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jkl123.com
본래 링크를 하려 했지만 교수님 홈페이지의 트래픽은 하루 1기가인가? 100메가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에.. pdf 파일링크 대신 전문을 모두 퍼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단상 #1>
어느 케인즈주의자의 고백
1. 케인즈학파 vs. 시카고학파
경제이론은 크게 보아 미시경제이론과 거시경제이론의 두 범주로 나누어진다. 미시경제이론은 이름 그대로 개별 경제주체 혹은 개별시장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한편, 거시경제이 론은 경제 전체의 상황을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역할분담 체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 히 케인즈학파, 시카고학파 식으로 학파를 나눌 때는 주로 거시경제이론과 결부되어 그런 구 분을 한다. 따라서 나처럼 미시경제이론을 전공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렇게 학파를 구분해 어떤 학파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이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어떤 학파의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는 데 더욱 적합한지에 대한 판단은 하고 있고, 그렇다면 두 학파 중 한쪽을 지지하고 있는 셈이 된다. 내가 1970년대에 공부했던 Princeton대학 경제학과는 당시 케인즈학파의 중심 세력 중 하나였고, 특히 내 박사논문을 지도했던 Alan Blinder교수는 대표적 케인즈주의자 중 한 분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자 연히 케인즈학파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케인즈학파의 현실 설명 력이 더 뛰어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카고학파가 그려내는 경제이론의 세계는 한 마디로 말해 아름답고 정교하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극도로 합리적이며 물가와 임금은 생고무줄 같은 탄력성을 갖는다는 가정으로부터 출 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보고 있는 경제에는 장기간에 걸친 불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불균형이 존재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물가와 임금의 신축성을 통한 조정을 통해 균형이 바로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는 그처럼 윤활유가 잘 쳐져 아무 마찰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부속들 로 이루어진 기계가 아니다. 곳곳에 비합리성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이유 에서든 물가와 임금이 경직성을 보일 때도 많다. 만약 모든 인간이 극도로 합리적이고 시장의 조정기능이 완벽하게 작용했다면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이 감지된 순간 합리적 인간과 완벽하게 작용하는 시장기능이 이를 해소하는 작업에 나섰 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조정기능을 중시하는 시카고학파는 경기침체의 상황에서도 정부가 함부로 개입해서 는 안 된다고 말한다. 물론 아무리 심각한 불황이 엄습해 와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어야 한다 고 주장할 만큼 극단적인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에 대해 기본 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시카고학파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다. 정부의 개입이 오 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한 개입을 삼가고 시장기능을 활성화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 동안 나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내가 전공 하고 있는 재정학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려는 목적에서, 소득분배 상태를 개선하려는 목적에서, 혹은 온정적 간섭주의의 시각에서 경제에 적극 개입할 수 있다. 따라서 재정학자로서의 나는 정부 개입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 은 미시경제적 관점에서의 개입뿐 아니라 경제를 안정시키려는 거시경제적 관점에서의 개입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태도를 취해온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케인즈학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탓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시카고학파의 아름다운 이론체계는 아무래도 현실성이 떨어졌고, 그렇다면 나는 케인즈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5년이 이와 같은 나의 믿음을 크게 흔들어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 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 직하다는 시카고학파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현 실성이 없다고 옆으로 제쳐 놓았던 시카고학파의 이론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경제를 운영해온 모습을 보면서 정부의 불필요한 개입은 약이 아닌 독이라는 시카고학파의 가르침에 한 점 틀린 것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2. 무늬만 신자유주의인 1960년대식 관리경제정책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들어섰지만, 실제로 경제를 운영해온 방식에 비추어 판단을 해보면 이명박 정부는 결코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투철한 정부가 아니었다. 시장의 자율에 맡겨 두기 는커녕 정부가 모든 일에 시시콜콜 간섭해 자신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정권 초기부터 시장 상황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밀 어붙인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이 그와 같은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친재 벌적 태도를 취하다가 국민의 여론이 비등하자 갑자기 ‘상생’을 내걸고 이들을 압박하는 태도 로 반전한 것도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태도였다. 심지어는 물가마저도 ‘이명박 물가지수’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1960년대식의 관리경제 정책 체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 생하는 물가상승의 압력을 이명박 정부는 강압적인 지도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공정거래의 확립이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안정의 기수 역할을 자임하고 나 선 것이 그 좋은 예다. 