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말하려고 하는 것...
피해자에 대한 영화라고 했지요.
영화 속에서 뉴스에 잠깐 스칩니다. 어떤 제약회사에서 독버섯이 함유된 건강식품을 팔아치웠다구요.
실제로 죽은 사람의 시신에서 독버섯의 독성 물질이 다량 검출됐습니다.
이것은 기업의 횡포, 거대 자본의 무서움입니다. 최근엔 옥시 사건이 있었지요. 지금까지 비슷한 사건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처럼요.
그런데
피해자들은 정작 가해자를 제대로 원망하지도 못합니다. 누가 진짜 가해자인지도 사실 불명확해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독버섯의 독에 감염되어 착란 증세를 보이고 희생된 사람이 있다면
그 독성 물질을 퍼트린 주동자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들은 말합니다. "에이, 고작 버섯 때문에 그 사단이 났겠어?"
그리고 비난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외지인.
소문만 좀 있을 뿐 정말 나쁜 놈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는 외지인에게 화살이 돌아갑니다.
감독은 영화가 두 개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요. 하나는 곽도원(종구). 하나는 외지인입니다.
영화 속의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 중 하나는 종구의 딸 효진입니다. 효진이는 분명히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거가 있어요.
사타구니 근처의 두드러기. 끔찍한 낙서들.
그런데 도원은
범인이 누군지 밝히고,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정작 다치고 괴롭힘당한 여리디 여린 딸에게 제대로 된 위로를 건네거나 치유해주려고 노력하지는 못합니다
종구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가장들이 그렇게 행동할 것 같아요.
심지어 그 과정에서 자고 있는 딸의 치마를 걷어올려 트라우마를 자극하기까지 합니다
"지금 그게 중한 것이 아녀" "뭐가 중헌지도 모르면서"
중요한 건 뭘까요.
피해자의 슬픔은, 피해자의 아픔은 대체 누가 보듬어 안아야 하는 걸까요. 부모도 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신이 해주는 걸까요? 신이야말로 인간을 위로해줄 수 있는 걸까요? 감독은 이렇게 신과 인간에 대한 얘기를 슬쩍 내비칩니다.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아프기만 합니다. 성폭행 피해자들의 수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가까운 일가친척에게 비난을 당하기도 하고 "지가 몸을 함부로 굴렸으니 그런 거지"
자기 스스로에게 비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내가 뭔가 잘못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이게 정말 무서운 겁니다. 피해자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상담을 해 주는 일련의 과정이. 정신적 외상을 치료해주는 과정이 필요한데
우리는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해자를 비난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더 심하게 말하면
그냥 그 가십거리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정육점을 하는 종구의 친구처럼요. "바빠 죽겄는디 왜 불렀냐?" "그 일 때문에 불렀지."
인간들은 가십에 환장합니다
단,
자기 자신의 일이 아닐 경우에만요.
종구는 바로 그런 '일반인'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가십이 타인의 일이었을 때. 즉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독버섯을 먹고 난동을 부린 일이 발생했을 때 종구는 동료와 그냥 사담을 나누며 넘어갑니다. 아무렇지도 않죠.
하지만 자기 딸이 피해자가 됐을 때는 눈에 불을 켜고 으르렁거립니다. 담도 작고 간도 작은 양반이 개를 때려죽이고 나중에는 사람을 죽이려 하기까지 합니다.
무명의 첫 등장 씬에서 그녀는 돌담 옆에 쭈그려 앉은 쭈글이 미친2년으로 나옵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우리 현대사회에 신이 있다면 꼭 그런 모습일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무명을 처음 보며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기까지 하죠. 우리는 '위로'를 비웃습니다.
우리의 위로는 바로 그런 모습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위로는, 우리가 가십거리에 환장해 있는 동안 돌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거기에 있는데, 사람들은 뜨거운 감자에만 관심을 불태웁니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피해자가 되는 데에는 이유도, 특별한 근거도 없습니다. 영화에서 대놓고 말해줍니다. "그냥 얻어 걸린 거"라고.
불행은 우리에게 미끼를 던집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그리고 불행은 그에게 들이닥칩니다. 종구는 말하죠 "왜 하필 우리 딸이냐"고. 하지만 이유는 없습니다. 무명이 말해 준 "걔 아비가 죄를 지어서 그 벌을 대신 받는 것이다"는 것도 사실 결과와 원인을 끼워맞춘 것에 불과합니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느 때건 간에요
작품 속에 가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유도 명백합니다. 의도한 것 같습니다. 가해자가 누군지 아리송하다. 누가 착한 편이고 누가 나쁜 편인지 모르겠다. 관객들도, 동구도 똑같이 의문에 빠집니다.
바로 그겁니다
감독이 말하려고 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피해를 입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가해자가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서 원인 모를 분노를 어떻게든 쏟아내기 위해 인간은 종교를 만들기도 하고, 신을 모시기도 하고, 불합리한 미신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감독은 기독교인임에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불행은 닥친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해하고, 의심한다. 그 불안과 의심 때문에 우리는 종교를 만들어 낸 것이다."
또 하나
감독이 말하고 싶어하는 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심'입니다.
