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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해양제국주의 꿈… 2차대전 후 제주도도 영토로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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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두갈래길
추천 : 6
조회수 : 77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7/06 16:54:56

“日, 해양제국주의 꿈… 2차대전 후 제주도도 영토로 요구”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大 교수

게재 일자 : 2012년 11월 01일(木)

역사는 과거를 파헤치는 학문이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는 열쇠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대표 주자인 한국과 일본, 중국 3국은 올해 독도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권을 놓고 극단의 대립을 빚었다. 세 나라의 영토 분쟁은 불과 60여 년 전, 점령과 피점령의 어두운 기억을 되살리면서 민족감정으로 번져 무력 대결 일보 직전까지 전개됐다. 그리고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언제든 활화산처럼 분출될 기세다. 갈등과 대립의 중심에는 일본이 있고, 미국도 제3의 방관자적 지위는 아니었다. 
문화일보 창간 21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에게 ‘일본은 왜 주변국들과 영토분쟁을 일으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은 명확하고 간결했다. “일본은 해양 제국주의(Ocean Imperialism)를 꿈꾸고 있다.” 미동부 코네티컷주 스토스에 위치한 코네티컷대 교수연구실에서 지난 10월 16일 더든 교수와 만나 한·중·일 3국간에 얽혀 있는 영토분쟁의 원인과 한때 아시아의 패권국가였던 일본의 의도와 앞으로 전개 방향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동아시아, 특히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전공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했다. 일본의 화산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연스럽게 일본 근현대사에 흥미를 가졌다. 1991년 컬럼비아대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연구하고, 1998년 시카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일본과 인접한 한국에도 흥미를 갖게 됐다. 연구할수록 두 나라 사이에는 미묘한, 정리되지 않은 관계가 있었다. 지금은 일본의 영토 분쟁에 얽힌 섬들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추적하고 있다. 독도와 댜오위다오(釣魚島), 쿠릴 열도가 주요 대상이다.” 

―독도 얘기가 나왔으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독도를 놓고 영토분쟁을 겪었다. 센카쿠 열도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이 촉발됐다. 중국에서는 만주사변 발생일인 지난 9월 18일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참가한 반일시위와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벌어졌다. 왜 일본은 이웃나라들과 항상 영토분쟁에 휩싸이는가.
“일본이 체결한 국제조약에 따르면 독도와 댜오위다오에 대해서 행정권을 요구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영토분쟁은 국제 해양법과 국제조약상 해석이라기보다는 더 큰 다른 의미가 있다.

일본은 기술적으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커다란 대국이 되기를 원한다.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는 러시아다. 다음은 캐나다, 중국, 미국, 브라질, 호주, 인도, 아르헨티나 순이다. 일본은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일본에 국토의 의미는 바다로 확장된다. 
쿠릴 열도와 센카쿠, 독도를 선으로 이어보자.

일본이 이들 섬을 모두 갖게 되면 호주 대륙보다 커진다. 해양 자원도 확보할 수 있고, 해군력 확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주변의 다른 나라에 비해 일본은 상대적으로 점점 작아질 것이다. 지금 일본은 지구에서 여섯 번째로 커다란 나라, 해양 제국주의를 꿈꾸고 있다.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조약에는 해양 제국주의를 달성할 법적 분쟁의 논거가 들어 있다. 해양 제국주의는 과거 노르웨이가 그랬었고 미국도 마찬가지였으며 오늘날에는 일본이 꿈꾸고 있다.”

―해양 제국주의라는 표현을 들으니 일본이 한반도 지배와 아시아 점령에 나섰던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중반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작가인 존 건서가 1939년에 집필한 ‘인사이드 아시아’에는 1930년대 인도와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의 정치, 군사, 문화 등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다. 그는 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도를 그렸는데, (더든 교수는 책장이 바랜 낡은 인사이드 아시아 출판본을 펼쳐 지도를 보여 주면서 설명했다) 검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당시 일본이 영향력을 가졌던 지역이다. 중국의 상하이(上海)와 대만, 필리핀, 베트남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당연히 일본의 한 부분이었다. 인사이드 아시아는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에게 필독서다.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있는 책인데, 한국에서 출판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건서는 미국 입장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책을 썼다. 그때의 일본 제국주의의 지도를 보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미국 역사학자가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와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 대한 심층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하다. 미국의 역사학계에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한 연구는 활발한가. 
“물론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에서 아시아 역사에 대한 연구자만 수천 명에 달한다. 북미에서는 매년 아시아학회가 열려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참여한다. 올해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학회가 열렸고, 내년에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저널도 매년 발간되고 있다. 아시아학회 안에는 몇 가지 작은 학회들이 있는데 학국학회도 있어 수백 명이 연구하고 있다.”