수요를 적절하게 관리해 물가상승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순리를 버리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강제력을 동원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태도가 신자유주의와 부합 될 리 만무한 일이다. 불필요한 개입의 또 다른 좋은 예는 경기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에서 찾을 수 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가 2008년에 발생한 글 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대응으로서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오해하기 쉽다. 또한 이명박 정부 자 신이 그런 방식으로 선전해 왔다. 그런 방식으로 선제적 대응을 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거듭 말해온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는 정권 출범 초부터 기본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던 핵심정책이다. 지난 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대운하’라는 기상천외한 토목공사를 핵심 공약으로 들고 나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우리나라의 현행 물류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한 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라도 건설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심각한 동맥경화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라도 있어 그 사업을 구상했을까? 나는 절대로 그것이 아니었다고 확신한 다. 내가 보기에 이명박 후보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점은 22조원의 지출이 가져올 직접적 경 기부양 효과와 소위 친수공간 개발에 따른 추가적 부양효과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경기부양 효과는 그가 내건 ‘747공약’의 실천에 큰 몫을 한다고 보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촛 불시위를 계기로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포기한 직후 다시 이름만 ‘4대강사업’으로 바꿔 똑같은 사업을 밀어붙인 것을 보면 문제의 핵심이 바로 22조원의 추가적 지출이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를 신자유주의적 정부라고 오인하게 된 것은 그들이 그런 시 늉을 낸 데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정부라는 시늉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감세 정책이다. 오래 전부터 감세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에 사람 들은 감세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를 신자유주의적 정부로 오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 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자감세’라는 비아냥거림 속에서 감세정책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을 보면 이것이 이명박 정부 정책의 핵심은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감세정책이 경제 에 활력을 불어넣는 묘약이라는 확신을 가졌다면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날 리가 없지 않 은가? 진정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했다면 감세와 더불어 정부지출을 급격하게 줄이는 조처를 취했어야 했다.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로 세금을 깎아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지출을 대폭 늘리는 정책을 추 구했다. 감세정책을 통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듯하면서 정부지출을 대폭 늘려 큰 정부를 추 구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이명박 정부가 표방했던 신자유주의가 실제로는 무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3. 무엇을 믿고 ‘747공약’을 내걸었을까?
되돌아보면 이명박 후보가 실현가능성이 말 그대로 제로인 747공약을 들고 나온 배경이 무 엇이었는지가 어렴풋이 드러난다. 이 공약에 처음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 렸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4%에서 5%에 이르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어떻게 단기간에 경제성장률을 7%대로 끌어올리는 기적을 연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경제학 의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여간한 무리수를 두지 않고서는 그와 같은 목표의 달 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 측에서는 과연 어떤 정책을 통 해 그처럼 무모하게 설정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동안 이명박 정부가 운영해온 경제정책을 보면 7%의 성장률 달성을 위해 동원할 수 있 다고 본 수단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우선 성장률이 높아지려면 투자가 급격하 게 증가해야 하는데, 친재벌정책으로 그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한편 법인세율을 낮춰 주고 저 금리기조를 유지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고 있 듯, 지금 우리 경제의 투자는 그들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 명박 후보 측은 기업의 투자가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렇기 때 문에 쓸모없는 정책으로 헛방을 날려버린 셈이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케인즈의 말이 시사하듯, 기업은 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느낌이 올 때에 한해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요즈음처럼 투자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가 앞으로의 전 망이 불투명한 경우에는 이 말이 더욱 잘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 처럼 기업이 법인세율이나 이자율의 동향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는 말 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실질이자율을 거의 0%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고 투자를 애타게 기다려 도 투자가 증가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여튼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747공약은 바로 이 첫걸음부터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후보측이 그 다음으로 효과 있는 정책으로 본 것은 고환율을 통한 수출촉진이었던 것 같다.