일광은 그런 말을 하죠. "처음에는 아마 사람이었을겨" 귀신도 처음엔 사람이었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은연중에, 조금씩,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귀신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이게 아마도
감독이 말하려는 바가 아닐까요
종구는 처음엔 그냥 사람이었습니다. 딸의 아픔에 슬퍼하는 아버지였죠. 그냥 아버지. 평범한 아버지.
그런데 그는 점점 성난 맹수가 되어갑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되어갑니다. 처음에는 남의 집에 무단 침입을 합니다. 부제가 "그거 불법이잖아요" 라면서 말려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늘 소둑은 순식간에 소도둑이 됩니다. 개를 죽이고, 남의 집을 부수고,
종내에는
인간마저 죽이려 합니다. 친구들을 모아 집단 린치를 가해 죽여버리려 합니다. 실제로 차에 치어놓고서,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그냥 버려버립니다. 죽인 거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여기서 포커스를 바꿔 봅시다
관객.
관객은 처음엔 그냥 사람이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러 온 평범한 사람들이었죠. 그냥 사람들. 평범한 관객들.
그런데 관객들은 점점 더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스토리에 몰입합니다. 마치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의 싸움을 보다가, 피를 보고 싶어 괴성을 지르는 로마인들처럼요.
처음에는 종구가 "독버섯 때문이라고 검사 결과가 나왔잖여"라는 말에 동의하는 이성적인 관객이었지만, 점차 점차 의심을 하게 됩니다. 정말 이 마을에 뭔가 있는 거 아니야? 악귀가 있는 거 아냐? 일본인은 정말 악마 아냐?
감독이 효진이의 입을 빌려 "지금 그게 중한 게 아녀!"라고 말해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관객인 저는 더 흉악하고 더 무서운 진실을 알기 위해 눈을 빛낼 뿐입니다. 결국에는
성인 남성 여럿이 모여 사람 한 명을 집단 린치할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엠2창 찍어 봐"라는 대사에 다들 깔깔 웃습니다. 저도 웃었습니다. 그런데 웃는 순간 소름이 돋았어요.
사람을 죽이려고 집단으로 모의하는. 살인 계획을 짜는 장면에서 나는 웃고 있다.
게다가
남성 여러 명이 고함을 지르며 한 명을, 춘배 씨를 집단으로 구타합니다. 처음에 춘배는 일행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뭔가 기괴한 모습으로 다가왔을 뿐이죠. 흥분한 남성들은 그를 마구 때리고, 머리를 찍어 버립니다.
그리고 관객인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남자들을 응원했습니다. 빨리 죽여버려요. 그 무서운 좀비 녀석을 빨리 죽여 버려요.
춘배는 정말로 좀비입니까?
악령이 깃든. 악령에 빙의된 무서운 괴물입니까?
아니면 그냥 병에 걸려 정신이 쇠약해지고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공격받으니, 엉겁결에 반격하기 위해 상대방을 물어뜯은
불쌍한 인간에 불과할까요?
영화 속에서 악마 같은 모습도 보여주는 일본인. 외지인은... 춘배의 사진을 찍어 들고 집으로 와 정성껏 제사를 지내 줍니다. 물론 정확히 뭘 하려는 것인지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춘배에게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영화에서 드러납니다. 기절해 있다가 깨어나자마자 춘배가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산길을 마구 내달리죠.
그런데 관객인 저는, 춘배가 기괴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얼른 죽이라고 등장 인물들의 집단 살인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정말 '악마적'인 존재일까요. 외지인일까요. 저 자신일까요.
그리고 여기에서 곡성의 포스터를 봅니다. "미끼를 물었다."
누가?
관객인 내가.
영화의 스토리에 심취하다 못해 귀신이 되어갑니다. 평범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관객이었던 내가 나중에는 집단 살인을 옹호하고 응원하는 지경에 빠집니다. 마치 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가십거리에 환장한 탓에 막상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는 귀신이 되어버린 겁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명 한 명의 종구입니다.
자, 이제는 감독의 의도에 맞춰 의심을 할 차례입니다
뭐가 정말 "중헌 것"일까요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한 불쌍한 소녀에게 연민을 느끼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
아니면 그 성폭행은 사실 악마의 짓이었으며, 악마에게 강간당해 귀신이 들린 여자아이에게 퇴마 의식을 끝까지 했어야만 했나요?
일광과 외지인은 악마와 그 하수인일까요? 아니면 가십에 환장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떡밥을 던지며 밥벌이를 하는 평범한 인간들이었을까요?
무명은 착한 신일까요? 나쁜 신일까요?
아니면
뻔히 보이는
독버섯 성분이라는 현실적 증거와, 성폭행과 성병에 의한 수포 발진이라는 현실적인 개념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영화를 오컬트적이고 신적이고 종교적인 어떤 것으로 해석하려 하는
나 자신이 문제일까요?
저는 의심합니다
극중에서 신부님의 표정과 말씀이 떠오르네요
별 시덥잖은 일로 고민을 한다는 듯한, 묘한 표정으로 "의사를 믿고 병원에 다니세요"라고 말씀하시는 신부님.
감독이 신부의 입을 빌려 같은 말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