRQ)을 늘려가며 쿼터를 초과하는 수입량에 대해서는 할당 관세보다 높은 관세를 적용키로 돼있었다. 

옥수수 쿼터는 NAFTA 발효 첫해인 1994년 250만 톤에서 2003년 326만 톤으로 증가했는데 실제 수입량은 매년 500만 톤을 넘어섰다. 증가하는 식용 및 사료용 옥수수 수요로 국내 소비량은 2,500만 톤가량 수준인데 국내 생산은 2천만 톤 미만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멕시코 정부는 쿼터 초과분에 대해서도 고율 관세 대신 할당 관세를 그대로 적용했다. 고율 관세를 적용하면 수입 옥수수의 소비자 가격이 상승한다. 국산 옥수수가 부족해 쿼터 이상으로 수입하는 마당에 굳이 소비자 가격을 인상시켜 저소득층이나, 축산농가에 부담을 지울 필요를 정부는 느끼지 못한 것이다. 

국내 생산량은 정체 상태이고, 2008년에는 쿼터와 관세가 모두 사라지므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국내 생산은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했는가. 2008년까지 15년의 여유를 두고 농촌을 구조조정하려던 계획은 어디로 갔는가. 

문제는 NAFTA 자체가 아니라 멕시코의 농정 실패에 있다. 개방에 대한 대책은 있었지만 실효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멕시코 농촌의 문제는 농지 소유제도와 관련되어 있어서 정부는 NAFTA에 앞서 농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지 소유제도를 개혁했다. 

멕시코혁명 이전 멕시코 농지의 70%는 약 300명의 대농장주의 소유였다. 멕시코혁명의 결과로 제정된 1917년 헌법은 농민 혁명군의 요구를 수용하여 라티푼디오(대농장)를 에히도(공동 소유 농장)로 재분배하도록 규정했다. 토지 재분배는 이로부터 70여 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광활한 북부의 축산 농가들과는 달리 대다수의 남부 곡물 농가가 배당받은 토지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어 1980년대에는 평균 1.4헥타르(약 4,200평)에 불과했고, 1990년대에는 더 이상 분배할 토지가 남아있지 않게 된 데 있었다. 에히도는 헌법에 의해 매각도 임대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남아 1명에게만 상속이 허용되어 수백만의 멕시코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친척 간에 편법으로 땅을 나누어 경작하는 실정이었다. 




경제 발목잡은 관료주의와 부패 

또한 법에 의해 에히도는 대출 담보가 될 수 없으며 농가의 부채 미상환 대가로 압수될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민간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을 길이 막혔고 에히도제도는 농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소외시키는 장치가 되고 말았다. 정부 차원에서 농가 금융 지원을 담당했던 농업신용은행(Banrural)은 정실 금융을 일삼다가 2001년 40억 달러의 부실 대출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했다. 

이렇듯 멕시코의 농지 소유권 문제는 농민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고, 멕시코 농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저하시켰다. 따라서 살리나스 대통령은 1992년 농가의 소규모화와 소유권 제한 등이 가져온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에히도의 매각·임대·담보를 허용하는 내용의 헌법 제27조 개정을 단행했다. 

그러나 농민들과 투자자들은 정부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에히도를 매각하는 데는 소속 농민 다수의 동의를 얻도록 했는데, 정작 매각된 에히도는 겨우 1%에 불과했다. 또 매각 대금을 받고 나서도 매각에 반대했던 소속 농민과, 소유권 없이 친족 간 편의로 경작해오던 농민들이 소유권 반환 소송을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에히도는 투자가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토지 소유 문제뿐만 아니라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농사에 필요한 투입 요소 즉, 고품질의 종자, 비료, 전기, 농기계, 금융 지원 등이 적시에 경쟁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어야 하지만 멕시코 농가에게 이는 꿈같은 이론에 불과했다. 과거 수십 년간의 멕시코 경제의 보호 관행으로 농촌 공급 체계에는 비료공사(FERTIMEX)와 국가종자회사(PNS) 등 독점 국영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부는 이들을 민영화해 공급의 경쟁 체제를 도입하려 했지만,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이들 독점기업들의 반발로 끝내 경쟁 체제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독점기업인 이들이 농가에 대한 공급 가격을 인하하거나 분배 공급망을 효율화하기 위해 애써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농가는 생산물을 매각해 수익을 올려야하지만, 멕시코 농촌의 보관·수송 체계는 정부의 미미한 인프라 투자로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판매망 역시 독점 분배업자들에 의해 농락당하는 현실이다. 