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원자재 값이 아무리 올라도 환율만 높은 수준에 유지된다면 우리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수출을 증대시 킬 수 있다면 두 번 다시 생각할 필요 없이 환율을 그 방향으로 끌고 가면 된다. 더군다나 이 명박 정부의 핵심 관료들 중에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외환시장에 실제로 개입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와 같은 개입에 찬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노골적으로 고환율정책을 유지해 왔고, 이를 통해 쏠쏠한 재미 를 보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출이 전혀 흔 들리지 않은 것은 이 고환율정책의 덕이 어느 정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조금 뒤에 논 의하겠지만, 문제는 외환시장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747공약 달성을 위한 마지막 카드가 앞에서 말한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였다고 짐 작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전반기에 기록한 경제성장률 속에는 정부지출 증가가 기여한 것 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만 없었어도 7% 경 제성장률의 목표를 달성할 뻔 했다고 억울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지출을 늘려 경제성장 률을 억지로 높인다는 것은 그들이 내건 7%의 경제성장률 공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747 공약에서의 7%라는 경제성장률은 자신의 임기 동안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잠재)성장률을 그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뜻이지, 정부지출 늘려 반짝 상승을 이루도록 하겠다는 뜻이 아니 기 때문이다. 그런 방법으로 경제성장률 높이는 것은 누구인들 못하겠는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747공약의 배경에는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서라도 경제성장 률을 일시적으로나마 그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행운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때마침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폭풍 때문에 그렇게 무리수를 둠으로써 과연 7%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를 검증할 기회마저 날라가 버렸다. 그러나 나는 온갖 무리수를 동원했어도 일시적이나마 그 목표를 달성하는 일조차 불가능했으리라고 믿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직 본격화되기 전인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의 성과가 그리 눈부 시지도 않았던 것을 보면 그렇게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4. 무분별한 인위적 개입의 불행한 유산
이명박 정부는 그래도 자기네들이 경제정책만은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선전한다. 그 근거 로는 OECD 가입국들 중 우리처럼 빨리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회복된 나라가 없다는 것을 든 다. 바로 뒤이어 발표할 글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겠지만, 우리를 미국이나 유로존 국가 들과 비교해 상대적 평가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의 진원지로서 그 직격탄을 맞은 나라들이다. 우리처럼 그런 위기와 비교적 먼 거리에 있었던 경제가 그들의 경제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아보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해서 하등 칭찬 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백보를 양보해 두 차례의 위기에서 살아남게 만든 공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무리수, 즉 불필요한 개입은 우리 경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불행한 유 산을 숱하게 남겨 놓았다. 시카고학파가 불필요한 개입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은 그것이 경기를 일시적으로 반짝 되살려 놓는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경제구조를 왜곡하고 체질을 약화 시키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권 출범 초 무리하게 밀어붙인 고환율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허덕이고 있던 중 소기업들에게 치명적 손실을 가져다준 KIKO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은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KIKO 계약을 체결했 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장의 펀더멘탈을 무시하고 고환율정책을 추구했고, 그 결과 중소기업 의 줄도산 사태를 야기했던 것이다. 또한 2008년 여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한때 환율이 위험수준까지 뛰어오 른 적이 있었다. 다행히 위기를 맞지는 않았지만, 바로 몇 달 뒤에 환율이 천정부지로 뛰어오 를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을 쓴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 다. 이 사례를 보면 시카고학파가 왜 과도한 정부 개입이 경제를 더욱 불안정한 상황으로 몰 고 갈 수 있음을 경고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수출을 늘리려는 욕심에서 외환시장에 부 질없는 개입을 일삼다가 뜻밖의 위기를 맞을 뻔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 진다. 뿐만 아니라 환율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정책은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환율이 1,100원대 이하로 떨어지자 우리 기업들의 수출에 빨간불이 켜 졌다고 난리법석이 일어났다. 과거에는 900원대의 환율에서도 끄떡없이 수출하던 우리 기업이 왜 1,100원선이 무너지면 수출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을 치게 되었는가? 높은 환율이 우리 기 업들에게 보호효과를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같은 보호에 안주하는 타성을 길러주게 된 것도 사실이다. 기업이 때로는 시장의 호된 채찍을 맞아 보아야 매를 견디는 강한 체질을 키울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정책은 우리 기업들이 스스로 체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 를 박탈해 버린 결과를 빚었다. 