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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ㅡ유령
게시물ID : humorbest_5778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갱스터스
추천 : 12
조회수 : 743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12/05 03:26:08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2/01 20:44:59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떨어지는 눈들이 그녀를 통과하며 콘크리트로 떨어졌다. 입김이 나왔다. 목도리를 동여매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점점 그녀에게 가까워졌다. 고개 돌리지 마, 고개 돌리지 마. 늘 하던 것처럼, 난 아무것도 못 본 거야, 그래. 그리고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다리를 내뻗는 순간


 

  아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모르는 척 하자는 생각도 잊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얼굴에 쉴 새 없이 눈송이가 떨어졌다. 초점 없던 눈이 한 바퀴 돌아 나에게 안착했다.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내 머리카락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그녀의 발 주변에는 하얀 눈이 가득했다. 발자국 또한 없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내 목도리가 풀려 날아갔다. 그녀의 긴 머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어렵게 얼굴을 돌렸다. 목도리를 줍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입김이 안경을 흐리게 만들었다. 목도리를 줍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눈앞에 있었다.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목도리를 매기 시작했다.


 

  “안 춥니?”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목도리를 매는 내 손가락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손등에 난 흉터를 자세히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여자가 귀여워 조금 웃었다. 내 표정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그녀는 가만히 서 있었다.


 

  “차에 치여 죽었나 보구나. 그거 원래는 하얀 코트야? 이쁘네.”


 

  이제는 빨갛게 되어버린 코트는 예전의 하얀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여자는 내가 옷 얘기를 하자 그제야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코트를 한 번 살펴본 것이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몇 살에 죽은 거니?”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질문하자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 …열아홉, 하고 작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얼굴을 끄덕였다. 열아홉 겨울에 죽었다니. 제일 행복할 때 죽은 게 아닌가. 안타까웠다. 서른 넘은 아저씨도 이렇게 살아가는데. 날 바라보는 얼굴이 무척이나 아름다운데.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무궁무진할 텐데. 입김이 뜨거웠다. 안경에도 목도리에도 습기가 찼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랗고 하얬다. 이미 회사는 지각이었고 내일이면 난 또다시 출근할 것이다. 그 때는 이 여자앨 보더라도 아는 척 하지 않겠지. 이상한 아침이었다. 부산에는 오지도 않는 눈이 가득 쌓일 정도로 내리고, 내가 귀신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다니.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이 계속해서 그녀를 통과한다. 추워 보이지도 외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냥 귀신일 뿐이다. 그 자리에 남아있는 잔상. 언제 사라질 지도 모르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벗어준 내 코트가 무척 무거워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녀에게 내 코트가 얹힌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엑소시스트만큼이나 무서워할 법했다. 갈색 롱코트가 공중에서 둥실둥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그녀의 놀란 눈은 작아지지 않았다. 안다. 코트를 주든 주지 않든 그녀는 춥지 않다. 내가 옷을 준 의미가 없다.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도. 그녀는 내 갈색 코트를 작은 손으로 쥐고 품을 꼭 여몄다. 투명한 그녀의 입에서도 입김이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득해졌다. 마주보며 웃어주었다. 온 몸이 얼어붙는 듯했지만 이 여자애가 코트를 입고 서 있는 것이 훨씬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내 얼굴에 손을 댔다. 차가운 기운이 어루만졌다. 입김을, 들어마셨다.


 

  사라지고 있었다. 빨갛게 물든 운동화부터. 발부터 천천히 사라져갔다. 귀신을 보게 된 지는 십 년이 넘어갔지만 승천할 때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내 얼굴에 댔던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갈색 코트를 꽉 쥐고 작게 웃었다. 무언가 허탈한 웃음이었다. 고작 이런 낡은 코트에 자신이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웃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 아가씨야. 나 역시 마주보며 작게 웃었다. 그 새에 그녀의 몸은 다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이던 내 오른손을 쳐다봤다.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없어지는 다리로 그녀가 다가왔다. 무슨 표정인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조용히 속삭였다.


 

  손등에 흉터 남았네.


 

  무슨 소린지 몰라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조용히 웃고 있었다. 웃음의 뜻을 알 수 없어 내 오른손 손등을 보았다. 흉터가 남아 있었다. 십여년 전, 열쇠에 긁혀 난 상처였다. 열쇠에―

 


 

  열쇠에―…


 




 

  그 날 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때에 내 나이는 스물다섯, 군대에 갔다가 제대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날이었다. 미친 듯이 놀았다. 친구들 다 불러다가 밤새 술을 마시고, 클럽에도 가서 춤을 추고, 여자와 만나고, 놀고, 마시고, 춤추고, 그렇게 살았던 때였다. 그 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클럽에 갔다가 돈이 떨어져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취해 있었다. 다리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셨었다. 그런데도 뽑은 지 얼마 안 된 내 차, 이딴 후진 골목에 두고 갈 수 없다며 꾸역꾸역 시동을 걸어 운전을 했었다. 그랬었다. 그리고


 

  쾅


 

  무언가 차에 부딪혔다. 날아갔다. 얼굴이 벌겋고 손이 떨려도 내가 방금 무엇을 쳤는지는 알 수 있었다. 흔들리는 손으로 차 문을 열었다. 어떤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하얀 코트가 붉게 물들어갔다.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손을 뻗었다. 숨을…쉬나? 숨을 쉬고,


 

  여자가 눈을 떴다. 내 손을 움켜잡았다. 놀라 소리 지르기도 전 내 손등에 열쇠를 박았다. 비명을 지르며 여자를 걷어찼다. 열쇠를 집어던졌다. 여자가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차 안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최대한 빨리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숨을 거칠게 들이쉬었다. 오른쪽 손등에는 피가 흘러내렸다. 너무도 아팠다. 백미러로 보이는 내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여자가 꿈틀꿈틀 기어가고 있었다. 죽인다. 감히 나한테, 내 손을 감히, 씨발!



 

  여자는 한 번 더 날아갔고 나는 그 일을 기억에서 지웠다.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하반신은 다 사라지고 얼굴과 상체만 남은 채였다. 그녀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눈이 떨어졌다. 나는 넘어졌다. 콘크리트에 주저앉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손등에 남은 흉터가 쓰려왔다. 으, 그녀의 붉은 코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어 으, 으아아아아아아, 소리 질렀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녀는 쫓아오지 않았다. 허망한 웃음으로 사라져가고 있을 뿐이었다.

 

 



 

  밤, 회사에서 퇴근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 바닥에 낡은 갈색 코트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못 본 체 하며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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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 문학제 개최하기 전만 해도 별 관심이 없는 듯해서 조금 슬펐었는데

막상 개최하니 능력자들이 우르르 나오시는군요. 어디 있다 이제 오시는 겁니까?ㅋㅋㅋ


성황리에 문학제가 끝나서 내년에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글 읽고 있습니다!ㅎㅎ

그리고 모두가 패닉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 나서주셔서 멋있게 상황 정리를 하신 링고 님과 후원해주신 이웃집케로로 님, 푸딩 님께

이런 문학제를 열 수 있게 도움주셔서 정말 고맙다는 말씀과 수고하셨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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