―다시 독도 문제로 돌아가 보자. 미국을 비롯한 48개 연합국은 일본과 1951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강화협약인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이 반환해야 되는 섬을 제주도와 울릉도, 거문도 3곳으로 명시했다. 이 같은 이유로 일본은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협정문에서 독도를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하다. 협정을 주도했던 미국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가. 아니면 독도는 당연히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본 것인가.
“미국에 독도는 공백의 섬이다. 원래 일본은 독도가 아니라 제주도와 울릉도, 오키나와(沖繩)를 일본 영토로 요구했다. 역사를 들여다 보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6년 1월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의 영토 경계선에서 리앙쿠르(Liancourt)로 표기된 독도를 제외시켰다. 하지만 일본은 1947년 9월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정 초안 작성 과정에서 미국에 전달한 일본의 부속도서 리스트에 제주도와 울릉도, 오키나와를 열거했다. 울릉도가 일본에 편입되면 독도는 당연히 따라간다. 1951년 7월 협정체결 2개월 전, 양유찬 주미대사로부터 초안을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강력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결국 일본은 제주도와 울릉도를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냉전체제에서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독도가 미국의 방어라인 안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미국은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처음에는 협정문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시했다. 그러나 다시 이승만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고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공백의 상태로 놓아두었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이 갖고 있는 독도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역사학자로서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정 당시 미국이 독도에 대해 왜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국은 독도에 대한 아무런 역사적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구소련에 대한 대항이라는 일본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국은 더 이상 한국과 일본 양국에 당시와 같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쿨 다운(cool down·진정하자), 낫싱 파이팅(nothing fighting·싸움은 안된다)’이라고 말할 뿐이다. 일본은 알다시피 미국의 아시아에서 가장 친한 친구다.

미국은 현 상황에서 아무 것도 변화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워싱턴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모두 마찬가지다.”

―미국의 윌리엄 로저스 전 국무장관은 1971년 6월 당시에 오키나와 반환협정 과정에서 센카쿠 열도에 대해 행정권만 인정했을 뿐 주권은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중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의 역사적 진실과 미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센카쿠 영토분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역사와 관련된 문제다. 미국은 오키나와에 대해서는 독도와 달리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 17세기까지 류큐(琉球)왕국으로 불렸던 오키나와는 원래 독립국가였지만 일본에 점령됐다.

오키나와에는 미군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주력 해군인 7함대가 배치돼 있다. 센카쿠는 오키나와의 일부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과 인접한 센카쿠를 차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중국이 센카쿠의 영유권을 갖게 되면 7함대에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은 지금 센카쿠 열도 매입을 추진해 분쟁을 불러온 일본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東京) 도지사에 대해 엄청나게 화를 내고 있다. 센카쿠 열도의 행정권만을 일본에 인정한 것도 중국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을 어렵게 만드는 나라는 공교롭게도 우방인 한국이다.

같은 시기에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져 미국은 곤란한 처지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는가.
“글쎄, 한국과 일본 정치인들은 모두 역사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식민지 피해의식이 있고 일본은 역사를 감추려고 한다. 정치인들은 과거를 이용하지만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식민지배의 과거사를 일본이 사과한다고 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 세계에는 전쟁과 침략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독도 문제로 한국과 일본 간에 국지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합리적 이성을 따르고 인간을 존중하면 전쟁은 사라질 수 있다.

 전쟁은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말살하는, 사람에 대한 싸움이 돼서는 안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 각국의 여성을 성노예로 썼다. 한국의 군대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왜 사과를 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독도를 둘러싼 국지적 충돌은 한국 정부가 결정할 문제다. 볼은 워싱턴의 코트에서 서울의 코트로 넘어갔다.

한국은 독도에 대한 현실적 지배력을 갖고 있다. 두 나라의 충돌을 원치 않지만, 전적으로 서울이 결정할 문제다.” 
스토스 = 이제교 특파원
글·사진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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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은 한국과 관련된 영토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그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제2장 제2조 (a)항에 다음과 같이 담겨 있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퀠파트와 해밀튼 항구와 다줄렛과 같은 여러 섬을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과 청구권을 포기한다."(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including the islands of Quelpart, Port Hamilton and Dagelet.)

 

퀠파트(Quelpart)는 제주도이며, 해밀튼 항구(Port Hamilton)는 거문도, 다줄렛(Dagelet)은 바로 울릉도를 가리킨다. 모두 서구에서 명명한 이름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바로 이 조항에서 출발한다. 독도를 한국영토로 규정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한국측 반박 논리 중 하나가 독도를 일본영토로 규정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 천 개에 달하는 일본의 섬들은 개개 이름을 열거하면서 그것들을 일일이 일본영토로 규정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대마도의 경우도 그것이 일본 영토에 속한다는 규정이 없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대마도는 한국영토가 될 수도 있다.

 


 

연합뉴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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