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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암에 걸리셨다...
게시물ID : humorbest_5755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엄마ㅠ
추천 : 23
조회수 : 1705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2/02 01:17:02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1/29 00:00:29

 

어떡하지 우리 엄마.

나 지금 울면서 글을 쓰고 있어. 근데 뒤에 룸메가 있어서 소리내서 못 울겠어.

 

엄마, 내가 성인이지만 아직 너무 어리고 모르는 게 많아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 뭐가 맞는 걸까.

어릴 때부터 '언젠간 이런 날이 올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뭔가 너무 빨라, 엄마. 나 시집가는 건 봐야할 거 아냐. 아직 남친 한 번 안 사귀어본 딸 남친 얼굴이라도 봐야할 거 아냐.

엄마 닮은 이쁜 손자손녀도 봐야지. 엄마도 할머니가 되어 봐야지.

나 할머니랑 추억있는 애들 부러웠단 말야. 엄마면 충분히 좋은 할머니 될 수 있단 말야. 정말 아직은 안 돼, 엄마.

이거 살 수 있는 거겠지? 위험한 거 아니겠지? 이 또한 지나갈 수 있는, 그런 거겠지? 제발 그러면 좋겠어.

 

근데 엄마, 나 무섭다. 늘 권위적이고 미웠던 아빠가 힘 없는 목소리인게 무섭다. 정말 큰일인 거 같아서 더 무섭다, 엄마.

이걸 어디다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걸 '말로' 하면 현실이 될 거 같아서 더 무서워. 못 바꾸는 일이 될 거 같아서 싫어.

근데 말하고 싶어. 어딘가엔 털어놓고 싶어, 엄마.

 

엄마 너무 불쌍해서 안 돼. 아직 안 돼.

내가 엄마에게 얼마나 못 해준 게 많은데. 나 아직 엄마 행복하게 못 해줬는데.

내가 번 돈으로 여행도 보내고, 엄마 좋아하는 책 잔뜩 사주고, 같이 찜질방 투어 다니고 하려 했단 말야. 아직은 안 돼 엄마.

나 말야, 엄마가 바라는 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거는 봐야 하지 않아?

나 동생도 공부 열심히 시켜서 행복하게 살게 도와줄 거야. 동생, 그래 동생 엄마.

엄마 동생 엄청 걱정하잖아. 얘가 대학 잘 갈랑가, 얘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까, 하고. 내가 꼭 도와줄 거야. 그거 봐야하지 않아? 걱정되잖아.

 

엄마, 나 아직도 열 살 때 기억해. 엄마가 사라졌던 날 다시는 엄마 못 보는 줄 알았어.

커서 알고 보니 엄마가 마음이 아팠었잖아. 내가 그거갖고 엄마에 대한 일기 써서 엄마 상처받았던 거 기억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 그 때 무서웠었어. 아빠도 정확히 말 안 해주니까 내가 추측하는데 박해망상+우울증+정신분열과 유사했던 거 같아.

그 때 난 무서웠어. 살아서 엄마를 잃은 거 같았어. 그리고 아빠가 너무나 미웠어.

아빠가 엄마에게 어떤 스트레스를 줬는지 다 알고 있었으니까.  엄마가 너무 가여웠어. 그렇게 된 엄마가 너무 불쌍했어.

나 말야, 아빠한테 반항하는 게 그냥 아빠랑 가치관 차이가 너무 커서만은 아냐. 아빠가 가부장적인 것만은 아냐.

난 아직도 아빠가 엄마 병의 원인이라 생각해. 그래서 그랬어, 엄마.

그런데다 아빠가 엄마의 일은 전부 내게 맡기려 하고 내게 의지하려 했어. 게다가 여전히 엄마한테 스트레스를 계속 주는 거야. 그게 너무 미웠어.

동생도 미웠어. 엄마 스트레스 받으면 병이 도지는데, 계속 떼를 쓰고 엄마한테 화 내고 그래서. 너무 철이 없어서.

나 그 때 무섭고 힘들었어, 엄마. 하지만 우리 견뎠잖아. 엄마가 지금에 도달하기 까지 우리 정말 노력했잖아.

 

근데 왜 또 사라지려고 하는 거야, 엄마? 왜 간신히 엄마를 되찾았는데, 왜 또 사라지려 하는 거야?

이젠 싫어, 엄마. 나 이젠 싫어. 엄마 없음 안 돼. 엄마 없음 우리 집은 안 돼.

우리 집은 엄마때문에 뭉쳐있단 말야. 엄마 없으면 다시 콩가루가 된단 말야. 뭣보다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란 말야.

 

엄마 내가 잘못했어. 내가 요즘 너무 배불렀어. 내가 너무 바라는게 많았어.

엄마가 돌아와서 어리광을 부렸어. 못 부린 어리광을 부려보고 싶었던 거 같아. 너무 부렸어. 엄마의 사랑을 너무 이용했어.

너무 나만 생각했어. 내 일만 생각했어. 쓰잘데기 없는 일에만 관심 쏟고 있었어. 엄마가 소중한 걸 그 짧은 새 잊고 있었어.

내가 나빴어. 엄마를 힘들게 한 건 나야. 내가 더 의지가 됐어야 했어. 내가 더 엄마를 챙겼어야 했어.

진작에 병원에 갈걸. 안 한다 해도 더 강하게 몰아붙여서 검사보게 할걸. 내가 바보였어, 엄마.

엄마에게 더 행복을 줘야 했는데. 내 자존심따윈 하찮은 건데. 나같은 게 더 문젠데. 엄마는 너무 착하고, 엄마가 너무 날 아껴주고 있는 건데.

 

난 엄마가 계속 내 걱정만 해서 싫어. 이기적이면 좋겠어, 엄마.

엄마가 건강한 게 진짜 내 걱정이니까 엄마 맘대로 살면 좋겠어.

엄마가 엄마 좋아하는 일 하면 좋겠어.

엄마가 행복하면 좋겠어.

엄마가 살면 좋겠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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