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멈,
오늘 아침 일어나 나가보니
눈이 쌓여 있었소
일흔하고도 몇 해를 더 두고 봐온 겨울날이건만은
소복히 쌓인 눈 위로 까치 지나간 자리
왜 그리 에리운지 모르겠소
새벽엔 옆집 윤씨 영감이 구급차에 실려갔소
어찌나 소란하던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소
온 논밭에 붉은 요란이 지나가서야 겨우 눈이 감겼소
꿈 결에
그대를 본 듯도 싶소
허이얗게 쌓인 눈을 보고 있자니
무얼 해야할지 떠오르질 않았소
그러다 아주 문득 할멈이 생각났소
굴 까러 가는 그 뒷모습이 보였소
몇 날 전 큰 애가 귤박스를 사 들고 왔소
우리 엄마, 귤 참 좋아했는데
그 말에 당신 나와 봐 ─ 그대를 불렀소
아버지도 참
큰 애가 아주 잘 컸소
어제는 작은 애가 전화를 했소
아빠, 요번 주말에 내려갈게, 드시고 싶은 거 있어?
다른 건 됐고 감주랑 곶감이나 사와라 니 엄마 올 겨울도 그 타령 할 거다
.........
작은 애도 아주 잘 컸소
할멈, 당신은 심심하지 않은지 모르겠소
이제쯤이면 우리 복순이 만났을 듯도 싶소
아, 글쎄, 얼마 전에 이 녀석이 쥐약을 먹었지 말이오.
고약한 좀도둑이 고기 속에 섞어 줘도 안 먹던 것을,
대문 앞에서 한 계절을 기다리다 덜컥 그러는데
어찌나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소
어찌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르겠소
할멈, 거기는 그래, 살만 하오?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오
이제는 당신 없이
소금이 어디에 있는지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훤히 꿰고 있으니 말이오
이제 앞마당 눈이라도 쓸러 나가야겠소
당신을 부르는 건 이제, 그만 해야겠소
그런데, 할멈,
몇 날을 더 기다려야
나를 데리러 오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