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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을 통해 본 현재의 강남역사건 (스압, 스포주의)
게시물ID : movie_577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흑벌
추천 : 4
조회수 : 65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5/23 12: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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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강남역 사건 때문에 남녀 대결로 시끄러운 이 와중에 곡성을 보고 왔습니다. 곡성을 보고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정리하고 또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저는 곡성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믿음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공석은 맹목적인 믿음이 만들어낸 연약한 이성은 어떻게 사람들을 파괴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1. 일기장

영화 속 효진(종구의 딸)의 일기장을 종구가 뒤적거릴 때 일기장 속의 그림들은 효진이 외지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너무도 자명하게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종구는 외지인을 만났는지 여부를 효진에게 강하게 추궁합니다. 이 때 효진은 이렇게 얘기하죠

영화 속 효진(종구의 딸)에게 실내화를 보여주면서 종구가 외지인을 만났느냐고 추궁할 때 효진이가 이렇게 얘기하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

그렇습니다. 종구는 무엇이 중요한지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종구는 그 날 밤 효진이의 일기장을 뒤지고 효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판단합니다. 일기장에는 효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거든요. 저는 종구가 이 장면 이후로 외지인을 찾아갔을 때 당연히 외지인을 체포하거나 죽이러(아비된 심정으로) 갔을 줄 알았지만 종구의 행동은 의외입니다. 종구는 외지인에게 이렇게 얘기하죠

"조용히 떠나라"

조용히 떠나기는 뭘 떠납니까. 종구는 그렇게 외지인에게 말하고는 산을 내려와버립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기 위한 굿을 벌이고 결과적으로 외지인과 한패인 일광을 집으로 들이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수는 종구만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2. 성폭행 피해자
영화 초반에 외지인에게 성폭행 당한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마을 사람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이야기는 허무하게 흘러 곧 잊혀집니다. 나무에 목을 메달아 죽었던 여자를 두고 사람들은 외지인이 성폭행을 했다고 얘기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공론화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조차도 효진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곧 잊게 됩니다. 피, 시체, 두드러기 등의 시각적인 자극과 비명, 오열, 외침 등의 청각적인 자극. 즉, 감각으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이 떨어집니다.

3. 버섯
영화 초반과 중반, 그리고 종반에 걸쳐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버섯입니다. 종구와 동료형사의 대화에서 환각을 일으키는 버섯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오죠. 이 버섯을 둘러싸고 종구와 동료 형사의 생각은 시간이 지날 수록 변합니다. 형사는 객관적인 증거로(시체에 버섯 성분이 나왔다) 종구의 추측(무언가 있다)는 생각을 헛된 것으로 일축하지만 곧 같이 무언가 있다고 '믿게'됩니다. 믿음은 때론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없던 것을 있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독버섯으로 약을 만들어 유통시켰다는 뉴스 장면이 잠깐 스쳐지나가는데 이것은 버섯 성분이 어떻게든 마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곧 버섯에 대해 잊게 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통해 저 악마가 곧 원인이라 '믿게' 됩니다.

4. 믿음
곡성 처음 시작과 끝에 누가복음 37장을 인용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성경에서 중시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사람들의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게'합니다. 그러나 이는 권장사항이 아닙니다.

성경내 요한복음 20장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이 구절에 대해 눈으로 본 것으로만 믿음을 가지는 것에 대한 경계를 보여주는 구절이라는 해석도 있고 눈으로 보지 않는 믿음에 대한 비판을 받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곡성에서는 후자의 관점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맹목적인 믿음을 통해 만들어낸 악마와 그리고 증거들(피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두드러기, 환각증세, 성폭행, 버섯성분 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사태를 단정지어버리는 상황은 감독이 의도한 비판이라고 봅니다.

결국 종구의 믿음으로 효진은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했고, 외지인은 법의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독버섯이 유통되고 있는 상황을 일찍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관객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감독은 열심히 관객들을 낚았고 관객 역시도 종구와 다름 없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한채로 영화관 밖을 나서게 됩니다. 이것이 감각과 믿음으로 인해 연약하게 된 이성이 만든 비극이고 이 비극을 감독이 그려내고자 했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이젠 종교의 시대는 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믿음은 강력하게 인간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형태가 바뀌었다 뿐이지 그 본질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들은 이러한 맹목적 믿음, 근거 없는 믿음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 많습니다.

5. 강남역 사건

이제 곡성을 바탕으로 강남역 사건을 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증거들을 보면 피의자는 정신이상자였고 칼을 품에 안고 화장실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는데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피해자는 칼에 찔린 상태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되어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피의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피해자를 애도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신이상자에 대한 관리 방법, 순찰 강화 등의 현실적인 조치를 주장하는 것이 타당해보입니다.

그러나 일부 여성들이 이 사건을 여자혐오범죄로 '믿기'시작하고 모든 남자들은 잠재적 범죄자라고 '믿기'시작하면서 사건의 본질은 흐려집니다. 이제 본인의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애써 잊는 것도 아닙니다. 피해자는 이미 잊혀집니다. 마치 곡성에서 사람들이 성폭행당한 것이 잊혀진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남자들이 모든 남자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그 믿음을 강하게 먹은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치마가 짧아서', '밤 늦게 돌아다녀서'라고 말하는 일부 남성들은 그 문제의 인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강남역 사건에서 제일 큰 피해자는 칼에 찔린 분이지만 이미 생산적인 대화는 사라지고 추모라는 형태를 뒤집어 썼지만 자신의 믿음을 강화할 '굿'을 벌이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 굿을 방해하는 자는 신성한 굿에 끼어든 악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성찰하고 돌아보며 냉철한 이성을 지니고 다시금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피해자가 원한 것이 이러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효진이가 종구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며 외치고 있진 않을까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고인이 되신 여성분의 명목을 빌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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