즉, 대부분이 소규모 빈농인 멕시코 농가는 직접 소비 중심지와 연결되지 못하고 폭리를 챙기는 분배업자들에게 생산물을 싼값에 넘겨주기 일쑤이며, 설사 보관과 수송 비용을 무릅쓰고 농가가 직접 도시의 유통지로 생산물을 가져가더라도 유통단지 내 업자들 간의 과점 담합에 걸려들어 헐값에 처분하고 돌아와야 하는 현실이다. 

어떠한 정부도 이 같은 농산물 유통구조를 진지하게 개선해보려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시도된 일부 미온적인 조치도 관료주의와 부패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효자 산업에서 추락한 마킬라도라 

이같은 정책 운용의 실패는 제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외채위기의 늪에 빠져있던 1980년대 멕시코의 경제 엘리트들은 기존의 내부 지향적인 발전모델을 수출 주도 발전모델로 전환하면서 경쟁력 있는 산업을 선별해 육성해야했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의 산업정책을 발판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온 부문은 유리, 시멘트, 철강, 일부 농가공 식품, 석유, 마킬라도라가 전부였다. 

뒤쳐진 산업기술과 부족한 산업자본을 외국인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이중 단기간에 육성 가능성이 있는 산업은 마킬라도라였다.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보세 수출산업인 마킬라도라는 우리나라의 과거 마산수출공단과 유사한 개념으로 1965년 미국과의 국경 지대에 설립되기 시작해 1972년부터는 내륙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멕시코 정부는 마킬라도라에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여 고용을 창출하고, 수출을 늘리며 점차 기술 이전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멕시코 정부의 전략을 적중하는 듯 했다. 미국과의 FTA 협상 계획(나중에 캐나다가 합류하여 NAFTA 협상으로 전환)이 발표된 1990년을 전후해 마킬라도라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1990년 총수출의 13.2%에 머물던 마킬라도라 수출은 1991년 37.1%로 늘어났고, 최근에는 47%선에 이르고 있다. 

NAFTA는 303조에서 미국·캐나다 이외 국가 기업들이 동일한 혜택을 누리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관세 환급을 금지시켰지만, 아시아와 유럽 국가 기업들을 위해 이는 다시 특정산업 개발계획(PROSEC)이란 이름으로 부활되었다. 마킬라도라에는 자동차, 자동차 부품, 전자 및 전기기기, 의류 등이 집중되어 멕시코 제조업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 수출 규모는 멕시코 총 제조업 수출의 55%를 점하는 수준이다. 가히 멕시코는 마킬라도라 경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수출과 경제성장, 외국인 투자 면에서 괄목할 만한 실적을 보여주는 마킬라도라는 멕시코 경제의 기본 여건이나 멕시코인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는 데 기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마킬라도라는 저임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한 단기적 정책 수단일 뿐 국내 기술 기반 강화나 여타 협력산업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후방 연관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며 저부가가치 산업이라는 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이 같은 이유로 학계에서는 마킬라도라 산업을 ‘고립경제(enclave economy)’라고도 부른다. 

