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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죽을 떄 까지 노후 보장해주는 직장甲
게시물ID : humorbest_5753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도너츠마시쩡
추천 : 115
조회수 : 14046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2/01 19:54:40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1/30 20:25:36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40773


                                          근데 퇴직도 마음대로 못함.

                                                  

                                            

                                       실제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을 쓴 인물로,

<고려사>편찬, 달력<칠정산 내법>,<칠정산 외법>을 만드는데도 참여, 훈구파의 거두가 되는 당대학자. 

세종은 정인지의 능력을 높이사 모친상의 이유로 3년간 낙향하겠다는 정인지를 붙들기 위해 법까지 바꿔 

집현전에 묶어 놓음.





                                                      

장영실,이천과 함께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이며 천문학자로서 지동설을 주장하였으며 자신이 직접만든 <교식추보법>을 통해 월식,일식의 날짜를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기까지 한인물(그때당시나이 29세, 갈릴레오보다 200년앞섬).


-중국역법은 조선에 맞지않으니 새로이 달력을 만들어오라는 세종의 명에 한반도를 중심으로한 천체운행계산달력 <칠정산 내법>,<칠정산 외법>을 만드는데 핵심인물로 ("지구가 태양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 라고 계측해놓았는데 현대기술로 계산할때 "365일 5시간 48분 46초" 즉 1초의 차이밖에 나지않는 , 그때당시 과학기술로 아랍,중국,조선만이 유일) 뛰어난 재능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음.


이순지는 돌아가신 부모의 시묘살이를 하겠다고 3년휴직을 청하자 세종은 이를 거부, 이에 이순지는 상소를 올린뒤 무단으로 귀향해버림. 결국 세종이 항복하고 3년간 휴가를 줌.


이는 공신 김종서, 정인지도 부모상을 제대로 못치뤘다는걸 감안하면 거의 유일한 장기휴가자.

 






                                    


태종때부터 초고속승진만을 해온 초엘리트로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세종도 중용, 기개와도량도 크고 노비 장영실의 승진에 대해서도 적극찬성하는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깨인인물,


하지만 뇌물사건연류되어 파직하나 결국 복직하여 일하게되는데 이러한 오점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능력을 높이사 조말생이 75세이후에 나이를 이유로 사직할것을 청하지만 들어주지않고 계속 일할것을 종용함.


 
세종 23권 6년 1월 4일 (신사) 7번째기사 / 병조 판서 조말생의 칭병 사직의 상서문 
세종 24권 6년 4월 25일 (경오) 2번째기사 / 병조 판서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는 전문을 올렸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30권 7년 10월 5일 (경오) 1번째기사 / 병조 판서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않다 
세종 62권 15년 11월 17일 (병신) 1번째기사 / 함길도 관찰사 조말생이 병으로 사직하기를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다 
세종 78권 19년 9월 4일 (신묘) 1번째기사 / 지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83권 20년 10월 27일 (무인) 3번째기사 / 예문 대제학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다 
세종 90권 22년 8월 10일 (기묘) 1번째기사 / 판중추원사 조말생이 하직하다 
세종 94권 23년 10월 27일 (경인) 1번째기사 / 예문관 대제학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다 
세종 96권 24년 6월 23일 (임자) 1번째기사 / 예문관 대제학 조말생이 파직을 청하다 
세종 106권 26년 12월 14일 (기미) 1번째기사 / 판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다 
세종 112권 28년 5월 11일 (무인) 2번째기사 / 영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코자 상서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114권 28년 11월 28일 (임진) 1번째기사 / 영중추원사 조말생이 벼슬을 그만두겠다고 상서하였다 
세종 116권 29년 4월 27일 (무오) 2번째기사 / 영중추원사 조말생의 졸기(卒記)
 

졸기 - 돌아가셨다는 뜻.

                                                                                     



                              

                                            



조,문종,태종,세종에 4대에 걸쳐 벼슬을 하는데 강직한성격에 좌천도 많이당하지만 이,호,예,형,병,공 6조판서를 두루 거쳐
  69세에 영의정에 올라 무려 18년간 일하고 세종의 치세에 큰축으로 활약함.
말년에 사직서를 11번이나 올림에도 세종은 "거동이 불편하면 가마를 타고 오시오." 라며 가마와 지팡이를 하사하는등 87세가 될때까지 영의정으로 일한다.


 
세종 53권, 13년(1431 신해 / 명 선덕(宣德) 6년) 9월 10일(신미) 1번째기사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세종 56권, 14년(1432 임자 / 명 선덕(宣德) 7년) 4월 20일(무신) 3번째기사 
/황희가 고령을 이유로 사직하자 허락하지 않다

세종 58권, 14년(1432 임자 / 명 선덕(宣德) 7년) 12월 7일(임진) 2번째기사 
/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니,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67권,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3월 29일(신축) 5번째기사 
/영의정부사 황희가 전을 올려 노쇠함으로 사직하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치 않다

세종 72권, 18년(1436 병진 / 명 정통(正統) 1년) 6월 2일(정유) 1번째기사 
/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83권,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11월 19일(기해) 2번째기사 
/영의정 황희가 사직을 청하니 허락치 않다

세종 85권, 21년(1439 기미 / 명 정통(正統) 4년) 6월 11일(정해) 2번째기사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세종 85권, 21년(1439 기미 / 명 정통(正統) 4년) 6월 12일(무자) 3번째기사 
/황희의 사직을 반대하다

세종 91권,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12월 21일(경인) 1번째기사 
/영의정부사 황희가 자신의 파면을 아뢰다

세종 102권, 25년(1443 계해 / 명 정통(正統) 8년) 12월 4일(갑신) 1번째기사
/영의정 황희가 연로함을 이유로 해면을 청하나 듣지 않다

문종 12권, 2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2월 8일(임신) 1번째기사
/영의정부사 황희의 졸기(卒記)



졸기 - 돌아가셨다는 뜻.










                                        

"신하가 고달파야 백성이 편하다."  -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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