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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부재리-
두희야.
너의 살인이 그러했듯이 놈도 모든 범죄에 대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임,사기,횡령 및 살인교사 기타 등등
물론 놈이 공식적으로 직접적인 지시를 내린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대신에 놈이 평소에 아주 좋아하는 말이 있었지.
-이심전심.
놈이 대충 고개를 흔들면 하인들은 재주껏 눈치껏 알아들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놈은 말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눈짓,몸짓으로 표현했으니 기록을 남기는 법도 없었고
항상 애매한 말로만 표현했으니 확실한 증거를 잡기도 어려웠을거야.
-어떻게 할까요.
-알아서들 잘.
나중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놈은 자신이 무얼 어떻게 할 줄도 모른다
-무능해서 저 모양, 저 꼴이 된거다.
이런 저런 말을 했지만,사실 놈은 어리석지도 멍청하지도 않았다.
-말하지 않고 감정 표현하기.
그저 예전에 놈의 애비가 하던 방법 그대로
따라 한 것 뿐이지.
빼앗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음... 한번이면 됐고,
부르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거... 음... 두 번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거참. 으흐흠...
하는 식이었지.
사람은 따라하는 동물이라던가.
그러니 놈은 결코 멍청하지 않아.
지독하게 약은거지.
말 안하는게 얼마나 편한지 예전에 깨달은거지.
게다가
오로지 제 앞 길만 챙기려는 생각에 돈 되는 일이 아니라면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아까워했지.
놈은 남들과 흔히 나누는 잡담같은 건
오히려 쓰레기 같은 시간낭비라 생각했지.
-돈 얘기도 아닌데 뭐하러 해!
놈은 그렇게 아무말 하지 않는 식으로 모든 일을 처리했다.
하인들에게 눈빛으로만 뜻을 전하는
수법을 밥먹듯 써 먹었기에 물적증거를 최우선으로 따지는
저 무섭다는 경찰, 검찰조차 제대로 잡아내기 힘들었다.
놈이 물러간 후에도
놈과 관련된 갖은 추악한 일이 추가로 밝혀졌고
한번 더 세상이 발칵 뒤집혔지만
결국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한 법은
그때마나 놈의 무죄를 선고할 수 밖에 없었다.
-일사부재리.
말 그대로
한번 판결 낸 것은 다시 판결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바로 적용되었고,
그 이후로 놈은 어떤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처벌되지 않을 법적권리까지 획득했다.
두희,
너에 대한 처벌도 마찬가지였다.
솜방망이 처벌이었어.
감옥에서 놀면서 죄값을 다했고,
그걸 고생이랍시고 보답까지 받고
여생을 두발 쭉 뻗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니.
하지만,
두희야.
사람들 중에는
너나 놈과,
놈의 하인들처럼 아무런 생각이나 원칙도 없이
자기 편한 쪽에만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기생충이나 쓰레기들만 있는 건 절대 아니란다.
그 중에는
모래에서 바늘찾기에 가깝지만
아주 드물게 뜻 있는 사람들도 있단다.
두희
네가 맞아죽는 당연한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최소한의 공식기록만 해도 4번 이상 너에 대한 살해기도가 있었다.
아무리
네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재주가 좋다고 한들
결국에는 너도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었지.
그것도
맞아죽어서.
그래. 늘그막에 맞아 죽어보니 기분이 어떻더냐.
지옥에서 가서 지옥보다 못한 이 나라의 인간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이.
내가 생각컨대 살아있을 때의 너는 기분이 무척 좋았겠지.
높은 언덕에 있는 저택의 황금의자에 홀로 앉아
-이렇게 세상살기가 쉽고 편한데
저 쓰레기 같은 것들은 왜 비참하게 살까?
그런 고민아닌 고민이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게 네 일과였으니까.
더 통쾌한 건,
누군가 너의 죄를 뻔히 알고 있어도
더 이상은 법에 기대어 너를 심판하게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사람을 죽여도, 어떻게든 빠져나가기만 하면
대대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원칙을 네가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점도
너를 많이 기쁘게 했을 거야.
사람들의 삶은 아무리 간절한 소원을 해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게 보통인데,
두희
너처럼 사람도 죽이고
그 댓가로 돈도 왕창 타서 쓰고
감옥에서 놀다가 나와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사업도 잘 되고!
이런 신나는 세상이 또 어디있을까.
그런
엄청난 범죄조차 일부러 봐주며 처벌조차 하지 않는
이 나라의 기준을 네가 만들었지만
평생 도망을 다니면서 살 수는 없었지.
두희야.
그래서 말인데,
나 하나로의 힘으로는 이 썩어빠진 세상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놈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은 절대 놓지 않는다.
내 선배들이 그랬던것처럼
난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며
감옥에 가거나 극형에 처해질지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거야.
일사부재리라...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내 선배들이 그러더라.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이거 정말 멋진 말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