고환율정책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 핵심 경제정책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저금리정책도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는 데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가계부채 문제의 심화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에도 이미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은 널리 알 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저금리정책을 계속 고수하는 한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한 국면으 로 치닫게 된다는 것도 상식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저금리정책의 장점과 단점을 엄밀하게 저울질할 수 있는 사고의 탄력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나타나지도 않는 투자 촉진 효과를 애타게 기다리며 저금리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가계부채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한 차원으로 비화하게 되었다. 정부가 인위적 개입을 통해 물가를 통제하려 할 때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은 잘 알 려진 사실이다. 물가 불안이 눈앞에 닥쳐 있는데도 정부는 물가 불안을 더욱 부추길 고환율정 책과 저금리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인위적 개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다행히 세계 경 제가 극도의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덕분으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정상적인 상황 이라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는 위험한 줄타기를 한 셈이다. 지금도 잘 살펴보면 시장 이곳저곳에 그와 같은 인위적 개입을 통한 물가 관리의 후유증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경기부양을 위해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22조원이란 어마어마한 정부지출을 쏟아 부은 4대 강사업의 문제점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자기 임기 중에 끝내려는 욕심에서 여론의 수렴도 없이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4대강사업은 우리 경제, 사회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겨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집권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무런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고 22조원이나 드는 거대토목사업이 하루아침에 시작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 은 효율적이며 공정한 정부를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그렇게 투 입된 22조원이 반짝 경기회복에 얼마나 큰 효과를 냈는지 몰라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갖가지 부정적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5. 이명박 정부가 우리에게 준 교훈
이명박 정부의 5년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이 세상에 경제를 기적처럼 되살리는 묘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것은 다른 나 라에서의 실험에서도 이미 의심의 나위 없이 입증된 사실이다. 기적처럼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등장한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와 새처리즘(Thatcherism)의 귀 결을 보면 그와 같은 약속은 애당초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5년은 어느 누구가 얼마나 달콤한 목소리로 나는 경제를 기적처럼 되살릴 비방이 있다 고 속삭여도 그 말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실질적으로 정부 개입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경기를 단기적으로 약간 끌어올리는 데 지나지 않는다. 욕심이 지나쳐 무리하게 경기를 너무 심하게 부추기려 들면 경제의 이곳저 곳에 잘 보이지 않는 후유증을 숱하게 남기게 된다. 그 결과 경제의 전반적 체질이 약해져 오 히려 장기적 성장이 둔화되는 역효과를 내고 만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써온 정책을 보면 바로 이런 시나리오에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이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의식해 경제성장 률을 단 1%라도 끌어올리려고 많은 무리수를 동원한 나머지 경제의 이곳저곳에 시퍼런 멍이 들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가능한 한 개입을 삼가고 시장기능을 최대한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카고학파의 가르침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가 경제를 어떤 특정한 방향 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는 과욕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몰아가려고 해도 쉽게 몰아지지 도 않을 뿐 아니라, 과욕 때문에 무리수를 두게 되면 경제에 더 큰 해를 입힐 수 있다. 그렇 기 때문에 시카고학파는 정부의 개입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이 4%에서 5% 정도인 경제를 하루아침에 잠재성장률 7%대의 경제로 탈바꿈시 키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허황된 과욕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과욕이 이명박 정부 5년의 경 제정책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린 주범이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를 세워 놓았기 때문 에 끊임없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록 화려하게 보이지는 않더라도 경제를 순 리에 맞게 이끌어가는 것이 올바른 길임에도 불구하고, 과욕 때문에 흐려진 눈에는 그 분명한 답이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수치만을 인용해 자기네들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다 는 홍보를 일삼는다. 다른 글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그들이 제시한 통계수치 그 자체만으로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반박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무리하게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은 경제 이곳저곳에서 눈 에 띄지 않은 채 우리 경제의 활력을 지속적으로 좀먹고 있다. 앞으로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그 후유증의 전모가 우리에게 분명히 밝혀지리라고 생각한다.