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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설녀
게시물ID : humorbest_5776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두번째달
추천 : 13
조회수 : 760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2/04 22:24:46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2/02 20:56:47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 있었다.

마치 설화 속의 설녀처럼, 달빛 없이도 환한 설국의 한 밤 속에서, 그녀는 서 있었다.

'춥지 않아?' 어린 시절의 나는 꽁꽁 언 손을 소매 안에 말아넣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가느다란 눈동자 안에 텅빈 공허함 만이 존재했다.

'가자. 우리 집에'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는 고집스레 그녀의 손을 잡아 끌었다. 차가움과 차가움이 맞닿았다.

그녀는 별다른 거부없이, 어린 꼬마의 무력에도 말없이 굴복했다.

아궁이 앞에 짚을 깔고 앉았을 때, 창호지 너머의 안방 불은 꺼져있었다.

군불은 아직 죽지 않았고, 마른 가지를 넣어 불을 살렸다.

타오르는 불에 손을 가까이 댔다. 그녀가 가만히 있길래, 손을 잡아 끌어 나처럼 손을 녹이게 했다.

빗지도 않고, 묶지도 않아서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칼이 흘러내려 그녀의 한쪽 눈을 가렸다.

'애기를 찾고 있지?' 겨울마다 잠들기 전 아랫목에서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를 상기하며 물었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누나가 산에서 걸어온거 봤어, 매일 밤마다 그랬지? 나도 사실 엄마가 없어. 할머니는 백밤만 자면 온다고 했는데,

이백밤을 자도 오질 않아'

나는 부지깽이로 괜히 불 속을 헤집었다. 불티가 날리며, 연기가 매캐해졌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우리 둘은 한동안 불속을 쳐다 봤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말없이 나를 안아 벽에 기대었다. 그리고 자신의 옷고름을 풀었다.

풍만하진 않았지만, 희고 여린 젖가슴이 드러났다.

'엄마꺼보단 작은거 같아' 그녀는 말없이 내 볼을 톡 쳤다.

나는 히히덕 거리며 젖을 물었다. 그리운 편안함이 몰려온다. 게슴츠레 창너머로 달이 보였다가,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



"꿈이 아니었을까?"

다시 현재로 돌아온 나는, 멍하니 경청하고 있는 진철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렇겠지 아마도... 그 뒤엔 기억이 없다며"

"없진 않았지. 그냥 그대로 잠들었고, 일어나면 늘 그녀는 없었는걸'

"모정 결핍에서 온 환상 아니었을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알싸한 감각을 유지하며, 나는 다시 회상했다.



철이 들 즈음에, 난 그녀를 수소문 했다. 서울로 상경한 뒤, 자수성가까진 아니었더라도

나름 이름있는 회사의 대리 직책까지 달게 된 후. 오랜만에 들른 고향집에서, 나는 항상 지니고 있던

그리움을 해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녀의 자취는 찾을 수 없었고,

다만 시골 지구대에서 하나의 기록만을 찾게 되었다.



"그게 뭐였을 것 같아?" 진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소녀의 사망기록서야. 어머니께서 나를 찾으시고, 얼마 뒤에 서울로 올라왔어,

그리고 예의 그 소녀는 그 시기 이후에 죽은 거지"

담배를 빼물었다.

"사망기록 이외에 어떤 기록도 없던 소녀야. 마을 어르신께 여쭤보니, 마을에 미친여자가 하나 있었다는군.

누구 애인지 모르겠지만, 갓난아이를 하나 데리고 있었다는데, 얼마 안가 죽어버렸단 거야."

쓴 연기를 뱉었다.

"그리고 얼마 후, 여자는 어느 겨울 밤에, 길거리에서 얼어죽은 거지."

진철은 말없이 커피를 들이켰다.

"그래 맞아. 소녀가 그녀야. 오래 전의 한 계절동안, 나는 그녀의 몸을 녹여주었고, 그녀는 내 마음을 녹여줬지.

그리고 마침내 내가 진짜 엄마를 만났을 때, 난 그녀를 더이상 찾지 않았어... 내가 죽인 거야..."

뒤늦게 나는 흐느꼈다. 진철은 말없이 내 어깨를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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