멕시코가 이를 극복할 유일한 길은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한 자체 기술 발전에 있지만, 멕시코의 R&D 수준은 우리나라(GDP(국내총생산) 대비 2.59%)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0.39%에 불과하다. 공공 부문의 R&D 수준이 낮은 이유가 잦은 경제위기를 겪은 정부의 재정 지출 축소 의지 때문이라면, 민간 부문은 오랜 정부의 보호 관행 때문에 R&D 지출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멕시코 기업인들은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마킬라도라 혜택을 내국인 투자에게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해 PITEX라는 유사한 정책 수단을 통해 수출용 원부자재에 대해 관세 환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단기 이익에 몰두하게 되는 현실에서 설사 수출산업에서는 NAFTA의 혜택을 향유하며 매출 및 수출 실적, 고용 창출, 임금 수준 향상을 누려도 내수산업에까지 미치는 파급 효과는 미미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기술 인력 및 고급 기술 개발 시까지 단기간 육성에 그쳤어야할 마킬라도라 산업정책은 멕시코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남고 말았다. 

마킬라도라 산업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동력 면에서 멕시코와 유사한 입지 요건을 갖추고 있는 중국의 부상은 그나마 멕시코를 버티게 해주던 마킬라도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중국의 수출시장이 확대되자 2000~2003년 동안 외국 자본들이 멕시코의 마킬라도라로부터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다. 마킬라도라에서만 23만 명가량의 실직자가 발생함으로써 멕시코의 실업난은 가중되었고, 멕시코 정부는 법인세율 인하 등의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잔류를 호소해야했다. 결국 마킬라도라는 2005년 현재 2003년 수준에서 10만 명의 일자리를 회복한 116만 6천 명을 고용하고 있다. 




나라 살림 망친 ‘정치 우선’ 

그러면 멕시코는 왜 이토록 NAFTA의 효과를 극대화하지 못하고, 야권은 NAFTA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멕시코는 1980년대 외채위기 이래 델라마드리드(1982~1988), 살리나스(1988~1994), 세디요(1994~2000) 세 행정부를 거치면서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개혁 조치들을 진행시켜왔다. 

오랜 보호 관습에 익숙한 경제·사회 체제를 바꾸어놓는 일은 간단하지 않을 뿐 아니라 NAFTA 발효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할 제도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2001년 이래 미국 경기의 둔화와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급부상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의 개혁은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경제개혁에 이어 1996년 정치개혁이 이루어지고, 1997년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면서부터였다. 또 71년간의 일당 지배가 종식되고 국민행동당(PAN) 출신 폭스 대통령이 집권하는 등 정치개혁이 정점에 도달한 후 개혁의 정체는 더 심해졌다. 폭스 대통령의 집권기(2000~2006)는 멕시코 역사상 가장 나약한 대통령과 가장 비효율적인 의회가 최악의 조화를 이룬 시기로 분류된다. 

PRI가 대통령과 의회를 모두 장악했던 과거에는 “멕시코에서는 신이 6년마다 바뀐다”는 말처럼 대통령의 권한은 무한했고, 의회는 대통령의 고무도장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행정부의 정책 의지가 확고하면 집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특히 멕시코는 조합주의(corporatism)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PRI 당내 조직과, 노동자·농민단체, 각 전문 분야 사회 조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의회 의원들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사회단체의 간부들은 대통령과 통치 질서에 대한 충성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과 부(부패)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개혁과 민주화는 이 모든 질서를 파괴했다. 새 집권당인 PAN은 1997년 이래 어느 당도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고, 과거의 PRI처럼 사회 각 조직체에 대한 유기적인 연결 고리를 갖고 있지도, 새로이 만들 수도 없었다. 규제 완화와 민영화, 보조금 및 가격 통제 폐지와 같은 그간의 시장 지향적인 경제개혁으로 말미암아 과거 PRI 행정부가 갖고 있던 경제 활동에 대한 통제가 사라짐으로써 정치적 충성에 대한 물질적 반대급부의 기회는 더 이상 보장되지 않았다. 

이른바 ‘경쟁정치’의 장으로 탈바꿈한 의회는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대결장으로 변했고, PRD를 포함해 주요 3당중 어느 당도 새로운 합의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나서려하지 않았다. 제도권이 교착 상태에 빠진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 제도권 경로를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도모할 수 있었던 각종 저소득층 집단들이 거리로 나섰다. 각 산업별 독점 노조들뿐 아니라 무주택자연합, 불법택시 운전사조합 등 비공식 경제 부문까지 거리 점거 투쟁 등을 벌이는가 하면, 야당인 PRI와 PRD는 공공연히 이들과 연대하는 형국을 자아냈다. 

이러한 정치권의 교착상태는 멕시코의 NAFTA 전략에 치명적인 차질을 빚고 있다. 즉, NAFTA는 그 자체로서 멕시코의 모든 경제 문제를 치유할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거대한 미국 시장을 자유로이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통상 환경을 조성해줄 뿐 이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는 멕시코의 생산성·경쟁력 제고 노력에 달려있었다. 

멕시코가 NAFTA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무엇보다도 인프라 확충, 농업 부문 개혁, 교육제도 개선, 기술 개발을 위한 기반 조성, 노동개혁 등 경제 전반을 지속적으로 개혁해야하지만 멕시코 정치권은 이를 수행하지 못했다. 1997년 이래 정부가 추진한 전기·에너지·재정·노동 등 주요 분야의 개혁 법안들은 대부분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멕시코의 에너지·전기·통신 산업의 노동 생산성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내 최저 수준이다. 이는 멕시코의 기업과 가계, 정부가 치르는 인프라 비용이 커서 저임 노동력이나 페소화의 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산업들이 결코 국제 경쟁력을 갖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간 정부가 추진한 석유 부문(PEMEX), 전기 부문의 국영기업(CFE)의 민영화 시도나, 민간 기업(TELMEX)이 독점하고 있는 통신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려는 계획들은 모두 이들 독점기업 노조들의 총파업 위협에 가로막혀 진전을 보지 못해왔다. 더군다나 야권은 이들에 동조하여 개혁안의 의회 통과를 무산시켰다. 




‘패배주의 벗어나라’…한국에 주는 교훈 

2000년 대선에서 정권을 잃은 PRI는 지난 18년간의 경제개혁 노선에 등을 돌리고 멕시코 혁명 후계자로서의 당초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다. 즉, PRI 지도자들은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그간의 개혁을 와해시켜 종전의 조합주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길 밖에 없다고 믿고, 노동자·농민의 이해를 대변하고, ‘국가 주권 수호’라는 이름으로 국영기업과 독점기업 보호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 

경제개혁의 대명사가 NAFTA인 이상 이들의 투쟁은 NAFTA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PRI는 1988년 당시 개혁 노선 반대파들이 탈당하여 창당했던 PRD와 입장이 같아진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라면 멕시코에서는 농산물시장이 완전개방 되는 2008년을 전후해 지금보다도 더 강한 반NAFTA 투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멕시코의 경제 문제는 NAFTA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의 내생적인 문제들이며, NAFTA를 진정 향유하기 위해 일찌감치 개선·개혁되어야할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문제는 마킬라도라 산업 육성에서 보듯이 성장동력을 창출하지 못한 정부의 안이하고 비전 없는 산업정책이나, 단기 이익에 몰두하는 기업들의 R&D 투자 기피, 또한 농업 및 인프라 산업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은 기득권 독점기업, 노조, 단체의 저항과 횡포, 그리고 정치권의 정권 야욕 때문에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는 우리는, 멕시코와 우리나라를 동일선상에 놓고 단순비교하며 패배주의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다. 개방(FTA)은 개혁과 변화를 위한 투자와 노력을 수반할 때에만 새로운 기회가 약속되는 것이라는 진정한 교훈을 깨닫고 향후 과제들을 실행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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